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23일 (금)연중 제29주간 금요일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613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1:01

김건태 신부님_회개의 삶

 

우리 인간에게 주신 천주 성령의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는 판단력 또는 분별력입니다. 세상의 일에 관하여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판단하고 위험 수위를 측정하며 그에 걸맞은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실 자랑할 만도 합니다. 예수님이 군중에게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하고 개탄하시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 이 판단력 행사가 필요한 곳은 세상일이 아니라, ‘이 시대’, 곧 요한 세례자가 예고했고 예수님이 몸소 하느님의 능력을 표징으로 보여주시며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고 있는 ‘이 시대’에 관한 일입니다: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가장 귀가 어두운 사람은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판단하는 일에서, 문제는 듣기를 마다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내부의 소리, 양심의 소리는 들어야 하는 데도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양심이 일러주는 그 길이 마음에 내키지 않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잘못된 의식을 전환하고, 몸에 밴 ‘귀한’ 버릇을 포기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성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는 일을 가리킬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어 최소한 양심의 소리만큼은 따르겠다는 결심을 앞세우지 않는 한, 우리는 귀가 어두운 사람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각각의 세대는 결정적인 시대를 살고 있으며, 우리의 미래는 이 시대에 관한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오늘 우리가 겪어야 할 사건들과 만나는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들어야 합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절박한 부르심, 사랑 실천을 독려하는 간절한 부르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무나 자주 듣기를 마다하여 어두운 귀를 들이대거나 자랑하는 무례를 범할 때가 많았음을 반성하며,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일례로 소개하시는 장소는 준엄하기로 이름났던 ‘로마 법정’입니다. 한번 소송이 펼쳐지면, 그 과정이 가혹하기 이를 데 없던 법정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법정의 이 냉혹한 현실을 상기시키시면서, 재판관 앞에 서기 전에 합의를 봄으로써 최악을 모면하도록 권고하십니다. 이 권고를 통해서 예수님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 최후의 심판 날에도 두려움이나 초조함 없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회개의 길을 걸어갈 것을 촉구하십니다.

 

따라서 너무 늦지 않도록 회개를 결심해야 합니다. 무자비한 판관으로서의 주님이 아니라, 한없이 자비로우신 판관으로서의 주님을 뵙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결단은 회개입니다. 회개를 망설일 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성령께서 우리에게 큰 선물로 내려주신 판단력을 기초 삼아, 회개만이 준엄한 징벌을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가슴에 새기며, 등 돌린 삶에서 주님을 향해 다시 돌아서 신앙의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가는, 결정적인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2,54-59: 법정으로 가는 길에서 화해하도록 힘써라. 

 

“너희는 서쪽에서 구름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54-56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듯이, 구원의 때와 회개의 때를 분별하라고 하신다. 성 베다 존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날씨의 징조를 읽을 줄 알면서 주님 구원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In Lucae Evangelium, 12,54 의역)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구원의 표징이며,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마지막 시대의 결정적 징조이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표징을 보지 못한 것이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58절) 우리는 모두 죄의 빚을 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채무자들이다. 그런데 아직 “길 위에” 있을 때, 곧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과 화해해야 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 “고발자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우리의 양심을 고발하고, 우리를 회개로 이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과 화해하면, 심판관 앞에서 고발당하지 않게 된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7,181 의역) 말씀을 따라 살면 우리를 변호하지만, 말씀을 거슬러 살면 우리를 고발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59절) 이 구절은 영혼의 정화와 최종 심판의 실재를 암시한다. 하느님의 자비는 크지만, 그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에게는 정의가 남는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스스로 벌을 받지 않는다면, 저세상에서는 정의가 우리를 징벌할 것이다. 그 감옥은 하느님의 자비가 더 이상 역사하지 않는 곳이다.”(Sermo 37,3 의역) 그렇기에 주님께서 주신 오늘, 이 순간이야말로 은총의 시간, 회개의 기회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2코린 6,2) 

 

하느님과 화해하는 일은 동시에 이웃과의 화해를 요구한다. 우리가 이웃에게 진 빚, 용서하지 않은 마음, 해를 끼친 행동은 모두 하느님 앞에 빚으로 남는다.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개인적 뉘우침에 머물지 않고,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죄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끊을 뿐 아니라, 교회와의 일치에 상처를 입힌다. 고해성사는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며 동시에 교회 공동체와의 화해를 회복시킨다.”(1440항) 그리스도의 피로 화해한 우리는 이제 세상에서 화해의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2코린 5,18) 재판관이신 주님 앞에 서기 전에, 우리는 ‘화해의 길’에서 ‘은총의 길’을 택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65 1

추천  2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