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몫’ ―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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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3 박소영 [b38927] 스크랩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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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복음 말씀에는 예수님 곁에 머무는 마리아와 시중드는 마르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하신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탁’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의탁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 복음 말씀을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루카 10,39-42)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르타는 최선을 다해 시중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런 경우와 같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이 많아 제가 힘듭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저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단순히 마르타는 봉사하는 사람이고 마리아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마르타가 시중드는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는 뜻도 아니며, 마리아가 봉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루카 10,39)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루카 10,42)
마리아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의탁’입니다.
의탁은 완전한 내어맡김, 곧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마르타에게서는 자신의 뜻과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마리아에게서는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그분의 말씀과 뜻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주님께 대한 신뢰와 자아포기가 바로 겸손한 이들의 특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8. 내 원수의 함정,17)
"사탄은 너희가 자기를 믿는 어른처럼 느끼도록 함정을 판다: 너희가 자신의 자아, 자신의 생각, 자신의 활동을 안전의 터전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그는 신뢰와 자아포기가 겸손한 이들의 특성임을 알고 있으므로, 너희에 대한 나의 활동을 너희가 점차로 의심하면서 신뢰하지 않도록 유혹한다."
‘의탁’은 다른 말로 ‘봉헌’과도 같습니다.
(6. 내가 활동하게 맡겨 다오,1)
"내게 봉헌한다는 것은, 엄마가 이끄는 대로 따르는 어린 아기같이 나를 따르고 내게 의탁함을 뜻한다."
왜냐하면 시련과 환난이 닥쳐올 때에도 예수님과 성모님을 찾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마르 4,37-41)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37. 오직 내게만 의탁하여라,7)
"나만을 찾고 내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내게만 의탁하기를 지금부터 해 버릇하지 않는다면, 드센 폭풍이 몰아쳐 일체가 암흑 속에 파묻힐 때, 어떻게 나를 찾아 만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무슨 일을 할 때나 나를 '빛'으로 알아보는 습관을 지금부터 기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봉헌을 실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성모님께서는 봉헌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2. 복음의 빛,6)
"너에게 사물을 보는 새 방식을 주겠다. 다시 말하면, 바로 나의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더 이상 네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네 마음 속에 깊은 고통 같은 것을 남기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너는 이렇게 말하게 되리라: '얼마나 헛되고 무익한 것들인가!'"
세상의 가치관이 헛되고 무익한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소유와 집착에서 점점 자유로운 작은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작은 사람이 될수록 사랑과 성덕과 용맹스러움에서는 오히려 큰 사람이 됩니다.
바로 작고 단순하고 겸손한 '영적 어린이'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41. 사랑에 있어서 큰 사람들,5-9)
"때때로 내 마음은 내게 봉헌한 후에도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닌 자녀들을 보면서 슬픔에 잠긴다. 전부를 다 주지는 못하는 자녀들이다. 왜 그들은 아직도 뭔가를 아껴 두고 있는 걸까?
아무 것도, 진실로 아무 것도 이제는 소유하면 안된다. 오로지 작은 아기, 나의 가장 작은 아이가 되어야 한다. 사랑과 성덕과 용맹스러움에 있어서 큰 사람들이 되도록 내가 몸소 그들을 부른 이상, 그들은 가장 작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온전히 영적 어린이가 될 때, 유일한 관심사가 내게 대한 신뢰가 이끄는 대로 자신을 맡기는 것이 될 때, 그때라야 나의 위대한 계획에 맞갖은 채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기르며 정성들여 형성해갈 수 있게 너희 자신을 내게 맡겨 다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물론, 너희 자신도 모르게 내가 너희를 완벽하게 변모시킬 것이며, 사랑의 큰 선물을 줄 것이고, 하느님과 나와 한층 더 깊이 일치하도록 해주겠다.
그래서 내게 의탁하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이 맡김이 완전한 것이 아니면, 너희가 내 손을 묶어버리는 격이 되기에, 내 뜻대로 일을 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86. 봉헌을 실천하며 살아라,9-15)
"내가 너희를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너희를 온전히 내맡겨야 한다. 이 엄마의 부드러운 활동에 너희 자신을 맡겨줄수록 내가 너희 안에서 그만큼 더 많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티없는 내 성심에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내 사제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유일히 필요한 행동이다.
그렇게 봉헌한 후 자주 다시 봉헌하여라. 그리고, 아들들아, 무엇보다 너희의 그 봉헌을 실천하며 살아라.
너희가 모여서 모두 함께 공동으로 내 성심에 다시 봉헌할 때, 내 고통의 성심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른다!
