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32 주일(평신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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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0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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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꽃은 벌에게 꿀을 내어주고, 벌은 꽃가루를 옮겨 열매를 맺게 합니다. 나무는 새에게 쉴 자리와 먹이를 내어주고, 새는 씨앗을 멀리 옮겨 숲을 넓혀 줍니다. 어느 한쪽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는 상생과 공생의 모습입니다. 교회에도 서로 다른 신분과 직분이 있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 지체가 한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눈이 손에게 “너는 필요 없다.”라고 할 수 없고, 머리가 발에게 “너는 쓸모없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는 서로 경쟁하거나 우열을 가리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은사와 소명으로 서로를 살리고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동반자입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제가 다녔던 신학교의 산책길에는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라는 글이 큰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은사 신부님께서 신학생들이 산책할 때마다 그 글을 읽고 자신이 어떤 사제가 되어야 하는지 묵상하도록 세워 놓으셨습니다.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사제의 모습일 것입니다. 말씀을 성실히 선포하고, 성사를 거룩하게 집전하며, 아픈 이들의 손을 잡아 주고, 권위보다 사랑으로 섬기는 사제입니다. 반대로 사제가 바라는 평신도의 모습도 있습니다. 세례의 은총을 삶으로 드러내고,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를 함께 세우며,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기쁘게 나누고, 가정과 일터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평신도입니다. 사제는 말씀과 성사로 평신도의 믿음을 북돋우고, 평신도는 기도와 봉사와 삶의 증거로 사제의 직무를 풍요롭게 합니다. 서로에게 기름을 채워 주는 등잔이 될 때 교회는 세상의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열 처녀는 모두 신랑을 기다렸고, 모두 등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처녀는 등잔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고, 나머지 다섯 처녀는 등잔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신랑이 늦게 도착하자 준비의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등잔은 눈에 보이지만 기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등잔이 신앙의 외적인 모습이라면 기름은 기도와 말씀, 희생과 봉사, 사랑과 나눔으로 채워지는 내적인 믿음입니다.
예전에 수학 시간에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배웠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러나 자동차만 있다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료가 있어야 하고, 운전자가 바른길을 선택하여 실제로 운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등잔은 빛을 밝히는 데 필요하지만, 기름이 없으면 어둠을 밝힐 수 없습니다.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결합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는 소중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러나 세례받았다는 이름만 가지고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례 때 고백한 믿음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하고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이를 찾아가며,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고, 잘못한 이를 용서해야 합니다. 등잔이 세례라면 기름은 은총에 응답하는 우리의 기도와 사랑과 실천입니다.
오늘 제1 독서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 기름을 ‘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요령이나 지식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선택하는 능력입니다. 지혜로운 사제는 평신도의 목소리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듣고, 지혜로운 평신도는 사제와 함께 공동체를 세워 갑니다. 지혜로운 신앙인은 잠시 얻을 수 있는 명예와 재물보다 영원한 생명을 선택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준비한 기름은 하루아침에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기도, 작은 희생, 따뜻한 말 한마디, 용서와 나눔을 통해 조금씩 채워진 것입니다. 우리의 등잔도 매일 그렇게 채워져야 합니다.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와 사제가 바라는 평신도가 함께 필요하고도 충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구원의 방주에 기쁘게 오를 수 있습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평신도를 섬기고, 평신도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복음의 빛을 밝혀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사랑의 등불을 밝히고, 일터에서는 정직의 등불을 밝히며, 본당에서는 친교와 봉사의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서로의 등잔에 기름을 채워 준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몸이 되고 세상은 그 빛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신랑이신 주님께서 오실 때, 등잔과 기름을 준비한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그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오늘 제2 독서의 말씀처럼 죽음도 우리를 주님에게서 갈라놓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우리가 그들과 함께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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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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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05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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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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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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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01
한택규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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