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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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9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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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참평화
비신자들이 우리에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러 오셨는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러 오셨는지를 묻는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분은 평화를 가져다주고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갈라진 형제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오셨다고 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바로 이를 위해서였음을 설명하고 입증하기 위해서 복음서의 여러 본문을 찾아 인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읽는 말씀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하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아니라 분열’은,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집안 식구가 서로서로 갈라서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예고입니다. 분열을 조장하시는 예수님, 하나 됨이 아니라 갈라서게 하시는 예수님, 어느 누가 이런 예수님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어느 누가 예수님의 입에서 이런 말씀이 흘러나오리라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분열이 아니라 평화를 주러 오신 분임을 굳게 믿고 있는 우리에게는 오늘 말씀의 자구가 아니라 그 의도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의 진정한 뜻이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데 있지 않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말미암아 분열이 일어날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분명 예수님은 말씀과 행적으로 평화를 주러 오셨으나, 그 평화의 말씀과 행적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자리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대나 마태오 복음저자 시대나 지금이나, 어떤 이들에게 예수님은 평화의 장인으로 인식되는가 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분열을 조장하시는 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세상 어디에서나 오해와 단절과 다툼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며, 많은 경우 한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임을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정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의 이 가르침을 건네신 의도는, 그러한 오해와 편견과 속단에 굴하지 말고, 주어진 사명 곧 복음 전파 사명에 충실하라는 데 있음을 간파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모습임을 강조하고자 하십니다. 스승 예수님은 사람들의 그러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하고 소리 높이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파견될 제자들이 마음 한편에 새기고 살아야 할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십니다. 세상의 오해와 편견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오히려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주님 말씀 전파에 몸과 마음을 다할 것을 독려하십니다.
오늘 하루, 비록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 행위를 분열을 조장하는 일로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자리하게 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으로, 신앙 전달에 최선을 다하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2,49-53: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49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불”은 단순한 심판의 불이 아니라, 성령의 불, 곧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의 불이다. 이 불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고, 새롭게 하며, 불태워 거룩하게 만드는 성화(聖化)의 불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의 불을 지피기 위함이다. 이 불은 냉담한 마음을 녹이고, 죄의 얼음을 태워 없애며, 신앙의 열정을 일으킨다.”(In Lucam, 7,132 의역) 이 불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바로 그 말씀의 불이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50절) 이 “세례”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세례, 곧 수난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례는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사이며, 사랑의 완성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이렇게 주해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세례는 물이 아니라 피였다. 그분의 십자가는 세례의 통로가 되었고, 그분의 피는 세상의 죄를 씻는 물이 되었다.”(Homilia in Matthaeum, 85,3 의역) 그분의 세례는 인간의 죄를 정화하는 불이며, 그 불 속에서 사랑은 완성되었고, 구원을 위한 정화의 불이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51절) 이 말씀은 참된 평화는 진리의 불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복음의 불이 타오를 때,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갈등을 일으킨다. 하느님을 택할 것인가, 세상을 택할 것인가? 성 예로니모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분열은 죄의 일치와 악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다. 세상의 평화가 죄 안에서 이뤄진다면, 그 평화는 불의의 평화일 뿐이다.”(Commentarium in Lucam, 12,51 의역) 이 분열은 결국 우리를 선택의 자리로 이끈다. 하느님을 첫째로 섬길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편안함을 따를 것인가? 하느님을 외면하는 자는 결코 참된 사랑의 질서를 세울 수 없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묵상한다. “우리 안에는 두 불이 타오른다. 하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불이고, 다른 하나는 탐욕의 불이다. 전자는 영혼을 위로 올리고, 후자는 땅으로 끌어 내린다.”(Enarrationes in Psalmos, 38,10 의역) 그리스도의 불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일으킨다.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영혼은 자신 안의 죄와 싸우며, 내적 분열을 통해 정화되어 간다. 그 불은 고통스럽지만, 그 불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집, 곧 거룩한 성전으로 변화된다. 예수님께서 지르신 불은 파괴의 불이 아니라 사랑의 불, 정화의 불, 복음의 불이다. 그분의 불은 세상을 새롭게 하고, 우리를 불타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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