그 봉헌을 실천하며 산다면, 너희 삶이 완전히 변화될 것이다. 내 방식대로 사물을 보고, 느끼고 기도하고 사랑하도록 내가 길들여 줄테니 말이다.
또한 너희에게 내 정신을 불어넣어, 너희가 점점 더 작고 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되게 해주겠다.
그리고, 너희가 언제나 오직 하느님께만 의탁하도록 이끌어 주겠다. 그러면 의심과 부정이 더해갈수록 너희는 그만큼 더 그분 안에서 확신을 얻고, 그분의 증거자가 될 것이다."
이처럼 ‘의탁’과 ‘봉헌’은 하느님 자비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당신께 전적으로 의탁하도록 이끄시고, 성모님께서는 마리아 사제운동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티없으신 성심께 봉헌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봉헌한 자녀들이 체나콜로에 함께 모여 거룩한 묵주기도를 바치고, 당신의 메시지를 읽고 묵상하며, 봉헌한 삶을 실제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것이 티없으신 성심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84. 너희에게 주는 선물,5-6)
"너희들에게는 지극히 특별한 총애를 선물한다. 이는 너희 천상 엄마의 손길이 매우 아름다운 자수를 놓듯이, 너희 하루의 모든 일을 짜임새있게 배열하고 모든 상황을 조화롭게 안배해주는 것으로 표현되는 선물이다.
너희가 함께 있는 것,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것, 나의 기도인 '거룩한 묵주기도'를 자주 바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 너희의 나약과 인성의 비참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바로 티없는 내 성심의 선물이다."
(284. 너희에게 주는 선물,8-11)
"티없는 내 성심이 주는 선물 --- 오! 그렇다, 더없이 특별한 선물이다! --- 은 바로 내 메시지들을 담은 이 책이다.
너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나의 이 책에 이미 다 나와 있다. 읽을 줄만 안다면 이 안에서 내 계획 전체, 즉 그 실현을 위한 준비, 고통이 요구되는 구체적 실행, 찬란한 승리를 안겨줄 그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극진히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 책을 읽고 묵상하고 생활로 실천하여라. 의심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있다. 말을 통해 내가 현존하며,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이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는 훗날 가서야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티없는 내 성심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너희에게 알려준 나의 계획이다."
(284. 너희에게 주는 선물,14-15)
"티없는 내 성심이 교회에 주는 선물이 이 '운동'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오로지 나의 사업일 따름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은 말 그대로 다 이루어지리라. 교회도 '마리아 사제운동'이 참으로 '티없는 내 성심'의 선물임을 갈수록 깊이 깨닫게 될 터이다. 이 운동과 더불어 나의 항구적인 현존과 어머니로서의 보호라는 확증도 교회에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선물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은 마리아 사제운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성령 강림'입니다.
(284. 너희에게 주는 선물,16)
"하지만, 티없는 내 성심의 선물은 다른 무엇보다 새로운 '성령 강림'일 것이다.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사도들이 나와 함께 기도하면서 첫 성령 강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티없는 내 성심의 다락방' --- 즉 너희가 함께 모여 기도하는 다락방에서도 이 마지막 시대의 사도들인 너희가 천상 엄마와 함께, 성령께서 다시 내려오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이 새로운 성령 강림을 '두 번째 성령 강림'이라고 부르시며, 이 성령 강림을 통해 인류와 교회가 정화되고 쇄신되어 마침내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574. 두 번째 성령 강림,2-9)
"너희 역시 오늘, 내 티 없는 성심의 영적 체나콜로에 모여 기도하면서 ‘두 번째 성령 강림’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을 준비도 하고 있다.
두 번째 성령 강림은, 또다시 이교도화되어 악마의 드센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 이 인류를 이끌어,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주님과의 완전한 생명의 친교에로 그들을 도로 데려올 것이다.
기적적이고 영적인 불 혀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정화시키리니, 그들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자신들을 보고, 그분의 ‘신적 진리’의 날카로운 칼에 꿰찔릴 것이다.
두 번째 성령 강림은 온 교회를 이끌어 더없이 큰 광채의 절정으로 데려갈 것이다. 지혜의 영은 복음에 온전히 충실하도록 이끄실 것이고, 의견의 영은 교회를 도우며 모든 환난 속에서 위로를 주실 것이며, 굳셈의 영은 교회로 하여금 날마다 영웅적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무엇보다도 특히 고귀한 선물, 곧 완전한 일치와 최상의 성덕을 교회에 주실 것이다. 오직 그때에만 예수께서 교회 안에 당신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가져오실 것이다.
