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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32주일 가해]

192942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11-08

[연중 제32주일 가해] 마태 25,1-13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이제 2026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다음주면 “가해”가 끝이 나고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해인 “나해”가 시작되지요.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가 되면 우리는, 각자의 삶을 마무리하게 될 ‘종말’의 그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그 준비의 핵심은 ‘깨어있음’입니다. 이는 잠들지 않고 억지로 버티는 육체적 깨어있음이 아니라, 늘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영적 ‘준비’상태를 가리키지요. 이런 상태는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등불’로 표현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느님께 충실한 자세로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표시로 지성소 안에 언제나 등불을 켜 두었습니다. 그건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붙여주신 신앙이라는 등불을 꺼뜨리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 등불이 있어야 종말의 그 날까지 깨어있는 채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등불의 연료인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 때 그 때 잘 채워두어야 하겠지요.

 

이런 전이해를 바탕으로 오늘 복음 속 비유를 살펴봅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열 처녀’는 신부측에 속한 들러리들입니다. ‘들러리’라고 하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신부를 결혼식에서 빛나게 해주는 도우미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신부와 영적, 정서적으로 가장 깊은 신뢰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 들러리를 부탁하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들러리는 신부와 가까운 사이로써 ‘법정에서 서로를 위해 증언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여야 했습니다. 신부의 내적인 비밀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삶을 깊이 공유하지만, 그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끝까지 입을 다물어주는 사람인 겁니다. 이처럼 들러리에게는 신부가 너무나 친밀하고 중요한 존재이기에, 그녀가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뜻깊은 자리에 꼭 함께 하고 싶고 또한 함께 해야만 하지요. 주님은 들러리들이 혼인잔치를 중요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런 마음을 지녀야 한밤중에 오는 신랑을 깨어 기다리다가 즉시 마중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신앙이라는 등만 지니고 있었을 뿐, 그 불을 밝힐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쓰던 등은 크기가 작아서 불을 밝힐 수 있는 시간이 15분 남짓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지요.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런 필수적인 준비를 빼먹은 겁니다. 등불은 신랑이 오면 그 때 잠깐만 켜면 된다고 여긴 ‘안일함’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굳이 등불을 켜두지 않아도 잠들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고 여긴 ‘교만’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마중나가는 길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잠들지 않고 버티는 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한계와 부족함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그들의 안일하고 교만한 모습을 두고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어리석음은 우리에게도 있지요. 신앙의 등불을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 켤 수 있다고 착각하며,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고 신앙생활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 때 하겠다고 우기는 안일함이 그것입니다. 자신은 굳이 주일미사에 나가지 않아도, 귀찮은 성당 일에 엮이지 않아도 혼자 열심히 기도하면서 얼마든지 신앙을 지킬 수 있다 여기는 교만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회개와 사랑의 실천을 자꾸만 나중으로 미루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달랐습니다. 그녀들은 등과 함께 여분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랬기에 등불을 환히 밝힌 채 깨어있는 상태로 신랑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 속 비유에 나오는 ‘등불’은 비단 신랑을 마중나가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신랑을 기다리는 내가 잠들지 않고 깨어있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알고 준비하는 이들을 두고 ‘슬기롭다’고 하십니다. 그건 신앙이라는 등불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건 언젠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먼 미래’에, 정확히 뭐가 좋은지도,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막연한 구원’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해서는 꾸준히 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참된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도 없지요. 그런 상태로는 주님께서 내 마음에 밝혀주신 신앙의 등불이 금새 꺼져버리고 말 겁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기다리는 ‘지금 이 시간’을 기쁘고 보람있게 보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맛 본 사람만이 나중에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는 종말의 때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영광과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등불을 밝혀줄 기름은 어느 날 갑자기 채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평소에 기쁨과 보람이라는 기름을 넉넉히 채워두어야 하지요.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주님의 손을 외면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따뜻한 사랑과 관심, 이해와 존중, 배려와 양보를 꾸준히 행함으로써, 신앙생활이 주는 기쁨과 보람을 느껴 보는 겁니다. 그러면 신랑이 언제오든,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종말을 맞게 되든 당황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드디어 주님이 오셨구나'라는 기쁨과 희망으로 그분을 맞이하며 그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지요. 그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슬기로운 처녀’의 모범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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