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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27일 (화)연중 제30주간 화요일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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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700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40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 나라 건설

 

예수님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는 실제로 가장 작은 씨앗은 아니지만, 우리말의 ‘깨알’처럼, ‘겨자씨처럼 작다’라는 말이 하나의 속담처럼 가장 작은 것을 가리키는 데 쓰였습니다. 겨자는 한해살이풀로 성장이 빨라 좋은 조건 속에서는 3m까지 자라 새들이 찾아들어 깃들기도 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는 출발선상에서는 작고 초라하고 불안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완성은 놀랄만한 결과를 보여줄 것임을 일깨우십니다. 이어서 ‘누룩’이 등장합니다. 누룩은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거나 막걸리를 빚는 데 사용하는 발효종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밀가루 서 말속에 집어넣었더니” 하는 표현으로 보아 제빵에 관한 것으로, 한 줌의 누룩이 두 말 정도의 밀가루를 100명분의 식사에 충분한 양으로 부풀게 한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굳이 겨자씨와 누룩 자체를 비교하자면, 겨자씨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눈으로 볼 수 있고, 그 결과 또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누룩은 밀가루 반죽 속에 뒤섞여 눈에 보이지 않고, 그 결과 또한 감춰진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유의 의도 측면에서 본다면, 겨자씨 비유는 크기의 문제로서 작은 것이 큰 것으로 성장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면, 누룩 비유는 분량의 문제로서 적은 양으로 많은 양을 일구어낸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어, 둘 다 보잘것없는 출발과 엄청난 결과 사이의 대조 관계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우선은 제자들에게, 이어서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제자들 또는 그리스도교가 시작 단계에서는 유다교 또는 백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핍박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비좁은 이스라엘 땅을 떠나 이방인 세계를 향해 전진을 거듭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 자체가 사도들은 물론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파견하신 분 앞에, 그 결과가 엄청나다 하더라도, 겨자씨처럼 작은 존재임을 늘 의식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하며, 누룩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부풀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도 간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비유 말씀을 통해 하느님 나라 건설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이 나라 건설에 초대된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어떠한 역경과 몰이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 앞에 섭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 나라 건설의 기초가 되는 진실을 좇고 정의를 추구하며 일치를 도모하는 하루, 아니면 적어도 거짓을 피하고 불의와 맞서며 분열을 멀리하는, 그럼으로써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일조하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3,18-21: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19절) 겨자씨는 보잘것없고 매우 작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생명력을 품고 있다. 하느님 나라는 가장 작고 낮은 모습으로, 겸손 속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능력으로 시작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해석한다. “겨자씨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땅에 떨어져 죽을 때 거대한 나무가 되듯이, 그리스도의 복음도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온 세상에 퍼졌다.”(In Matthaeum Homilia 46,2 의역)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으로 작고 낮고 겸손하게 오셨지만, 그분 안에 하느님 나라의 무한한 생명이 담겨 있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묵상한다. “겨자씨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작고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으나, 그분 사랑의 불길은 세상을 불태운다.”(Sermo 101,2 의역)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 커지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든다.”(19절) 처음에는 작게 시작되었지만, 복음은 세상 끝까지 퍼져 하느님의 자녀들이 그 안에서 안식을 찾는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주석한다. “새들은 하느님 말씀에 매혹된 영혼들이다. 그들은 교회의 나무에 깃들어 하느님 말씀의 그늘에서 쉰다.”(Homilia in Lucam 31 의역) 하느님 나라는 믿음의 뿌리에서 자라고, 덕행의 가지로 뻗어, 사랑의 열매로 완성된다. 

 

“하느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21절) 누룩은 보이지 않게, 그러나 반죽을 변화시킨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도 우리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변화를 일으킨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설명한다. “누룩은 말씀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스며들어 부패를 멈추게 하고, 새 생명으로 발효시킨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VII,233 의역) 겉모습은 그대로일지라도, 우리의 내적 세계 전체가 새로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누룩의 기적이다. 이 “여인”은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는 세상에 하느님 말씀의 누룩을 심는다. 말씀이 성령의 힘을 받아 인간 안에서 역사할 때, 우리의 마음은 천상의 생명으로 부풀어 오른다. 성 이레네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성령께서는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반죽을 발효시키는 누룩이시다. 그분은 인간의 전 존재를 하느님의 생명으로 변화시키신다.”(Adversus Haereses, V,8,1 의역)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내적 혁명이다. 씨앗처럼 작게, 누룩처럼 보이지 않게,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자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요약한다. “겨자씨는 불타오르는 사랑, 누룩은 감추어진 은총이다. 사랑이 커지고 은총이 퍼질 때, 그곳이 곧 하느님 나라다.”(Quaestiones Evangeliorum, I,14 의역)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그 씨앗은 우리 안에 심어지고, 그 누룩은 우리 안을 발효시키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라난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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