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4일 (화)
(백)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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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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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21-11-27 ㅣ No.2478

2022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서울대교구

광주대교구

대구대교구

대전교구

마산교구

부산교구

수원교구

안동교구

원주교구

의정부교구

인천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청주교구

춘천교구

군종교구

 

 

 

 

[서울대교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교회 공동체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2013년 ‘신앙의 해’를 기점으로 우리 교구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예상치 못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상황으로 복음화의 여정이 순탄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가 중단되거나 미사 참석 인원이 제한되기도 하고, 신앙 교육과 단체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가정과 본당에서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자신들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본당과 교구의 살림을 걱정하며 성심껏 협조해주신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명동밥집’과 백신 나눔 등을 통해 부지런히 사랑을 실천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은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여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2티모 4,2 참조)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신앙생활이 느슨해진 이들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이웃에게 힘차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다른 이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화되기 위해 올 한 해 동안 다시 한 번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도록 노력합시다. 성경 말씀과 기도, 교회 가르침과 미사 그리고 사랑 실천을 통해 신앙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교구의 모든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먼저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교구 공동체를 이루는 데에 힘을 모아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1)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공동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1) 이 말씀은 조선대목구 초대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사목표어이기도 합니다.는 말씀을 남기고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복음 선포를 사명으로 맡기신 것입니다.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 기쁨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기도, 교회의 가르침과 미사, 사랑 실천을 통해 주님을 자주 만나야 합니다. 박해 시대의 우리 신앙 선조들은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를 받을 기회가 적었지만, 꾸준히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열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박해와 죽음을 이기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신앙 선조들을 본받아서 꾸준히 성경 말씀을 읽고, 열심히 기도합시다. 또한 교회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가능한 자주 미사에 참례하며,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합시다. 이렇게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노력을 통해 복음의 기쁨과 풍요로움을 체험하게 되면, 복음화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신 있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그러셨듯이 복음 선포를 통해 “모든 형제들”2) 교황 프란치스코, 「모든 형제들」, 1항. 에게, 특히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는 형제들에게 기쁨과 희망,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 ‘공동의 집인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교회는 세상을 넘어선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가지만, 다른 한편 세상 안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인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다고 하신 지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는 교황님의 뜻에 일치하여 “공동의 집”3) 교황 프란치스코, 「찬미받으소서」, 1항. 인 지구에 평화를 이루는 공동체, 평화를 나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통해 생태적 회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생태적 회개는 오늘날 교회가 수행해야 하는 복음화 사명과 사목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4) 2020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특별 사목 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 참조.
교회는 모든 사목 활동을 통해 공동의 집인 지구를 아름답게 가꾸고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하는 창조질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개인뿐 아니라 교회가 공동체 차원에서 생활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야 합니다. 아울러 언어·생각·행동·정보 등의 의식과 감성의 쓰레기도 배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지구 온난화를 예방하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근거리 농산물과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면서, 무절제한 소비주의 생활양식에서도 탈피해야겠습니다. 5) 2020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특별 사목 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에 따른 ‘실천 지침’, 참조.
아울러 일상에서 조금은 불편하게, 느리게, 그리고 소박하게 사는 것을 몸에 익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3)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가운데 서로 형제자매가 되는 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마르 3,35 참조). 교회는 바로 그런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행동과 삶의 기준인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식별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마음을 열고 논의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함께 걸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교황님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이루어지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여정에 온 교회가 동참해달라고 당부하십니다. 6)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2021년 5월 20일 공문(Prot. N. 210114).

교회의 ‘함께 걸어가는 여정’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결합을 드러내고, 또한 사랑이신 하느님과 교회의 일치,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우리의 일치를 드러내는 표지가 됩니다. 아울러 세상을 향한 교회의 열린 마음과 태도의 표징도 됩니다. 순례하며 선교하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함께 걸어가는 여정’은 우리 모두가 복음화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와 봉사자로 부르심 받았음을 일깨워 줍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의 뜻을 기준으로 교회 안팎의 다양한 문제들을 식별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제 여러분, 교구장 주교인 저와 일치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양들을 위해 헌신하도록 노력합시다. 특별히 코로나19로 인해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면서 주님의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사제들은 이들을 포함한 모든 신자들에게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될 수 있도록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의탁하고 도움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기도 안에서 그분과 대화하며,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미사를 통해 주님과 일치하고,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남녀 축성 생활자 여러분, 우리는 점점 더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적 태도가 짙어지며, 외적 활동에 치중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정화하고 치유하기 위해 수도자들은 더욱 철저히 자기 봉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바치는 기도와 ‘청빈·정결·순명’의 삶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교회에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의 소임을 통한 협력, 특히 돌봄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신자들과 이웃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증거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신자 여러분, 구세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요한 1,10-11 참조) 세상 안에서 그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우리 구원의 여정에 동행해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도록 합시다. 이 믿음의 힘으로 가정을 비롯한 학교, 직장, 각종 모임, 본당과 지역, 그리고 세상 안에서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여정’을 충실히 살아가 주십시오. 아주 작고 소박한 것일지라도 여러분이 살아가는 자리에서의 작은 신앙의 실천이 복음화의 여정을 증거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먼저 복음화되기 위해서 ‘신앙의 기초 다지기’에 더욱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소중히 여기며, 복음화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도 적극 노력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200년 전 이 땅에 탄생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두 사제의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 복음화를 위한 사목적 열정을 본받고자 노력했습니다. 교회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롭게 일어서기 위해서 올 한 해 다시금 신앙의 기초를 다집시다. 복음화되어, 자신과 교회 그리고 이웃과 세상을 복음화하는 여정을 살아갑시다. 이러한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교회 공동체’로서의 노력은 2031년에 맞이하게 될 ‘교구 설정 200주년’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하신 한국의 순교자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1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광주대교구]

