- 함승수 신부님 [ 연중 제26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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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50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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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일 가해] 마태 21,28-32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어떤 영화에서 실연 당한 남자 주인공이 전 애인에게 한 말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사랑은 변하지 않아. 단지 사람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지.” 남자 입장에서는 이 말이 아주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합니다. 혹자는 쉽게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에 비유하며 부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건, 다시 말해 변화될 수 있다는 건 약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합니다. 지금 잘못을 저지르거나 옳지 못한 길을 걷고 있어도 마음을 바꾸면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갈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붙들기 위해서는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되돌리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없지만, 모두가 각자의 부족함과 약함을 안고 살아가지만,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면 주님으로부터 용서와 자비의 은총을 받아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 속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포도밭에서 일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의로운 일을 실천한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포도밭에서 일하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는 건 맏아들도 잘 알았지만, 자기도 나름대로 잡아둔 중요한 일정이 있고 계획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을 나중으로 미루고 그 일을 먼저 하라고 하시니, 그런 아버지의 지시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오늘’ 그 일을 시키시려고 미리부터 계획하셨다면, 그 계획을 미리 좀 알려주셔서 자기가 준비를 할 수 있게 하셨어야하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었겠지요.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필 나에게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는 ‘지금’이냐고, 나도 하느님 뜻을 잘 따르는 충실한 자녀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데 왜 항상 힘들고 어려운 선택의 상황을 마주하게 하시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늘’, ‘지금’ 당신 뜻을 따르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를 괴롭히거나 시험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의 구원에 있어서 더 중요하고 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식별할 지혜와, 그렇게 식별한 것을 즉시 실행에 옮길 결단력이 필요함을 알려주시려는 것이지요. 내가 하느님 나라를 선택하기 위해 포기하는 것의 가치가 클수록, 내가 듣고 깨달은 하느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을수록, 그만큼 더 빨리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점을 머리로 이해한다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맏아들은 마음 속에 불평과 불만, 그리고 아버지께 대한 원망이 차올라 홧김에 “싫습니다!”라고 소리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합니다. 생각해보면 포도밭 일은 아버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인 나에게도 ‘가족’의 소유인 포도밭을 잘 가꾸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또한 자기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홀로 뙤약볕 아래에서 종일 고생하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 포도밭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포도가지를 다듬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번져갑니다. 굳이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아들의 행동에서 아버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맏아들의 모습을 세리와 창녀 같은 죄인들에 빗대어 설명하십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자기 뜻대로 살고 싶어서 하느님과 그분 뜻으로부터 멀어졌지만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들입니다. 차마 하느님을 뵐 면목이 없어서 그분 가까이 나아가지도 못하고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채 살아왔지요. 그러던 중 세례자 요한의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듣고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뒤늦게나마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의로운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이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보다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갈 거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용서해주시고 살려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작은 아들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그도 아버지로부터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아들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일단은 ‘가겠다’고 대답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뭐든 말로 하는건 쉽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지요.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픈 마음은 있으나 쉽고 편한 것을 찾는 게으름과 나태함이 그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자신이 굳이 포도밭에 나가지 않아도 아버지께서는 다 이해해주시고 알아서 잘 하실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핑계 삼아 자기 잘못을 합리화하려고 드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안락함과 편안함만 추구하느라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지 않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겠지요. 그런 작은 아들이 바로 우리 모습 아닐까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해야 할 일은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게, 어렵고 힘든 ‘십자가의 길’보다 쉽고 편한 그러면서 나에게 이득이 되는 ‘꽃길’만 걷고 싶어하는 게 우리들이니까요. 늘 열심한 신앙인이 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고, 그리스도인답게 하느님 자녀답게 살아가는 행동은 따르지 않는 게 우리들이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무시하던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요한이 한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말을 들었으면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자기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즉시 방향을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믿으셨기에 그분 뜻에 철저히 순명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긴 그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들었다고, 그분이 주님이심을 참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티끌 한 점 만큼의 부끄러움도 없을 정도로 완벽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불신 속에 길을 잃고, 때로는 잘못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언제든 회개하여 당신께로 돌아서면 된다고,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고 우리를 격려하며 등을 두드려 주십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나의 생각과 마음이 주님 뜻에 합당하도록 바꾸어야겠습니다. 그 마음과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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