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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8일 (목)연중 제27주간 목요일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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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35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52

김건태 신부님_기도에 대한 가르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 가운데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난 다음, 비유를 통해 항구히 기도할 것을 강조하심과 아울러(5-8절) 온전한 신뢰심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라고 권하십니다(9-13절).

 

먼저 어떤 친구가, 이미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든 친구를 찾아와, 무엇인가를 청할 때, “줄곧 졸라대면” 친구로서가 아니라, 귀찮음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일어나 그 청을 들어줄 것이라는 비유 말씀이 소개됩니다. 사람이 이러할진대, 하느님은 사람들의 줄기찬 기도를 모른 채로 하실 리 없다는 확신입니다. 하느님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향하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하시는 말씀으로 우리가 향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은 그 어떤 아버지보다 자비로운 분이시며 우리의 바람에 꼭 응답해 주시는 분이기에, 우리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심어주십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기도하면, 꼭 들어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대로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체험한 적이, 원망하거나 체념한 적이, 그래서 신앙의 위기를 경험한 적이 한두 번쯤 있을 것입니다. 청하였지만 받지 못했고, 찾았지만 얻지 못했고,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던 적 말입니다. 진지하게, 그리고 큰 믿음으로 오랫동안 주님께 기도했지만,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별 효과가 없어 보였던 경우들 말입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기도하는 나입니까, 아니면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읽고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할 때마다, 아버지는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주시고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우리의 바람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십니다.

다음, 예수님은 하느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그대로 들어주시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를 잘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단 것을 좋아하는 자녀가 청할 때마다 매번 단 것을 주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한편, “기도는 항구하게 해야 한다.” 하는 불변의 가르침 속에는,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기도하는 나의 자세와 내용에 대한 꾸준한 반성도 겸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빛을 청해야 하는데 어둠을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의를 찾아야 하는데 불의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거짓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입니다. 더욱이 이웃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기도한다면,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하는 주님의 가르침 앞에 무슨 낯으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 기도의 자세와 내용을 바로잡고, 특히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뜻대로 내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나도 남에게 해 주는, 신앙인다운 하루를 밝혀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혀 신부님_복음: 루카 11,5-13: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기도의 끈질김과 그 열매를 가르치신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9절) 하늘 나라는 아무렇게나 열리는 문이 아니다. 그것은 게으른 이가 아니라, 끊임없이 청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리는 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 기도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일 그릇을 넓히도록 하시기 위해 기도하게 하신다.”(Sermo 102 요약) 즉, 기도는 하느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그분의 은총을 담을 준비를 하는 행위이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사물로써 진리를 드러내신다. 생선은 세례와 믿음을 상징한다. 물속에서도 살아남는 생선처럼, 믿음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 준다. 반대로 뱀은 속임수와 죄의 상징이다. 달걀은 희망을 나타낸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생명이 숨어 있듯이, 믿는 이의 희망은 언젠가 드러날 미래의 영광을 지향한다. 그러나 전갈은 절망과 파괴를 뜻한다. 꼬리에 독을 품고 있듯이, 희망을 잃은 삶은 자신을 해칠 수 있다. 마태 7,9에서 추가되는 빵은 사랑을 뜻한다. 빵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음식처럼 사랑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양식이다. 반대로 돌은 굳은 마음, 사랑을 거부하는 완고함을 상징한다. 믿음·희망·사랑이라는 삼덕은 이렇게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우리의 기도 안에서 더욱 성장한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13절) 성령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시는 최고의 선물이다. 성령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를 진리와 사랑 안으로 이끄시는 분이다. 기도는 하느님의 은혜와 성령을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특권적 순간이다.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정말 들어주실까?”하고 의심을 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청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 우리가 간구해야 할 가장 큰 은사는 바로 성령, 즉 하느님 자신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에, 또 일상의 순간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열도록 돕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믿음의 흔들림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기도 안에서 믿음·희망·사랑을 청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아 살아가라는 초대이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문을 두드리기만 하면 그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분이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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