‘3개년 특별 전교의 해’(2020~2022): 쇄신을 위한 여정의 시작
“상상하라, 광주대교구! 우리 본당! 우리 공동체!”

 

 

1. ‘3개년 특별 전교의 해’: 성령께서 이끄신 새로운 변화의 시작!

2020년부터 시작된 3개년 특별 전교의 해는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이끄신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교구민 모두가 자비의 선교사로서 지쳐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인 교회로 살아가는 길을 함께 찾고,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여정은 사실 오늘날 인류가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코로나19(Pandemic)라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서나 마땅히 걸어가야 할 교회 본연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지금, 여기’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마태 11,28) 사람들을 위한 기쁜 소식과 희망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이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고,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소명입니다. 우리의 길이시며, 우리의 여정에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신뢰하며, 우리 모두 기쁘고 용기 있게 이 소명에 응답합시다!

2. 하느님 백성의 대화: 새로운 교회, 새로운 변화의 여정

‘3개년 특별 전교의 해’(2020-2022)는 우리 모두가 복음 선포의 열정을 쇄신하여, 교회와 세상의 복음화 여정을 새롭게 시작하자는 교구 사목평의회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교구 사목평의회의 제안은 하느님 백성의 뜻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교구의 사목방향을 정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작지만 놀라운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교구에서는 먼저 사제평의회와 교구청 사제 전체가 함께 한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교구 사제들이 이 연석회의 동안 생각과 뜻을 모으는 과정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의 풍요로움을 체험하였다는 증언은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또한 이 연석회의는 우리 교구의 새로운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고, 평신도⦁수도자⦁성직자가 함께 한 ‘하느님 백성의 대화’의 여정을 시작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장을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신도⦁수도자⦁성직자가 함께 모여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성령 안에서 복음의 빛과 지혜로 식별하여, 교회가 살아가야 할 길을 찾는 대화의 장을 열었다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대화의 장이야말로 ‘성령의 소리에 열려있는 교회를 체험’하고 ‘하나인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교회’의 모습을 실현하는 길일 것입니다.

3. 하느님 백성의 대화: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선포하는 교회를 위하여!

교구는 ‘3개년 특별 전교의 해’ 동안 지향해야 할 교회상을 위하여 교구민이 참여하는 슬로건 공모의 장을 마련하였고,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하였습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질병과 고통, 슬픔과 고뇌를 겪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는 교회를 이루어가자는 원의와 마음이 담겨 있다고 여깁니다.

교구는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찾기 위하여 평신도⦁수도자⦁성직자가 함께하는 ‘하느님 백성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지난 5월 5일, 교구 청소년센터에서 평신도⦁수도자⦁성직자 각 대표자 14명씩 총 42명이 함께하는 열린 대화의 장으로 진행된 ‘제1차 하느님 백성의 대화’는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이라는 대주제 아래 ‘쇄신하는 교회’(Ecclesia ad intra), ‘세상을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하였습니다.
이 대화의 장에 참여한 대표자들에게서 무엇보다도 교회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신도⦁수도자⦁성직자가 성령의 현존 속에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함께하는 기쁨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신도⦁수도자⦁성직자가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이 되는 교구(본당, 공동체)를 함께 상상하고,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로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하느님 백성의 대화에 참여했던 분들의 체험담에서 이미 이루어진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세상을 향한 교회-행복한 공동체를 일구어가기 위하여 함께 모인 자리는 평신도의 자존감이 상승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현시대 흐름에 발맞춰 주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길로서 ‘아래에서 위로’의 사목계획 추진과 사제⦁수도자⦁신자와 함께 의견을 조율하며 나아간다는 점은 획기적인 사건이며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 열린 교회의 모습에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새롭게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찾는 여정에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함께 꿈꾸고,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며 가졌던 희망이 꽃이 되고, 향기가 되어 세상에 전해지길 기도합니다.”

“어쩌면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의견을 듣고 나눴으며 함께 걸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예전과 다르다면 의사결정 과정에 모두가 참여하여 함께 합의하는 과정이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이 체험담들은 하느님 백성이 함께하고, 서로 경청하는 열린 교회를 꿈꾸고, 행복한 공동체, 세상을 향한 교회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잘 보여줍니다.

