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28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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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52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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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8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20년 만에 성당에 나오신 어느 형제님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열심히 성당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성당에 오셨답니다. 그런데 성당에 일찍 오지 못해서 아직 ‘고해성사’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체 시간에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는데, 어느 자매님께서 물어보시더라는 것입니다.
“세례받지 않으셨어요?”
“아니요. 세례받았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정말 오랜만에 왔거든요.?”
이 말에 그 자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례받았으면 성체 모셔도 돼요.”
예전 기억을 떠올리면, 분명히 미사 참석하지 않으면 고해성사를 봐야 성체를 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께서는 괜찮다면서 얼른 나가라는 것이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에 성당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그래서 고해성사 보지 않아도 성체를 영할 수 있도록 바뀌었나?’
바뀌었을까요?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합니다. 하느님의 뜻조차도 자기 뜻 밑에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논쟁이 일어납니다. 권력의 서열을 두고 다투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십니다. 지금이야 어린이가 순수함과 귀여움을 상징하지만, 당시에는 법적 권리가 전혀 없는, 무력하고 미천한 존재였습니다. 이 어린이를 곁에 세우셨다는 것은 가치 평가의 기준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루카 9,48)
예수님 자신을 무력하고 보잘것없는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과 연결하십니다. 세상은 지배하고 통제하는 자를 ‘큰 사람’이라 부르지만, 예수님은 기꺼이 가장 작은 자가 되셨고, 이처럼 약자를 받아들이고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요한은 열두 제자 그룹 밖의 누군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제지하려고 합니다. 그 거부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서가 아니라, 자기들과 함께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은총과 사명을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뜻만을 내세워서는 절대로 아닙니다. 늘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뜻은 세상의 관점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위대한 변화는 차례로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시작된다(B.J.쏜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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