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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14일 (수)연중 제28주간 수요일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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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192458 박양석 [pys2848] 스크랩 17:45

2026년 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나름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런 시련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일까요?”

 

제가 아무리 사제라 해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물음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냥 “하느님의 뜻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우리를 위한 그분의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거예요.” 등의 원론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의사가 쓴 글이 생각납니다.

 

암 선고를 내렸을 때, 환자의 반응이 “왜 제게 그런 암이 생긴 거죠?”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보다 ‘어떻게’에 신경 쓰는 사람의 치료가 훨씬 좋은 경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왜’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즉, 일어난 결과에 ‘왜’를 붙으면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사실 원인을 찾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보다 먼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직접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 원망하며 ‘왜’를 외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기도해야 했습니다. 이 모습 안에서 더 큰 은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불행 선언에 이들은 격렬한 적대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들이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고 전합니다(루카 11,53 참조). 아마 그들은 예수님께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지를 궁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먼저 찾아야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과 행적에 거짓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많은 시간과 환경을 주셨지만, 그들은 교만과 이기심으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하지만, 하느님에게서 더 멀어지는 말과 행동을 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루카 11,51)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잘못을 연좌제로 묻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전체가 예고하고 준비해 온 ‘구원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최종적으로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역대 모든 예언자 박해의 악순환이 바로 ‘이 세대’ 안에서 절정에 달해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왜’라는 질문으로 주님께 불평불만을 드리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일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기도하면서, 우리가 할 일을 당장 실천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늘 주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았지만,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마크 트웨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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