‘제2차 하느님 백성의 대화’는 ‘제1차 하느님 백성의 대화’에서 논의된 결과를 심화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10월 4일, 교구 청소년센터에서 개최되었고, ‘평신도⦁수도자⦁성직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선정된 4개의 대화 주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 소통하는 교회
•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는 교회
•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젊은 교회 지향
•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


이 주제들은 우리 교회가 본래 걸어가야 할 길이며, 오늘날 우리 교회가 중점과제로 삼아야 할 근본적인 주제들임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초대합니다. 대화 주제 선정을 위한 설문조사에 응답했던 평신도⦁수도자⦁성직자가 시대의 요청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은 또한 교회가 이루어가야 할 본연의 모습을 새롭게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1) 소통하는 교회

교회 구성원 모두가 ‘높고 낮음도 없고 나뉨도 없는 삼위일체의 신비’로서 소통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구현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백성이 함께 대화하고 열린 태도로 서로 소통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교회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참된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소통하는 교회를 직접 체험하는 길입니다. “참된 대화는 영성적 만남으로서, 사랑, 존중, 신뢰, 신중함 등과 같은 몇몇 특별한 자세들을 필요로 하며, 이는 우정, 나아가 섬김의 분위기 안에서 이루어져야”합니다. 이런 참된 대화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서 자주 접하는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주장과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대화 문화를 극복하고 열린 대화의 문화를 열어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열린 대화와 소통의 장은 영성적 태도와 더불어 구조적인 차원도 요구됩니다. “하느님 백성, 특히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대화와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 수단, 구조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대화에 참가했던 대표자들이 제안했던 것처럼, 사목자와 교우 간의 열린 대화와 공동 식별을 위한 구조, 본당과 교구에서 사목 계획을 함께 세우고,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정례화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2)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는 교회

어려운 사람들을 잊지 않고, 찾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제안은 교회의 우선적인 사명임을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잊어버린 교회는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정통성의 핵심 기준은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난한 이웃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대화 참가자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어려운 이웃돕기를 실천하고, 더 나아가 선교지 교회, 가난한 나라와 연대하는 교회를 제안하는 바는 참으로 고무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제안을 다양한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3) 젊은이를 위한 교회

어린이, 학생, 청년들이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최우선적인 과제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대화 참가자들은 이를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복음화에 공동체 전체가 동참하고, 젊은이들 자신들이 청년 사목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주역임과 동시에 교회 미래의 희망임을 새롭게 발견해야 합니다.
물론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문제(취업 등)에 교회의 관심과 노력 또한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이 우리 교회의 고민이 되도록 동반해야 합니다.
교회 안의 어린이, 학생,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지역의 어린이, 학생, 젊은이들을 위한 관심 또한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 본당, 지구, 교구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이들 자신들이 청년사목의 주역이 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다양하게 마련하여 그들이 지닌 독창성과 창의력과 통찰력이 표현되고 하느님을 만나는 공동체 체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4)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

오늘날 우리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는 생태환경의 훼손이나 조작과 무관하지 않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하고 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생태적 회개’에 대한 요청에 더 깊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 지구는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2)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세상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모든 노력은 ‘생활 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다스리는, 이미 확립된 권력구조의 변화를 요청합니다.”
생태적 회개는 구체적인 실행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선 교구 및 본당 차원에서 ‘생태환경위원회’ 혹은 ‘생태환경분과’를 설치하여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기를 바랍니다.

4. 이제는 우리 모두가 새로운 변화의 여정을 시작할 때입니다!

‘3개년 특별 전교의 해’의 시작에서부터 두 차례에 걸친 ‘하느님 백성의 대화’에 이르는 여정은 성령의 이끄심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여정 속에서 우리들은 하느님 백성이 친교를 나누고 함께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함께 대화하고 함께 걸어가는 아름다운 교회를 만났습니다(루카 24,13-35 참조).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들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은총을 체험했습니다. 세상을 향한 헌신의 소명을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처한 상황은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분명히 일깨워줍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의 영향, 이주, 다양한 형태의 불의, 인종차별, 폭력, 박해 등 인류 가운데 증대되는 불평등”에 직면하여 우리 교회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모두가 함께 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개막 연설에서 하신 말씀이 새로운 변화의 여정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제시하고자 하시는 새로움에 열린 교회를 위하여 더욱 큰 열정으로 자주 성령께 청하며 겸손되이 성령께 귀 기울입시다. 그리고 친교와 사명의 근원이신 성령께서 바라시는 대로 순종하며 용기를 지니고 함께 걸어갑시다.” 우리가 상상하는 교구, 본당, 공동체가 현실이 되기를 희망하며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1) 교구, 지구, 본당 차원에서 ‘하느님 백성의 대화’의 장을 구조적으로 정례화하기
지쳐있는 세상 사람들과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교구, 지구, 본당의 사목적 현안에 대한 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느님 백성의 대화의 장을 구조적으로 정례화해야 합니다. 특히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주제: 시노달리타스-친교, 참여, 사명)에서는 교회의 대화 문화를 구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제안하며 구체적인 여정에 나설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향에서 우선 교구는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매년 두 차례 개최할 것입니다. 아울러 교구 사목평의회는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통하여 교구의 사목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통과 논의 기구가 될 것입니다. 이 대화의 장을 통해 우리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 시대의 요청에 언제나 새롭게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와 민족과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한 문제와 어려움 그리고 희망에 대해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전과 변화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대화의 물결이 교구, 지구, 본당 및 모든 공동체에 스며들어 교회의 아름다운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대화는 분명 ‘은총의 사건’이요 ‘성령께서 이끄시는 구원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

(2) 다양한 분야와 공동체에서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정례화하기
하느님 백성의 대화가 각 분야, 각 공동체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권고합니다. 특히 청소년사목, 사회사목, 사회복지 분야에서, 그리고 모든 사도직 단체와 공동체 차원에서 하느님 백성의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권고합니다.

