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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1년 12월 3일 (금)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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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제26주간 화요일

150019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1-09-27

최초의 조선인 정도전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조선을 시작한 사람은 태조 이성계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성계의 힘과 신진 사대부의 지혜가 결합하여 고려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조선을 시작하였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성계의 힘과 신진 사대부의 지혜를 결합 할 수 있도록 길을 닦은 사람이 정도전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조선의 을 설계한 사람이 정도전이라고 합니다. 정도전이 이루고자 한 세상은 백성이 근본이 되는 나라였습니다. 왕은 국가를 다스리지만 국가는 백성이 주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왕이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왕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은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어진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하는 백성들의 고통을 가장 먼저 느끼고, 백성들의 즐거움은 가장 나중에 느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정도전의 생각은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17세기 서양의 사상보다 200년 앞선 통찰이었습니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에 마음이 아팠고, 백성들의 정성에 감사했습니다.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라는 생각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혁명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3가지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는 재상이 국가를 운영한다는 재상론입니다. 재상은 청렴하며, 경륜이 높은 자들 중에서 왕이 선택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왕이 국가를 운영하면 어진 왕이고, 지혜로운 왕이면 좋지만 왕 중에는 어린 왕도 있고, 어리석은 왕도 있고, 무도한 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국가의 운영은 재상들이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언로가 막히면 안 된다는 언론입니다. 젊은 선비들이 강직하게 재상의 허물을 비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물은 고이면 썩기 마련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이 막히면 부정과 부패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셋째는 백성들이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먹고, 부모를 섬기고 자식을 기를 수 있을 정도로 예의를 알도록 토지개혁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경자유전의 법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고, 백성들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며 그 수익의 일부분을 국가가 세금으로 걷는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오리라.” 즈카르야가 생각하는 주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이기에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올까요 통치자들이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 통치자들이 백성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나라가 아닐까요 통치자들이 백성들의 소리를 외면하고 강압과 억압으로 다스리는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 백성들의 고통을 경청하고, 백성들이 바라는 것을 주는 왕이 아닐까요 소수의 권력자들이 부를 독점하고, 백성들을 가난으로 내모는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더 이상 굶주림도 없고,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는 나라가 아닐까요 정도전은 권력의 다툼에서 밀려나 죽고 말았습니다. 정도전이 이루고자 했던 나라는 조선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국민을 섬기는 정치는 21세기인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힘을 사용하는 권력자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마을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가 가진 강한 군사력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가 앞세운 계명과 율법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헤로데와 대사제가 가졌던 권위와 권력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듯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외면한 십자가와 희생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자비와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용서와 나눔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배반, 권력자들의 힘, 군중들의 야유를 통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나라를 세우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은 세례를 받은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나의 가족이, 나의 공동체가 평화의 마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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