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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모든 성인 대축일

192757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0:50

오늘은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또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위령성월의 첫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성인들뿐만 아니라 이름 없이 살다가 하느님 품에 안긴 수많은 성인을 기억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그들을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라고 전합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이들이 흰옷을 입고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교황과 주교와 사제도 있을 것이고, 평범한 부모와 노동자와 농부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난한 이에게 밥을 나누고, 아픈 가족을 돌보고, 억울한 일을 참고, 남몰래 눈물을 닦아 주었던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인은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사랑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포트워스 본당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본당 옆에 숲이 있었는데 노숙인들이 머물면서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저 숲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본당 신부님은 불평만 하지 않고 숲의 주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수소문하여 주인을 만나 본당의 사정을 설명하였고, 놀랍게도 주인은 그 숲을 본당에 기증해 주었습니다.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찾아갔고, 문을 두드렸고, 정중하게 청했더니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성인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고통과 시련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세상의 높은 문만 두드리지 않고, 가난한 이와 외로운 이의 닫힌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자기의 뜻만 이루어 달라고 청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용기와 지혜를 청했습니다.

 

저도 서울에서 본당 신부로 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지나가면서 성당 뒤편 산의 나무들이 많이 쓰러졌고, 성당 앞 아파트의 옹벽도 밀렸습니다. 서울 시장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저는 산을 정비하면서 일부를 깎아야 다음에 그런 일이 생겨도 안전할 거라고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길이 열렸고, 성당에 필요한 공간이 생겼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된 일이 아닙니다. 필요가 있었고, 사람을 만났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무엇인가를 떨어뜨려 주실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한 걸음 움직이게 하시고, 사람을 만나게 하시며, 이웃의 마음을 열어 응답해 주십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기적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믿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덟 가지 참 행복을 선포하십니다.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세상은 많이 소유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를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행복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성인들은 바로 이 참 행복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주교가 성체를 영해 주든 본당 신부가 성체를 영해 주든 우리가 받아 모시는 분은 똑같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빵집 사장이 빵을 배달하든 직원이 배달하든 중요한 것은 좋은 빵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직무와 역할은 다르지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하나이고, 우리가 나누는 사랑도 하나이며, 우리가 섬기는 주님도 한 분이십니다. 직책이 사람을 성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직책과 삶을 통하여 얼마나 사랑하고 나누고 섬겼는지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우리는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가족, 친척과 은인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과 위령성월이 이어지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성인들을 바라보고, 내일 위령의 날에는 아직 정화가 필요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졌던 직함과 재산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장이라는 이름도, 회장이라는 이름도, 주교나 신부라는 이름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숲에도 주인이 따로 있었듯이, 우리가 가진 땅과 집과 재산도 궁극적으로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느님께서 잠시 맡겨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위령성월은 죽은 이만을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우리도 언젠가 하느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무엇을 소유했는가보다 무엇을 나누었는지, 어떤 자리에 있었는가보다 누구를 섬겼는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보다 얼마나 낮은 곳으로 내려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성인은 우리가 바라보기만 하는 먼 곳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도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으니,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삶의 문이 닫혀 있다고 느껴질 때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뜻을 구하고, 참된 행복의 길을 찾으며, 사랑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높은 자리를 얻기보다 내가 섬겨야 할 사람을 찾고,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청하십시오.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갈등이 있는 곳에서 평화를 이루며, 외로운 이의 벗이 되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루하루 복음의 참 행복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오늘의 성인입니다. 위령성월을 시작하며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고, 우리도 언젠가 모든 성인과 함께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사랑과 자비의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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