(3) 누구나 참여하는 대화의 장 열기
하느님 백성의 대화에는 다양한 구성원을 초대하면 더욱 바람직할 것입니다. 어린이, 학생, 청년, 어르신 등 누구나 함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폭넓게 의견과 지혜를 공유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4) 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하느님 백성의 대화에 변방의 사람들이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 노인, 이주민, 노숙인, 난민, 장애인, 재소자 등의 목소리를 귀여겨듣는 과정이야말로 교회의 아름다운 품격을 가장 근본적이면서 결정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차원이 될 것입니다. 변방의 사람들과의 친교, 변방의 사람들의 참여 없이는 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습니다.

(5) 다양한 만남과 대화의 장 열기
하느님 백성의 대화는 교회 구성원은 물론 시민사회의 다양한 사람들, 지역민들,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하여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대화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가까이 다가가기, 서로 표현하기, 서로에게 귀 기울이기,
서로 바라보기, 서로 알아가기,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공감대 찾기,
이 모든 것이 동사 ‘대화하다’라는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서로 만나고 도움을 주려면 대화가 필요합니다.”

2021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대구대교구]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하느님 말씀을 따라"

 

 

  친애하는 교구민 여러분에게 하느님께서 풍성히 강복하시길 빕니다.

   우리 교구는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제1차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였으며, 10여 년 전에는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제2차 교구 시노드’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간은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으며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초대 교구장이셨던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도움을 청했던 원의와 정신으로 다시 새롭게 살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이 모든 노력들은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복음화를 이루고자 하는 시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기념하는 마지막 해인 ‘치유의 해’에 우리는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로 고통을 받았으며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면서 신앙생활의 위기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때문에 고통과 죽음의 위협을 받 았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은혜를 느낀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세상과 함께 오늘날 교회도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신영세자가 감소할 뿐 아니라, 주일미사 참례자, 주일학교 학생과 청년들, 그리고 성소지원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반면 냉담신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교회의 어려움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때문에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부와 정보의 편중, 개인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계층·세대·지역 간의 갈등과 관계 해체,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의 역할은 더욱 크게 요청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 현실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인주의적인 가치관과 문화, 물질의 소유와 성공에 대한 욕망이 지배하는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교회가 초대교회 때부터 복음적 가치관으로 이겨내야만 했던 도전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끊임없이 우리를 기쁨으로 초대”(복음의 기쁨 5항)할 것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시 새롭게 살고자 노력한다면 그 “신앙의 기쁨이 더디지만 분명하게”(복음의 기쁨 6항) 지역사회를 복음화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교구 설정 120주년을 바라보면서 2030년까지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라는 다섯 가지 핵심가치를 매 2년씩 중점적으로 실천하며 살기를 제안합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아래, 서로가 신뢰하고 소통하면서 살아갑시다. 각 대리구와 본당들도 교구의 장기 사목방향에 발맞추어 자신들만의 실천방안과 후속 조치를 찾아 모두 함께 이 길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첫 번째 2년 동안(2021~2022년)은 ‘하느님 말씀을 따라’라는 주제로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어 고백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모든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보존하고 풍성하게 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늘 고심해야 합니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은 바로 복음 말씀 안에 있습니다. 말씀으로 힘과 희망을 얻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신앙과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 기본인 성경을 가까이 하고, 알아듣는 교육과 양성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2년 동안 교구, 대리구, 본당 차원에서 무엇을 실천할지 고민하고, 교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천주교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 교구장 사목교서는 2021년에 이어 2022년까지 적용됩니다.

 

 

 

[마산교구]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간 별고 없으신지요? 코로나를 2년이나 겪다 보니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는데, 이제는 치아가 거의 없으신 할머니 입에서도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술술 나옵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어렸을 때도 몸에는 이가, 뱃속에는 회충이 득실거렸던 ‘위드 벌거지(벌레)’ 시대였습니다. 코로나 사정이 아직도 여의치 않은 가운데 교회는 대림절로 다시금 신앙의 한 해를 시작합니다. 지난해는 「나해」였기에 주일 복음이 주로 두 번째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을 중심으로 되어 있었고, 올해는 「다해」로 세 번째 복음서인 루카 복음을 중심으로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 버렸지만, 꼭 다시 새겨야 할 지난해 2021년은 한국천주교회가 첫 사제들인 김대건, 최양업 두 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희년으로 선포한 한 해였습니다. 이 희년 동안 우리는 특별히 죽음이 설쳐대는 순교 당시의 기막힌 처지 속에서도 떳떳하고 의연하게 복음을 전하신 두 분의 모습을 기리고 그 삶을 본받아 실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우리들의 노력은 너무나 미미하였고, 희년의 정신을 살아감에 있어 누구보다도 크게 동참했어야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엎드려 기도하는- “영적 다가섬”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만은 없는 부끄러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농부와 농사일을 두고 자주 비유 말씀을 하셨기에 저도 우리 교회를 논밭에 한 번 비유해 봅니다. 무릇 소출이 잘 되려면 농부가 열심히 논밭을 돌봐야 합니다. 그래야 기름진 논바닥이 되고 풍부한 밭뙈기가 되어 거기로부터 작물이 무럭무럭 자랍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의 사정도 이와 같음을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코로나 때문에 미사를 위시한 교회 생활 전반이 참으로 예전 같지 않습니다. 숫자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신자분들의 신앙 상태가 더 열악해지고 있음이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본당 신부님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보지만 많은 한계를 토로합니다.

