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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1월 8일 (일)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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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19293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31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 나라 맞이

 

[말씀]

 

■ 제1독서(지혜 6,12-16)

기원전 1세기 중엽, 한 유다인이 지혜문학적인 필체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는 ‘지혜’를, 자기의 잔칫상에 초대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는” 발광체로 소개합니다.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이 지혜는 자신을 열정적으로 찾고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신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지혜는 생명과 기쁨의 원천인 것입니다.

■ 제2독서(1테살 4,13-18)

초대교회 신자들은 승천하신 주님께서 곧 돌아오시리라는 기대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을 뵙지 못하고 죽는 이웃들을 보면서 이들은 근심 속에 젖어 들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문제에 답을 주기 위하여 사도 바오로는 주님은 언제든지 오시는 분이라는 기본적인 확신을 심어줍니다. 그러니 신앙인들은 언제나 깨어 기도하며 하느님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며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복음(마태 25,1-13)

우리에게 구원은 보장되어 있다는 확신은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안전보장이라는 세속적인 장치 속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꿈입니다.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가운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헛된 꿈을 경계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구원에 대한 꿈은 늘 간직하되, 이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오심을 언제나 깨어 기다려야 하며, 언제든지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김]

 

하느님 나라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근본적인 희망이며 그 희망을 채워주는 것임을 터득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그 나라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기다릴 대상이 아닙니다. 적극성을 띠어야 합니다. 모든 삶이 그 나라와 그 나라를 향한 준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듣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자주 성체를 모시며 주님과 하나 되고자 노력하는 것,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눈을 돌려 사랑 실천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 모두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준비 자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희망으로 새로워진 인간입니다. 희망이란 사람들이 그것을 미리 맛보고 즐기도록 촉구하는 까닭에 희망 없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삶이 생명력을 띠게 되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희망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늘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기에 온몸으로, 그리고 열정을 갖고 그 나라를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깨어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 지상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모든 이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구원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기도와 희생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평신도 주일인 오늘과 이 한 주간,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꼭 맞는 것으로 나누어주신 등잔을 받잡고서, 감사의 마음으로 기름 마련을 위해 애쓰며, 좀 더 여유 있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들과 함께 지상에서 이미 하늘나라 잔칫상을 그려보고 맛보셨으면 합니다.

 

 

아울러, 앞서가신 분들이 기름 마련에 부족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당신의 그 크신 자비로 용서해 주시고, 그분들 모두 영원한 천상 잔칫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청하는 기도 아끼지 않는 나날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1. 깨어 기다림의 의미

오늘 복음은 전례 주년의 마지막 시기를 향해 가는 우리에게 “마지막에 대해 깨어 있음”을 묵상하게 한다. 교회는 매년 이 시기에 종말과 재림,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새롭게 상기시킨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4)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행위, 곧 매 순간 주님을 기다리는 사랑의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깨어 있음은 행동하는 사랑이며, 삶 속에서 믿음의 빛을 꺼뜨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름을 채우는 일이다. 
 
2. 등불과 기름: 사랑의 상징
비유 속 열 처녀는 신랑이 오는 시간을 알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등불을 가지고 있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따로 준비하였다. 등불은 우리의 믿음을, 기름은 그 믿음을 유지하는 사랑의 실천을 의미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해설한다. “등불은 믿음을 의미하고, 기름은 사랑을 의미한다.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그 등불은 타지 않는다.”(Sermo 93,2 요약) 믿음의 불꽃이 사랑이라는 기름으로 계속 타오르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어둠 속에서 꺼지고 만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처녀란 사랑의 행위를 통해 믿음을 살아있게 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3. 기다림의 지연과 시험
비유에서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5절)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됨으로써, 초대 교회가 겪었던 신앙의 긴장 완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잠들었다는 사실보다, 신랑이 왔을 때 누가 준비되어 있었는가이다. 오리게네스는 이 구절을 이렇게 묵상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질수록, 세상은 졸음에 빠지고 영혼은 유혹에 노출된다. 그러나 신랑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영혼만이 깨어 일어나 그분을 맞이한다.”(오리게네스 해석)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초조한 불안이 아니라, 평온한 신뢰의 기다림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의 사랑을 깊게 만들고, 믿음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게 하는 은총의 시간이다. 
 
4. “나는 너희를 모른다.”: 닫힌 문 앞의 경고
미련한 처녀들이 문을 두드리며 “주님, 주님, 열어 주십시오!”라고 청했을 때, 신랑은 대답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12절) 이 말씀은 단순히 냉정한 심판의 선언이 아니라, 사랑 없는 신앙의 비극을 드러낸다. ‘알다.’라는 말은 성경에서 인격적 교제와 친밀한 사랑을 의미한다. 즉, 주님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우리를 아신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주님의 사랑은 원수에게조차 닫히지 않으며, 그 사랑 안에 사는 이들만이 하느님을 ‘참으로 안다.’”(2842항 요약) 따라서 깨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5. 기름을 채우는 삶: 신앙의 일상화
슬기로운 처녀들이 미련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라는 요청을 거절하는 장면은 이기심의 표현이 아니라, 책임 있는 영적 삶의 상징이다. 은총은 나눠 줄 수 있는 재산이 아니라, 각자의 자유와 선택 안에서 응답해야 하는 개인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가르친다. “다른 이가 기도했다고 해서, 그 기도가 너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하느님 앞에서의 빛은 각자가 지켜야 한다.”(Homiliae in Matthaeum, LXXVIII, 2 해석적 요약) 그리스도인은 공동체 안에서 살지만, 구원은 개인적 응답의 결단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매일의 작은 선택 안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6. 바오로 사도의 위로와 희망
오늘 제2독서(1테살 4,13-18)는 복음의 메시지를 ‘위로’와 ‘희망’의 차원에서 완성한다. “주님께서 오실 때,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이 함께 주님을 맞이하여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7참조)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려움으로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의 만남으로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분이 “혼인 잔치의 신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신랑을 향한 마지막 걸음이다. 
 
7. 결론: 사랑으로 깨어 있는 사람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13절) 이 말씀은 위협이 아니라, 사랑의 초대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에게 그분의 오심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다. 혼인의 날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우리는 그분을 향해 기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X, 9 재구성) 그렇다. 우리의 등불이 사랑으로 타오른다면, 그분이 밤중에 오시더라도 우리에게는 대낮과 같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슬기로운 기다림이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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