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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11일 (일)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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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40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24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은 우리

 

[말씀]


■ 제1독서(이사 25,6-10ㄱ)

기원전 8세기 말엽 이스라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제국 침략자들의 습격을 받아 도성 주변이 파괴되는 위기를 겪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백성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이 파괴의 역사는 곧 멈추게 될 것이라 예고하는 가운데, 옛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축제가 펼쳐질 것이며, 이 축제에 모든 민족이 축제의 옷을 걸치고 함께하러 오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 제2독서(필리 4,12-14.19-20)

필립피의 감옥에 갇혀 수인생활을 하는 중에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공동체 신자들로부터 물질적 도움을 받고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바오로는 물론 가난하고 고된 삶에 익숙해 있었으나, 신자들의 도움만큼은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 도움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함께 주고받아야 할 사랑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 자녀들에게 당신의 풍요로움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시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증거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 복음(마태 22,1-14)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실천함으로써 이 민족들이 그분 곁에 모여들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하도록 선택된 백성입니다. 그러나 이 백성은 선택되었다는 사실에만 만족한 나머지 선택에 따른 사명을 소홀히 함으로써 결국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기에 이릅니다. 이미 선택되었으니 잔치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 잔칫상은 다른 민족들을 향할 것이나, 그들도 당연히 갖추어야 할 예복은 준비해야 합니다.


[새김]


닫힌 세상, 지상의 재물에 집착한 나머지 이웃과 나누기를 거부하는 세상, 이기주의적 사고에 젖어 재물 축적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주 이런 꿈을 꿉니다. 분열이 없는 세상, 민족 차별이 없는 세상, 가난이 없는 세상! 상상만 해도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입니까 그러나 대개 우리는 꿈만 꿀 뿐 현실로 만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귀를 기울이거나 꿈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아름다운 세상,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하느님 나라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죽은 다음에나 생각해 볼 나라입니까 하느님 나라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신 나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문제는 하느님은 늘 함께하고자 하시는데, 그래서 이 지상 전체가 당신 나라이기를 바라시는데, 우리가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의 귀를 기울여 초대의 말씀에 응해야 합니다. 그 초대는 우리의 이웃들, 특별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통하여 전달됩니다. 이들과 함께한다면 하느님께서도 함께하실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처럼 우리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주위를 살피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당신 아드님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모두 하늘 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 이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한 주간, 더 열심히 기도하고 조금 더 희생하며, 사랑 실천이라면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활기찬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22,1-14: “아무나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해 오너라.” 

 

1. 구원의 잔치: 하느님의 초대

오늘 복음의 혼인 잔치 비유는 구원의 신비를 “하느님의 잔치”로 묘사한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사 25,6-10)의 성취이며, 하느님께서 시온산, 곧 교회를 통해 온 인류를 당신과의 친교로 초대하신다는 구원계획을 드러낸다. 이 잔치는 단순한 기쁨의 식탁이 아니라, “죽음이 영원히 없어지고, 모든 눈물이 닦여질”(이사 25,8참조) 하느님의 구원 잔치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원래 의도된 친밀한 일치로 회복되는 자리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 20,7) 곧, 잔치의 초대는 하느님을 ‘보는 삶’, 즉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완성되는 인간의 참된 생명을 상징한다. 

 

2. 초대의 거부: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

그러나 복음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응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밭으로, 어떤 이는 장사하러 떠난다.(5절) 이는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인간의 냉담한 태도를 드러낸다.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종들을 죽인 이들의 행위는 하느님의 사랑을 무시한 인간 불순종의 역사, 곧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상징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께서 초대하실 때, 거절하는 것은 이미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것이다.”(Sermo 112,1 요약) 

 

하느님은 강요하지 않으시지만, 그분의 초대를 외면하는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닫는 선택을 하게 된다. 따라서 하느님의 초대는 자유를 존중하지만, 동시에 책임을 요구하는 은총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자유로운 선물이지만, 인간은 그 은총에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2002항 참조) 

 

3. 예복의 의미: 믿음의 실천으로 드러나는 의로움

이제 비유의 두 번째 초점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11절)이다. 그는 초대받아 잔치에는 들어왔으나, 합당한 예복을 갖추지 않았기에 쫓겨난다.(11-13절) ‘예복’은 단순한 외적 형식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입는 ‘그리스도의 옷’(갈라 3,27)을 상징한다. 세례로 초대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고자 하는 믿음의 결단과 사랑의 실천으로 응답해야 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복이란 단지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신앙의 삶이다. 예복이 없는 이는 믿음을 입었으나 행위를 잃은 자이다.”(In Matthaeum Homiliae, 69,2 현대 요약) 

 

그렇기에 예복은 곧 ‘은총의 협력’이며, 구원의 초대에 합당한 삶의 변화를 뜻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은 단순한 입장의 문제가 아니라, 회개와 믿음, 사랑의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546항 참조) 

 

4.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복음의 결론은 냉정하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14절)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초대하시지만, 그분의 은총에 합당하게 응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는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보편적 의지(1티모 2,4)와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 함께 작용하는 신비를 보여 준다. 교부들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이가 부름을 받지만, 선택된 이는 적다. 이는 부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응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초대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복을 갖춘 믿음의 결실, 곧 하느님 사랑의 응답이 필요하다. 

 

5. 사랑의 응답: 믿음이 결실을 맺을 때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필리 4,12-14.19)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족과 신뢰를 고백한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 바오로의 신앙은 잔치 초대에 합당한 예복의 전형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 머물렀으며, 그 믿음이 ‘사랑의 행위’로 드러났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초대, 곧, 하느님의 구원 잔치에 응답하는 믿음의 결실을 상징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신앙은 사랑 안에서 활동할 때 살아 있는 것이다.”(1814항 참조) 

 

6. 결론: 초대받은 이로서의 사명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초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예복을 입고, 은총 안에서 믿음과 사랑의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그분의 혼인 잔치에 참되게 참여할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겠다. “그분께서 당신 아들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셨다. 그러나 그 잔치는 단지 먹고 마시는 자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하나 되는 자리를 위한 것이다.” (Sermo 45,2 요약)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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