   이 대목에서 한국천주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를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처음 뿌려진 것도 어느 누가 전해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내적 갈증이 복음을 들여오게끔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직자 한 분 없는 가운데서도 순교의 칼을 기꺼이 받아 가며 들불처럼 살아남아, 조선 천주교회는 진리에 목마른 우리 백성에게 영적 생명수가 되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진심으로 꼭 한번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미지근한 신앙생활에 만족하십니까? 목숨을 바쳤던 우리 신앙 선조께 다소 미안하긴 하지만 그저 지금의 경제적 안락함이 마음에 더 와닿고 우선하는지요? 이렇게 묻고 있는 주교가 원망스럽기까지 하신지요? 사랑하고도 사랑하는 우리 신부님들께도 묻습니다. 본당 신자들이 하느님 사랑을 담뿍 받고 신앙의 기쁨 속에 살아가는 그런 신앙인들이 되기를 바라며 온 마음으로 투신하고 계시는지요? 아니면 그렇게 나름대로 애써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체념하며 그저 그렇게 살고 계시는지요?

   젊은 신부 때는 제가 노력한 만큼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인간적인 모습으로는 보여 줄 게 별로 없다는 사실과 또 그럴수록 죄스러운 내 속 모습이 드러날 뿐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제는 자신의 멋진 장기와 수단을 보여 주려 하지 말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 혹은 약점을 끌어안고 깊이 묵상하여 그것이 자기 십자가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은총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초등학교 학예회 때 무대 위에 올라가 선생님을 따라 노래하며 춤추는 1학년 아이들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을 따라 손을 놀리고 발을 굴려보지만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고 빈번히 틀립니다. 그래도 선생님을 따라 해 보려고 이래저래 움직이는 모습이 밑에서 보고 있는 부모의 눈에는 한없이 아름답고 장하기만 합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한 주교와 우리 신부님들을 보는 눈도 그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2022년을 준비하는 대림절에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

 

 

 

 

[부산교구]

성체와 말씀의 해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교형 자매 여러분!

   2020년부터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 확산으로 신앙생활을 포함한 일상 전반이 고통스럽게 제한되면서, 우리는 예외 없이 ‘슬픔과 시련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2021년에도 일상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터널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당연히 본당 공동체의 사목활동은 위축되었고 성사의 은총을 누릴 기회도 한정되었습니다. 교구 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2021년 한 해 동안 외적 성장과 활동보다는 내적 성숙과 내실을 기하고자 ‘신앙과 말씀의 해’를 지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생활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암송하면서 각자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였으며, 가족 단위로 복음서를 이어 쓰고 기도하며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았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겨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교구 사제단이 시작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모금 운동’에 온정의 물결이 이어졌으며,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보내고자 하신 교황님의 ‘백신 나눔 운동’에도 많은 모금이 이뤄졌습니다. 동참해주신 교구 사제단과 각 수도회,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상적인 일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단계적 일상회복’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교구 공동체 역시 온전한 신앙생활의 회복에 앞서서, 그동안 갈대처럼 흔들리며 뿌리가 드러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다잡고자 합니다. 올 한 해, 가톨릭 신앙을 떠받치는 두 개의 주춧돌인 ‘성체’와 ‘말씀’ 위에 믿음을 굳건히 정초하도록 합시다. ‘성체’와 ‘말씀’의 샘으로 뿌리를 깊이 뻗으면, 아무리 볕이 따가워도 생명의 잎사귀가 무성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줄곧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예레 17,8 참조) 이렇게 성체성사와 하느님의 말씀으로 양육되는 신앙인은 그리스도와 긴밀히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경이로운 생명과 힘을 얻습니다. 2022년에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해 우리 믿음의 뿌리가 하느님께 깊숙이 내려져, 어떠한 역경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성체성사를 삶의 중심에 둡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요 정점으로,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실제로 살아계십니다. 인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양식’과 ‘구원의 음료’를 얻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주님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인 역시 영생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주님께 서 주신 다른 여러 선물 가운데 매우 값진 하나의 선물이 아니라 비할 데 없이 탁월한 선물입니다.’(「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11항 참조) 하느님을 온전히 대면하게 될 그 날까지, 성체를 매일같이 모시면서 삶의 중심자리에 두도록 합시다. 그러면 훗날 그분의 약속이 우리 각자 안에서 기필코 성취될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
성체성사를 통해 이같이 큰 은혜를 받은 우리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2티모 4,2)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의 양식이 되셨기에, 우리는 그 큰 은혜에 모든 사람을 초대해야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19로 인해 신앙의 변두리로 밀려난 자녀들이 성체를 중심으로 다시 모일 수 있도록 부모님들께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공경은 교회 생활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합니다. 이미 우리는 미사가 중단되어 성체를 모실 수 없었을 때, 성체 조배를 통하여 삶의 힘을 얻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남겨둔 거룩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성사적이며 영적인 친교를 지향합니다. 자주 성체조배를 통하여 주님을 더 가까이 만나도록 합시다.(「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25항 참조)

