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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18일 (일)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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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523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00

김건태 신부님_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말씀]

 

■ 제1독서(이사 2,1-5)

기원전 8세기의 예루살렘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남 유다 왕국의 수도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웃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고 있었기에 유다의 주민들로서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하여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적 위기 속에서 지도계급 출신인 예언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전제로 수도와 왕국에 대한 찬란한 미래를 예고합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이 늘 하느님을 향하여 서 있다면,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새로워진 세상의 한가운데에 자리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 제2독서(로마 10,9-18)

유다교도들에게 하느님은 율법 준수 여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리시는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기까지에 이른 이와 같은 의식은 결국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기본 신앙을 망각한 데서 빚어진 결과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읽고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그분의 사랑은 무상적이며 무한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온몸으로 그대로 전해 줄 사람들과 사명 의식이 필요합니다.

■ 복음(마태 28,16-20)

지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예수님은 당신의 사도들에게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 그들이 모두 당신의 제자가 되게 하라는 사명을 내리십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이념을 수용하여 그 이해집단의 구성원이 된다고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스승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들이 철저하게 체험했던 대로 하느님의 삶에 동참하는 삶을 말하며, 이 삶은 나누고 베푸는 일상적인 삶을 통하여 지상에서 우선 구현되어야 할 삶입니다.


[새김]

 

모세 시대 시나이산에서 계약이 체결되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 계약의 궤가 예루살렘 성전에 모셔진 이래 이스라엘 백성의 선민의식은 꽃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선택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한 나머지 선택에 따른 사명을 소홀히 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사야 등과 같은 예언자들이 잘못된 선민의식에 대한 반성과 질책을 소리 높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택은 하느님의 무상적인 은총의 결과였기에, 이스라엘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일상적인 삶 가운데 실천하고 전해야만 했습니다.

 

선택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약속해 주는 은총의 표지라면, 세례성사를 통해 선택을 확인한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온몸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선교사명은 선택의 순간부터 이미 주어진 셈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하느님과의 친교의 삶 속에 살면서 우리는 마땅히 이 사랑, 이 생명의 만남을 이웃들과 나누고 확인해야 하며, 하느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가 이 땅 위에 세워질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이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을 힘차게 선포하며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복된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28,16-20: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1. 복음 선포의 날, 평화를 향한 기도

오늘은 전교주일이다. 교회는 오늘 복음 선포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하느님 안에서 참된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 세상을 바라본다. 특히 우리 민족은 여전히 분단의 현실 속에 살고 있기에, 이날의 미사는 민족의 복음화와 평화적 일치를 위한 간절한 기도의 시간이다. 복음 선포는 단순한 전도의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확산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인간의 전략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의 사랑의 운동이다. 

 

2. “교회는 본성상, 선교가 사명이다.”

선교 교령은 이렇게 선언한다.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2항 의역) 이는 단순한 활동의 강조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 자체를 밝히는 말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할 때에만 교회로 존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파견에서 교회는 태어났고, 그분의 사명 안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구세주의 사명”(Redemptoris Missio)에서 말한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를 몰아가는 불길이다.”(RM 1항 의역) 즉, 교회는 단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불꽃을 세상에 옮기는 그릇이다. 

 

3. 성부의 “자기 확산적 사랑”: 선교의 근원

“선은 자기 확산성을 가진다.”(Bonum est diffusivum sui). 이 고전적 원리는 하느님의 내적 생명과 선교의 신비를 동시에 밝혀준다. 하느님은 지선(至善)이며, 사랑 자체이기 때문에, 그 사랑은 본성적으로 자신을 나누고 확산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인류 구원을 위해 “밖으로 향하게”(exitus) 하셨고, 그 사랑의 절정에서 성자와 성령을 세상에 파견하셨다. 선교 교령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교회는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가진다.”(2항) 따라서 선교란, 단순히 교회가 외적으로 행하는 활동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 사랑이 세상으로 흘러나오는 운동, 곧 하느님의 “자기 확산”(divina diffusio)이라 할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 흘러넘칠 때, 그분은 자기 자신을 주신다.”(De Trinitate VIII,10,14) 그러므로 선교는 결국 하느님의 자기 나눔, 그 사랑의 파문이 세상에 미치는 사건이다. 

 

4. 선교하는 하느님과 교회의 사명

하느님은 선교하는 하느님(Deus missionarius)이시다. 성부는 성자를 보내시고, 성자는 성령과 함께 교회를 파견하신다. 이 삼위일체적인 “파견의 연속성” 안에서 교회의 사명이 이루어진다.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는 이렇게 선언한다. “교회는 복음 선포를 위해 존재하며, 복음 선포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EN 14항) 그리스도의 파견은 교회의 파견이 되고, 교회의 파견은 성부의 사랑이 세상 안에 머무르게 하는 표징이 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침묵한다면, 세상은 사랑의 하느님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In Matthaeum hom. 4,3 의역) 

 

5. 복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19-20절) 이 말씀은 교회의 근본 헌장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자, 모든 신자의 사명 선언이다. 주님께서는 또한 이렇게 약속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0절) 이 약속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선교의 근거가 되는 현존의 약속이다. 성체 안에서, 말씀 안에서, 교회의 사명 안에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분은 이제 떠나셨으나, 여전히 머물러 계신 분, 곧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1,23)라는 말씀의 완성이시다. 

 

6. 한국 교회와 민족 복음화의 부르심

한국 교회는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다. 그 피는 곧 하느님의 사랑이 민족 안으로 흘러든 표징이다. 이제 우리는 그 순교적 사랑을 이어받아, 복음화된 민족이 되기 위해 다시 파견된다. 민족 복음화는 단지 교세 확장이 아니라, 복음의 가치로 사회와 문화를 새롭게 하는 사랑의 사명이다. 분단된 민족 안에서 복음은 화해의 언어가 되고, 상처 입은 이들에게 평화의 약속이 된다. 성 바오로 6세는 이렇게 말했다. “복음은 오로지 사랑으로만 전해질 수 있다.”(EN 79항) 우리의 말보다 삶이 복음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랑의 표징으로, 복음의 현존으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7. 맺음말: 선교는 하느님 사랑의 확산이다.

결국, 선교는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세상에 주시는 행위, 곧 “원천적 사랑”(fontalis caritas)의 결과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19절) 이 부르심은 단지 외국 선교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모두 파견된 제자들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 기도와 사랑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확산시키는 도구가 될 때, 그것이 곧 복음화의 완성이며, 민족의 일치와 평화의 길이 될 것이다. “주님, 저희를 평화의 일꾼, 복음의 증인으로 보내 주소서.”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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