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6년 9월 29일 (화)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16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9-28

김건태 신부님_가장큰 사람

 

사도들은 스승 예수님이 겪어야 하는 고통, 그 가운데서도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분 사명의 정점을 이루는 십자가상 죽음, 중요한 사건인 만큼 앞서서 이미 예고하신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이해를 뛰어넘어 깊은 인상을 받거나 감격해야만 했음에도 말입니다. 죽음에 관한 스승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묵상하여, 이를 바탕으로 곧 불어닥칠 고통스러운 죽음의 시간들을 대비해야 했음에도 말입니다,

 

사도들은 선택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장차 누리게 될 특권만을 갈망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세우실 지상 왕국의 영광스러운 시간만을 기다려 왔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상 왕국 건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님을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제자들의 논쟁, 곧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일어난” 논쟁을 전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보시기에 당신의 뒤를 이어 지상교회를 책임지고 관리할 제자들이 이러한 문제로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를 이끌어갈 때 우선시해야 하는 기본 정신을 아직도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상징적인 행위로 이 문제에 답을 주십니다.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고 이르십니다. 이 상징적인 답변으로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가장 뛰어난 사람, 가장 박학한 사람, 가장 유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연약한 사람, 가진 것이 없는 사람, 늘 따돌림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임을 밝히십니다. 왜냐하면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다스림’을 월등한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행위로 해석하고 확신해왔던 사람들에게 역설적이며 충격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스림을 지배가 아니라 봉사로 가르치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어떠한 이의제기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권위를 기초로 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신 그대로 몸소 실천에 옮겨 사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가난과 반대와 고통의 삶, 끝내 십자가상 희생제물로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 이 이야기와 함께, 사도들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수치스러웠던 사건들, 그래서 남몰래 지워버리거나 잊어버리고 싶었던 사건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 사도들에 의해 전파되어, 훗날 복음 저자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게 된 사건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지상교회를 맡고 관리해 나가면서, “우리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였던 일을 기억함과 아울러,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가장 큰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작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자랑스러운 신앙의 선조들이 ‘가장 작은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준 신앙을 살아가면서, 특히 교회 공동체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봉사해 나가면서, ‘가장 작은 사람’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임을 마음에 새기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사람인가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이를 당신 곁에 세우시며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48절)라고 선언하신다. 영광은 인간적인 서열이나 권세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의 작음과 겸손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겸손이 모든 덕의 기초이다.”(De Trinitate, XIII 요약)라고 했다. 어린이는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이처럼 제자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 비움과 의탁의 자세를 배워야 했다. 예수님 곁에 서는 것은 인간적 지위가 아니라, 겸손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곧 주님 자신을 섬기는 것이다.”(Hom. in Matth. 58,2 의역)라고 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작은 이를 받아들이는 자는 곧 그리스도를,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사랑과 봉사는 외형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신 주님께 향해야 한다. 

 

사목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며, 당신의 형제적 사랑은 언제나 작고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드러난다.”(27항 요약) 또한, 교리서는 강조한다. “겸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리 안에서 받아들이게 하며, 그 모범은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데 있다.”(2559, 520, 616항 참조)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50절)라고 하신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민수 11,29)라고 했던 구절이 떠오른다. 성령께서는 누구에게나 자유로이 역사하시며,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특정한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다. 성 이레네오는 “어디에서든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분이다.”(Adversus Haereses, III,24,1 요약)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시기하지 않고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 곁에 선다는 것은 권력이나 명예의 자리가 아니라, 어린이처럼 작은 자의 자리이다. 작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을 모시는 행위이다.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선한 일들은 성령께서 자유롭게 일하시는 구원의 표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기와 경쟁을 멈추고, 겸손과 봉사 안에서 작은 이들과 함께 주님 곁에 서는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64 0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