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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9월 30일 (수)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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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9.30)

192191 김중애 [ji5321] 스크랩 03:57

 

2026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서울에 갈 때 전철을 이용합니다.

그때도 서울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탔었습니다. 퇴근 시간이어서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앞에 앉아 있는 분이 일어나서

자리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의

바람대로 그분이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아싸’라는 외침을 마음속으로 외치고

앉으려는 순간, 어느 자매님께서

사람들 사이를 뚫고 저를 밀어제친

뒤에 방금 생긴 제 앞의 빈자리에

앉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얼른 눈을 감으십니다.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어디 아프신

것일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래도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요? 그러다 아주 간단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볼 일 없으니까.’

만약 우리 성당 중고등부

학생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제게 자리를 양보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알고 있고,

또 계속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선 자매님께서는 ‘이 아저씨를

다시 볼 일 없다.’라는 생각으로

무례하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결정적 순간에 직접

만나야 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면서, 지금을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는 데

어떤 사람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 9,57)라고 말합니다.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열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

조차 없다.”(루카 9,58)라고 말씀

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것은

지상의 성공이나 평온한 보금자리

를 얻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

(루카 9,59)라고 하시지요.

한 사람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달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달라고

하십니다. 이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라고

하고,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과거에

대한 미련, 익숙한 혈연과 세상의

안정, 안전지대를 향한 미련과

결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 나라를 향한 투신이

요구됨을 이야기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지향하며

살고 있을까요?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신이시여,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경멸하거나 반대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윌리엄 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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