  둘째,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생활화합시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여주시는 계시의 근원이자 인간 역사를 구원으로 이끄는 이정표입니다. 교회의 모든 가르침은 성경에서 거룩한 생명과 영감을 얻습니다. 동시에 성경은 ‘신앙생활의 준비운동’이요, 신앙생활은 ‘성경의 연장선’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활동과 수고가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신앙행위’ 가 될 수 있습니다. 본당 공동체에서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시작하면서 성경을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체 활동과 모임에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하느님의 지혜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1코린 1,25 참조)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성경 안으로 부르십니다. 하루에 10분만이라도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성경이 하루를 여는 열쇠가 되고 하루를 마감하는 자물쇠가 되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당신 자녀들에게 사랑의 말씀을 건네시며 필요한 힘과 지혜, 용기 그리고 신앙을 키워주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두고 자주 읽으며, 쓰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도 없고, 성경을 덮은 채로 성인이 된 사람도 없습니다.

    셋째, 병들어가는 지구를 보살피며 살려냅시다.
    성체성사를 삶의 중심에 두고 하느님의 말씀을 생활화하는 신앙인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병들어가는 이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 삶의 터전’이요 ‘공동의 집’인 지구입니다. 물질주의에 매몰된 욕망으로 일구어낸 과도한 개발과 소비문화로 지구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훼손되었습니다. 그 결과 극한적 폭염과 한파, 재앙적 산불과 폭우, 그리고 위태로운 생태계와 쓰레기 문제 등을 빈번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지구를 보살피고 살리는 일은 우리 자신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훼손과 오염의 폐해가 고스란히 인간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대행’ 역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한 결과입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현시대가 절박하게 요청하는 ‘시대적 징표’이며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사랑의 행동’입니다. (「찬미받으소서」, 49항 참조) 지구를 살리는 친환경 정책에 적극 동참하여, 지구가 아름다운 생명력으로 넘쳐나도록 합시다.’(한국 천주교 주교단,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2020.10.16.) 참조)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교형 자매 여러분!
    2022년에도 ‘슬픔과 시련의 터널’을 얼마간 더 지나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터널 저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먹구름이 아무리 짙어도 그 뒤에는 빛나는 태양이 있습니다.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도 없고 치유 받지 못할 아픔 또한 없습니다. 더욱 큰 믿음과 희망을 안고 아버지 하느님께 묵묵히 나아갑시다. 올 한 해, 교구민 모두가 ‘성체’와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전능하신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갑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실 것입니다.”(야고 4,8) 우리를 언제나 선으로 이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헤아려주시고 고통을 이겨낼 능력과 힘을 주십니다. 마침내 그분께서는 당신 약속대로 우리 모두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며, 이 여정에 성모님께서도 늘 함께 해주십니다.

   “부산교구의 수호자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천주교 부산교구장
손 삼 석 요셉 주교

 

 

 

[수원교구]

2021년 ~ 2023년 교구장 사목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Ⅰ. 들어가는 말

불확실성의 시대
1. 지금 인류는 코로나19 감염병과 그 여파로 큰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세계적 창궐은 평범했던 인류의 일상을 멈추게 했고, 사랑하는 가족을 앗아갔습니다. 지구촌 공동체는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이 위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며 감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염병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전방위에 걸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 위기, 식량 위기, 질병 위기, 경제 위기는 우리 인간 생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 위기까지 가세하여 국내 문제는 물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은 우리의 미래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몰아가게 합니다.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의 변화
2.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점진적으로 영역을 넓혀가던 비대면 방식의 소통문화가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확산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대면 문화의 영역들 대표적인 영역으로 공교육, 공연, 마케팅, 종교집회 등을 들 수 있다. 이 비대면 문화로 영역을 옮겨가며 오히려 외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서로 대면할 수 없기에 차선으로 선택한 비대면 방식이 도리어 사람들의 긍정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서서히 사회의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상호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은 이제 대면과 비대면 두 개의 방식을 동시에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3. 이러한 변화는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동안 교회의 운영방식은 대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병의 예방을 위해 수개월에 걸친 미사 중단과 이에 따른 대안으로 제시된 TV, 인터넷 방송 미사 시청은 신자들의 미사 참례 의무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이어서 다시 시작한 미사 이외에 모든 집회와 활동을 금지한 사목 조치는 신자들의 신앙생활 방식을 공동체 중심에서 개인의 일상 중심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또한, 사제와 신자 그리고 신자와 신자 사이의 소통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비대면 방식의 접근들은 교회 안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불확실하게 전개되는 사회현실과 비대면으로 전개되는 소통문화를 바라보면서 지금 이 시대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Ⅱ. 도전과 대응

