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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10일 (토)연중 제27주간 토요일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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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8 주일(군인주일)

19238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6:07

선배 신부님 한 분이 ‘산 위의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대안학교를 원하는 부모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고, 마치 초대교회의 신자들처럼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신부님은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책으로도 남겼습니다. 저는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신부님의 영성과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철새가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듯이, 지치고 힘든 신부님들이 그곳을 찾았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노동하면서 마음의 힘을 되찾았습니다. 그렇게 20년 넘게 ‘산 위의 마을’을 지켜 오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에는 제도와 규범이 필요하고, 공동체와 건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산 위의 마을’이 되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멀리서 불빛을 보고 찾아올 수 있는 곳, 지친 사람이 와서 쉬어 갈 수 있는 곳,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예전에 읽은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험준한 산골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거세게 흐르는 강이 있었고, 뒤에는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아픈 사람이 생겨도 병원에 갈 수 없었습니다.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곡괭이와 삽을 들고 산 입구에서 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하루도 포기하지 않고 굴을 팠습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들이 이어서 팠고, 다시 손자가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60년이 지나 마침내 산을 관통하는 길이 생겼습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아프면 도시의 병원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길이 없어서 죽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행동이 없는 시간은 그냥 흘러갑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 행동한 시간은 역사가 되고 때로는 신화가 됩니다. 그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으로 한 줄기 길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산 위의 마을’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비록 유배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처지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신다는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상황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용기는 주님께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행동하는 신앙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가는 곳에는 공동체가 생겼고, 공동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용기 있는 사도들과 행동하는 사도들이 있었기에 시련과 박해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삶은 ’산 위의 마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복’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것은 화려하고, 값비싼 옷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복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옷을 입을 때, 우리가 나눔의 옷을 입을 때, 우리가 인내의 옷을 입을 때, 우리가 용서의 옷을 입을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 안에서 감사의 옷을, 인내의 옷을, 나눔의 옷을, 사랑의 옷을 입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삶의 먼지를 헤아리며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빛나는 한 줄기 빛을 찾아 나서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이 ‘산 위의 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운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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