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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25일 (일)연중 제30주일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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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19265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01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

 

[말씀]


■ 제1독서(탈출 22,20-26)

모세의 율법은 종살이 생활, 곧 자기 자신 안에 자신을 가두어놓는 자아 소외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한 인간의 내적인 의무 규정들을 표현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율법을 기초로 생산된 규정들은 종교법에서 필요불가결한 보충 부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규정들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하느님 바로 그분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처신하시는 분인지를 일러줍니다.

■ 제2독서(1테살 1,5ㄷ-10)

바오로 사도는 편지를 써 보내는 테살로니카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들도 사도의 모범을 따라 처신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테살로니카 공동체 주위의 신자들에게 신앙과 사랑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우상들을 멀리하고 참 하느님을 향함으로써, 그들은 이제 하느님의 나라, 그들에게 영원히 주어질 이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더욱 힘쓸 것입니다.

■ 복음(마태 22,34-40)

율법 학자들은 율법의 핵심을 가리는 제사 규정들을 양산해냄으로써 모세 율법의 참다운 정신을 자주 망각하거나 그렇게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논쟁하는 가운데 학파들 사이의 분쟁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억설에 휘말리기를 거부하시면서, 실은 하나인 두 계명이 핵심적인 계명임을 밝히십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향하는 진정한 길임을 일깨우십니다.


[새김]


많은 이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양립시키고자 합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가 이웃을 위해 활용할 수 없는, 또는 활용해서는 안 되는 별도의 시간과 재물과 정성으로만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리스도교 가르침이 늘 거부되었던, 거센 저항에 부대껴야 했던 유일한 항목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자아 소외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진정한 관계가 우리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향해 우리 자신을 활짝 열 수 있도록 이끈다는 신념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세 율법의 첫 두 계명, 그리스도교 법의 기초가 되는 이 두 계명은 불가해소의 핵심 가르침으로 머뭅니다. 이 두 계명은 믿음으로 새로워진 사람이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할 의무 규정의 양면성을 지닙니다. 우리의 형제를 대하는 자세가 바로 하느님을 섬기는 우리의 진정한 신앙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 타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가 바로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을 보장해 주는 기본적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밝히 드러나며, 이웃 사랑은 우리를 하느님 사랑으로 곧장 이끌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경의 가르침, 하느님 말씀의 전부요 핵심임을 일러주십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을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이 사랑을 이웃 사랑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사명 앞에 섭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우리보다 못한 처지에서 힘들어하는 이웃을 살피는 가운데,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맘껏 펼쳐나가는, 의미 가득하고 보람된 나날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22,34-40: “네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오늘 복음은 율법 전체를 요약하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둘로 나뉠 수 없는 하나의 계명이다. 하느님 사랑은 그분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안에서 구체화 되어야 하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실제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1. 율법의 중심: 사랑의 계명

복음에서 율법 학자가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36절)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적 호기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613개의 율법 조항 가운데 어느 것을 ‘가장 큰 것’으로 보는가를 통해, 예수님을 특정한 종파의 입장으로 몰아넣으려 한 것이다. 예수님은 신명기 6,5을 인용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7절) 이 말씀은 유다인의 기도 ‘쉐마 이스라엘’(신명 6,4-9)의 핵심으로, 하느님께 대한 전인적 사랑(총체적 헌신)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신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39절; 레위 19,18)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두 계명을 “이와 같다.”라고 말씀하시며, 그 위계의 차이를 없애고 하나의 사랑으로 결합시키신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40절) 

 

2. 사랑의 통합: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된 인간 사랑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여라.”(In Epistula Ioannis ad Parthos Tractatus 7,8 의역) 그의 의미는 단순하다.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는 이는 이미 그분의 뜻 안에서 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위는 모두 사랑의 질서 안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 안에서 모든 인간을 그분의 모상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요한 사도도 같은 말을 한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이 구절은 “하느님 사랑”이 결코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진실성을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내야 한다. 

 

3. 강생의 신비와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창세 1,26) 그러나 강생의 신비를 통하여, 이 모상은 더 완전하게 드러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아들됨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분을 닮아가는 “신화”(神化)의 여정을 걷게 되었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즉, 인간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과 같은 사랑으로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이 사랑이야말로 강생하신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는 길이며,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드러난 사랑이다. 

 

4. 하느님 중심적 박애: 사랑의 질서 안에서

탈출기 22,20-26은 이미 이웃 사랑을 단순한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신앙의 의무’로 규정한다. “너희가 과부나 고아를 억누르면,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 하느님 사랑이 없다면 이웃 사랑도 공허하고, 이웃 사랑이 없는 하느님 사랑은 거짓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성당 안에서 제단을 꾸미는 동안, 가난한 이가 굶주리고 있다면 그 제단은 하느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설교집 요약) 이처럼 참된 예배는 성전 안의 기도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는 정의와 자비의 행위 안에서만 참된 제사가 되기 때문이다. 

 

5. 사랑의 종합: 우상으로부터의 자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계명은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라, 인간이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길이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권력, 돈, 명예)의 노예가 된다. 그것이 곧 우상숭배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사랑은 모든 계명의 요약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다리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동시에 그분의 모상인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6. 결론: 사랑의 십자가

이 두 계명은 수직(하느님 사랑)과 수평(이웃 사랑)의 십자가를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동시에 이루셨다. 따라서 우리도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형제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37.39절) 이 사랑 안에서 모든 율법과 예언이 완성되며, 이 사랑 안에서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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