가난한 이들
4. 코로나19로 위축된 세계 경제는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이들을 심각한 곤경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의식주만이라도 해결하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이미 이기적이며 자기방어적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서 자비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현실입니다. 특히 질병에 취약한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겪는 가난은 생명의 위기와 직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교회는 모든 역량을 모아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 이들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비단 사회복지 차원의 나눔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체들 모두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페 4,16)로서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신자들의 마음 안에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로운 주님의 연민이 가득하기를 희망합니다.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인 선택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교회의 중차대한 과제입니다. 이는 복음화의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힘든 위기의 때에 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살아야만 비로소 주님의 복음이 참되게 선포될 것입니다.

가정
5.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 머무르면서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와 일치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감염병의 위기가 가져다준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 공동체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미 교회가 여러 가르침을 통해 강조해 왔던 가족 구성원의 유대와 일치, 부모와 자녀의 대화, 가정 안에서의 신앙 전수 등이 갖는 중요한 의미가 자연스럽게 재조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이 가정 안에서 서로 일치하고 나누며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특히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상 안에서 꾸준히 신앙 실천을 해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격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영상 등 다양한 비대면 매체를 활용한 교육 자료와 안내서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신자들이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도 필요할 것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청소년
6. 교회는 전통적으로 유아세례를 통하여 부모의 신앙을 자녀에게 전수하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이는 영유아기의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모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영유아기는 생활 습관 및 인성 교육의 초기 단계로서, 부모의 가르침이나 모범을 통해 기본적인 도덕성을 배우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배우는 신앙과 가치관은 향후 이들의 그리스도교적 가치관 형성에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부모들은 신앙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며 자녀의 유아세례를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영유아기 자녀들의 교육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모의 신앙 교육이 영유아기 자녀의 인성발달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연구하고 가르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과정에 눈높이를 맞춘 다양한 신앙교육 콘텐츠를 개발하여 젊은 부모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영유아․초등학교 저학년
8. 오늘의 청소년들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smartphone)과 인류(homo sapiens)의 합성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서 ‘디지털 문명을 이용하는 신인류’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등으로 정의될 만큼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지닌 세대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성장기에 드러나는 발달적 특성과 더불어 이들만이 지닌 고유한 시대적 특성을 동시에 고려한 사목이 필요합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기르며 신앙의 감수성을 성장시켜 나갑니다. 이 시기에 배우는 신앙의 기본습관과 사회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형성되는 이웃사랑의 가치관은 이들이 교회의 미래 주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교류하며 그들만의 문화(새로운 대면, 비대면의 소통문화)를 창출함으로써 자기 주도적 신앙생활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대리구와 지구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소통과 교류의 장(대면과 비대면)’을 마련하여 제공하고 돌봄으로써 이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또래 학습’을 통해 신앙의 기본습관(기도)과 이웃사랑의 가치관(희생과 나눔)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수도자 양성
9. 이미 한국 사회의 문제로 대두된 저출산의 기류는 심각한 인구 감소 위기와 함께 교회의 사제 성소에도 적신호를 알리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겪는 심리적 불안과 혼란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에서 바른 인성을 지닌 신앙인, 나아가 사제 성소를 지망하는 청소년을 양성하는 일은 커다란 난제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소를 지망하는 청소년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해서 인성과 지성 그리고 건강을 두루 겸비한 예비신학생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여건일수록 성소를 식별하고 선발하는데 더욱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인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입니다. 사랑과 존중으로 충만한 가정환경과 부모 자녀의 돈독한 신뢰 속에 성장한 청소년들을 선발하여 사제로 양성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수도 성소가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알리고 인도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수도자들은 수도 성소의 삶이 매력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함께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청년
10. 전반적으로 청년기에 있는 이들은 학업, 취업, 연애,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사 앞에서 고민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인생행로를 개척해 나갑니다. 짧은 시기에 겪는 다양한 선택과 결정은 곧바로 자신의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이들이 마주하는 혼란과 불안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있는 청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청년들이 다양한 선택의 순간 앞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을 털어놓고 나누며, 친절한 도움과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지구와 본당에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깊은 신앙 그리고 후덕한 인품을 겸비한 상담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대리구에서는 기존의 청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 확대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구 청년 사목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소공동체
11. 우리 교구는 지난 2001년 교구 시노두스 결과를 바탕으로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는 작은 신앙인 공동체 안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살아갈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다만 방법적인 측면에서 더욱 다양하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부각하는 비대면 방식의 소통문화는 우리에게 소공동체 모임의 운영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기존의 구역, 반을 중심으로 한 소공동체는 이미 효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단지 조직의 구성과 운영, 그리고 관리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다가오는 세상의 도전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사목 일선에 있는 사제들은 신자들이 스스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소공동체를 조직하고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교구는 일선 사목 사제들이 유연하게 대응하며 소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이미 신자들은 각종 친교 모임이나 동호회 활동, 혹은 신심 활동 등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교구는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와 교회가 규정하는 소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교회론적 의미 차이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가능한 접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일선 사목에 있는 사제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노인
12.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이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의미 있게 정리하고, 자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특히 우리 교회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목 정책의 수립과 시행은 시급한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미 우리 교구는 노인 사목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노인대학을 중심으로 한 본당 노인 사목의 활성화를 도모해 왔습니다. 노인대학연합회를 결성하여 봉사자를 양성하고 교육하며 본당에서의 노인 사목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아울러 은빛 여정을 대표로 한 ‘노인 성경 프로그램’의 운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 교구 내 모든 본당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지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노력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13. 한편으로 노인은 현저하게 활동성이 저하되는 생애주기 특성상, 동적인 활동을 추구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정적인 성향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노인은 기도와 묵상을 통한 내면의 성찰과 영적인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며,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관상의 여정은 노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의미 있게 해 줍니다. 또한, 노인에게서 보이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은 본당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모범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년의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관상의 기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목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교구는 노인들을 위한 기도학교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다양한 노인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충만한 은총 안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도울 것입니다.

