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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26일 (월)연중 제30주간 월요일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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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68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3:14

김건태 신부님_주님의 날

 

신명기에 의하면, 안식일은 주님의 날처럼 이집트 종살이로부터의 해방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은 본디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자유의 표지로 설정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안식일은 다른 날보다 더 많은 계명과 금령을 준수하도록 규정된 날로 변해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실질적인 의미를 되돌려 놓고자 하십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자유를 누리며, 이로써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날로 복원하고자 하십니다.

 

해방의 날! 

오늘 예수님은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린” 여인 하나를 통하여 안식일이 해방의 날임을 선포하십니다. 이 여인은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던” 여인입니다. 사탄은 이 여인이 하늘을 향하여, 다시 말해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청을 올리지 못 하게 했을 것이며, 병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어떤 인간적 방법과 노력도 효험이 없었던 터라 이미 오래전에 치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도록 이끌었을 것입니다. 치유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감지하신 예수님은 여인을 부르시고 말씀으로 사탄을 쫓아내시며 손을 얹어 치유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안식일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자 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며, 여인은 이제 ‘묶여 있던 상태’에서 ‘해방’됩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이 행하신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나, 안식일의 왜곡된 의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분개하여’ 이의를 제기합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되어 직접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군중을 향하여 이의를 제기하나,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직접 응답하십니다.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집짐승에게는 마실 물을 주거든, 하물며 하느님의 자녀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하느님이 그 옛날 원대한 약속을 내리신 아브라함의 딸, 그의 후손입니다. 이 여인은 해방에 대한 희망 없이 사탄에 의해 오랫동안 묶여 있었기에, 당신의 구원 능력과 신실성을 드러내기에는 오히려 주님의 날인 안식일이 가장 적합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을 병마의 사슬에서 풀어주고 신앙의 물을 주기에 안식일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역설적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감사의 날!

안식일은 또한 하느님을 흠숭하는 날, 창조주의 능력에 순응하는 날, 그분의 업적 앞에 찬미와 감탄을 높이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치유로 해방된 이 여인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찬양과 기쁨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결과입니다. 이처럼 찬양하며 감사드리고, 기뻐하며 감사의 마음을 높이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며, 위대한 신앙행위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오랜 시간 병마에 시달리던 여인을 치유하시며 해방을 선사하고, 그 여인과 이 자리에 함께한 군중의 마음속에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시며, 안식일을 제 자리에 돌려놓으십니다. 인간의 아집과 편협으로 빚어진 속박의 날을 해방의 날로 돌려놓으십니다.

오늘 하루,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나의 말과 행동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지향하도록 노력하는, 그리하여 이웃의 생명에도 큰 관심을 쏟는, 멋진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3,10-17: 안식일의 치유로 인한 논쟁 

 

예수님께서는 18년 동안이나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던 여인을 치유하신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12절) 주님의 이 말씀은 속박에서의 해방 선언이었다. 그녀의 굽은 허리는 하느님을 향해 일어서지 못한 인간의 영혼 상태를 상징한다. 땅만 바라보던 영혼이 하늘을 향해 다시 일어서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인간의 참된 존재 목적을 회복한 것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말한다. “여인의 굽은 허리를 펴신 분은, 인간의 굽은 영혼을 곧게 펴시어 하늘을 바라보게 하신 분이시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VII, 213 요약) 

 

주님께서 여인을 치유하신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러나 회당장은 그 치유를 보고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14절)라고 비난한다. 이는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잃은 종교적 형식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이유는 “창조의 완성과 생명의 축복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탈출 20,8-11 참조)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시며 말씀하신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가지 않느냐?”(15절) 이 말씀은, 안식일이 생명을 해방하는 날임을 상기시키는 선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해설한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사랑의 날이다. 그날은 쉬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날이다.”(Sermo 25,7 의역) 주님께서 안식일에 여인을 고치신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의 일곱째 날에도 여전히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표징이다. 

 

여인이 치유되자, 군중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한다. 예수님의 치유는 인간을 죄와 억압에서 해방하는 구속 사건의 예표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의 굽은 본성을 일으켜 세우시어, 다시 하느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셨다.”(Adversus Haereses, V, 16,2 요약) 이 여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굽은 세상 전체를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똑바로 일어서게”(13절) 하신다. 

 

회당장은 외적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마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모르는 위선자였다.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아!”(15절)라고 꾸짖으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경고한다. “위선자는 하느님의 집 안에서도 하느님을 모욕한다. 왜냐하면, 그는 율법의 말은 지키지만, 그 정신은 죽이기 때문이다.”(In Matthaeum Homilia 72,2 의역) 우리에게도 이러한 유혹은 늘 있다. 형식과 규율을 지키면서도 자비와 사랑을 잃어버린 신앙,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가장 경고하신 “위선의 영”이다. 참된 신앙은 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을 살리고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참된 안식은 ‘쉼’이 아니라, ‘새로움’이며, 참된 예배는 ‘의식’이 아니라, ‘자비’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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