두 번째 성령 강림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민감하고 사랑에 열린 마음, 겸손하고 인자한 마음, 모든 이기심과 사악함이 없는 마음이 되게 할 것이다. ‘주님의 영’이 돌처럼 굳은 마음을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에제 36,26 참조).
두 번째 성령 강림은, 너희 영혼의 아름다움을 흐리게 하는 죄를 하느님 사랑의 불꽃으로 태워 없앨 것이다. 그리하면 너희 영혼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생명의 친교에로 돌아오게 되고, 바로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특은 입은 정원이 될 것이며, 이 빛나는 정원에는 너희의 천상 정원사인 내가 각별히 돌보며 가꾸는 온갖 덕행의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당신의 신적 거룩함의 선물을 세상에 쏟아 부어 주실 것이다.
두 번째 성령 강림은, 이기심, 고유의 이권, 상호 대립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인 적개심 때문에 분열된 모든 나라 ─ 그리하여 전쟁과 동족상잔의 싸움이 곳곳으로 퍼져나가 거리를 온통 피로 물들이고 있는 모든 나라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이 나라들도 오직 하나의 큰 가정을 이룰 것이고, 너희 가운데 계신 주님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모인, 복된 가정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오늘, 내 티 없는 성심의 체나콜로에 들어와서, 너희 천상 엄마인 나와 하나 되어 기도에 마음을 모아라. 이와 같이 우리 함께 성령을 선물로 주십사고 간청하면서, 세상을 새롭게 하고 땅의 모습을 바꿀 ‘두 번째 성령 강림’을 기다리자꾸나."
이제 다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장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머물며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좋은 몫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 곧 의탁과 봉헌입니다.
그리고 그 봉헌의 길에는 정화의 과정이 따릅니다. 의탁과 봉헌을 통해 우리는 점점 영적 어린이가 되어가며, 자신이 스스로 이루려는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게 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는 하느님과의 합일을 향한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어둔 밤’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어둔 밤」 '독자에게' 편 발췌)
"정화를 우리는 어둔 밤이라 부른다."고 하신 성인은 하느님과 합일에 있어 인간이 치러야 하는 정화, 즉 밤이 감성 및 영성의 두 가지라 했고 그의 양상 역시 능동 및 수동적 두 가지라 했습니다. 능동의 밤은 곧 "다름 아닌 끊음과 씻음으로서, 세상의 바깥 일들, 육에 즐거운 것들, 의지에 맛스러운 일체를 끊고 씻어버림입니다."
어둔 밤은 감성 및 영성의 수동적 밤을 소재로 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표현을 빈다면 "능동적이란, 영혼이 밤에 들기 위한 일을 제 편에서 할 수 있고, 실제 하는 것"이지만 "수동적이란, 영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다만 하느님께서 그 안에서 일하시고 영혼은 수동적인 상태에 있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빛을 받아들일 때, 그가 지닌 감성 및 영성을 스스로(능동적) 어둡게 하여 캄캄한 밤이 될수록 빛이 잘 들어오게 마련이지만, 의인도 일곱 번 넘어진다(잠언 24,16)는 말처럼 제아무리 성인이라도 스스로 제 허물을 다 알지 못하는지라, 하느님과의 합일이 요청하는 순수한 청정 무구를 제 힘만으로 얻을 수 있다고 버틴다면 이 분명 펠라지아니즘의 망발을 되풀이함을 것입니다.
인간의 능동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절대 정화가 자비하신 하느님 아저지의 손길로 다스려짐이 감성 및 영성의 수동적 밤이요,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성요한의 천재가 유례없이 밝혀내는 밤입니다.
* 참고) 펠라지아니즘: 하느님의 은총보다 인간의 힘과 노력만으로 구원과 완덕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주장
이처럼 하느님과의 합일을 향한 정화에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르기 어려운 영역이 있으며, 하느님께서 친히 영혼 안에서 이루시는 수동적 정화가 있습니다.
저 역시 정화의 과정에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체험과 기적, 그리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사람이 제 앞으로 책 다섯 권을 가져왔습니다.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봉사하는 곳에서 누군가가 전달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모두 중고책이었는데, 그중 네 권은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같은 가르멜 성인들에 관한 책이었고, 나머지 한 권은 마리아 사제운동과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읽으며 제가 겪고 있던 체험과 고통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제가 걷고 있는 길이 수동적 정화의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서 선택한 좋은 몫, 곧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그 길은 결국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을 향한 길입니다.
우리 역시 의탁하고 봉헌하며,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정화에 자신을 맡길 때,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을 향한 이 여정에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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