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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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6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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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힘센 하느님 나라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과 권위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을 향하여 명쾌한 논리로 응답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일을 보고,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는 모독적인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가 하면, 아직도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 보고서야 믿겠다는 것은 실은 아직도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 따라서 반대편에 서 있는 자는 모두 “내 편에 서지 않는, 나를 반대하는 자”,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흩어버리는 자”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낸다는 사람들 의 중상 앞에 서십니다. 베엘제불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아무튼 예수님은 마귀들에 대해 아무런 권능도 지니지 못하고, 다만 그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조종할 뿐이라는 억지 주장입니다.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도움으로 악마의 세력을 제압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모독하는 참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독하기 위해 내세운 이러한 논리는 적대자들의 세계를 궁지에 빠뜨리는 자기모순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너희의 아들들”, 곧 특출한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사람들도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驅魔)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특별한 능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조차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궁지에 빠뜨리리 위해 온갖 궤변과 억지를 서슴지 않는 이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바리사이들 또는 율법 학자들과의 논쟁을 깔끔하게 정리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만이 그분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반대 세력의 도전에 크게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십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에 다소의 불편함을 줄 수는 있어도,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깊이 인식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시선은 당신의 권위 있는 말씀과 행적 앞에 놀라워하던 군중처럼 우리를 향하십니다. 저 많은 반대 세력과 그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진리와 평화보다는 불의와 거짓과 불목이 난무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건설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으로 다소 소심해진 우리 앞에 예수님은 ‘힘센 분’으로 서십니다. 반대 세력의 증폭과 확산이 우리에게 ‘희망 없음’의 예표로 다가올 때가 있어도, 우리 주님은 힘센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희망 있음’의 강력한 표지로 길이 머물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적 또는 외적인 반대 세력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신앙인’의 삶을 더욱 다지고 실천에 옮기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불의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며, 불화가 아니라 평화를 이루어내고자 노력할 때마다, ‘힘센 분’이 세우시는 하느님 나라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건설되어 나갈 것입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1,15-26: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권능, 곧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있음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사람들은 오히려 그분을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15절)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20절).
성경에서 하느님의 손가락은 곧 성령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것은 성령의 힘으로 하신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곧 성령이시다. 그 손가락으로 돌판에 계명이 새겨졌듯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법을 새기신다.”(In Lucam Hom. 24,1 요약)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본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통해, 성령 안에서 역사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마 행위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친히 개입하시는 구원 사건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설명하신다. “힘센 자가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21-22절)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무장을 해제하시고, 우리가 사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자녀가 되도록 해 주셨다. 성 이레네오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강도(사탄)에게 사로잡힌 인류를 당신의 힘으로 풀어내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Adversus Haereses V,21,3 요약)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23절) 중간은 없다. 주님과 함께 모으든지, 아니면 사탄처럼 흩어 버리든지 둘 중 하나다. 따라서 신앙은 단순한 태도나 기분이 아니라 분명한 선택이다.
예수님께서는 또 경고하신다. 더러운 영이 쫓겨나간 집이 빈집으로 남아 있으면, 더 악한 영들이 들어와 그 집은 이전보다 더 악해진다고 하신다.(26절 참조)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성전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언제든 악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의 은총이 머무르지 않는 마음은 곧 악령이 거처하는 빈집이 된다.”(Hom. in Evang. 29,2 요약) 따라서 단순히 죄를 버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자리를 성령과 말씀과 성체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마음의 집이 하느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매 순간 기도와 성사 안에서 주님의 손가락, 곧 성령의 힘을 청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주님의 승리가 우리 삶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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