생명·환경
14.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우리에게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인류의 교만과 탐욕으로 말미암은 자원의 무분별한 남용과 착취는 지구의 생태환경을 심각하게 훼손시켰습니다. 그 결과로 지금 인류는 전례 없는 생명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하여 환경을 다시 살리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긴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환경실천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이미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함으로써 인류에게 환경의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인간의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이 가져온 자원의 남용과 착취가 어떤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지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를 통해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더 큰 시련이 닥쳐올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입니다.

15. 때마침 교황청에서는 지난 2020년 6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맞아 본당 및 교회 기관이 활용할 ‘사용자 지침’ ????공동의 집 보호를 위한 길: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On the Path to Caring for the Common Home: Five Years after Laudato Si’). 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지침에는 환경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과 실행법이 들어있습니다. 이 지침은 소중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친환경 정책의 실천과 더불어,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가정과 생명을 보호하는 정책들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구 내 모든 본당과 기관, 단체에서는 이 지침을 바탕으로 가능한 실행방안을 모색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환경실천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이웃사랑의 의무입니다. 환경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입니다.

16.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제기되는 ‘생명의 조작 가능성’은 창조주 하느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유전자, 신경과학, 인공지능 등의 기술발전과 유기체인 인간을 기능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고부가가치 사업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존엄이 갖는 배타적인 가치가 유용성과 수익성 때문에 왜곡되거나 배척되는 상황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거스르고, 하느님의 정의를 거스르는 온갖 형태의 불의에 맞서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고, 인간의 존엄을 수호하는 데 항상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Ⅲ. 사목 정책의 기본 방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17. 주님께서 보여주신 가난한 이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본받아야 하는 계명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가난을 지향해 왔으며(마태 5,3; 마태 25),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사명입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직면한 심각한 경제 위기 앞에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살피고 돌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앞으로 교구가 진행하는 모든 사목 정책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향합니다. 뒤이어 제시한 ‘유기적 협력 사목’이나 ‘지구 중심 사목’ 등의 정책 방향들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 큰 복음은 없습니다(루카 4,18).

유기적 협력 사목
18. 우리 교구가 지향하는 사목은 ‘유기적 협력 사목’입니다. 이는 교회의 각 구성원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공동체를 살피고, 아픈 곳을 찾아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치유함으로써 생명의 활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이 통증을 느끼면 다른 지체들이 즉시 반응하여 통증을 없애려 집중하듯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도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내 본당, 내 단체, 내 구역 등 자기가 속한 곳에만 관심을 두고 다른 지체들은 돌보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공동체는 구성원의 아픔에 민감합니다. 서로 하나로 일치하고 있기에 구성원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교구 구성원 모두는 유기적 협력 사목을 통해 신자들이 무엇에 아파하고 걱정하는지 민감하게 살피고, 그중에서 가장 아픈 곳을 찾아 치유하는 데 공동체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구 중심 사목
19. 우리 교구는 지난 2018년 대리구 제도를 개편하면서 ‘지구 중심 사목’을 전개하기로 방향을 설정하였습니다. 이는 교구 내 21개 지구가 갖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사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구나 대리구에서 정한 사목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각기 처한 본당의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제각각 그 방법을 달리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청소년, 청년, 노인 분야의 사목 정책에 있어서 곤란을 겪는 본당이 있습니다. 때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다른 여력을 갖지 못하는 본당도 있습니다. 이들 본당이 사목의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웃한 본당 간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기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조직을 구성한 것이 지구 체제입니다. 이미 교구는 지구장 본당을 지정하여 지구 내 소속 본당들과의 소통과 나눔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각 지구 내 본당은 지구장을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여 함께 하는 사목을 전개함으로써 활력이 넘쳐나기를 희망합니다.

Ⅳ. 사목 실천 목표

일상 중심의 신앙 실천
20. 우리 교회 구성원의 대다수는 보편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입니다. 평신도는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사제직을 수행하도록 소명받은 사람들입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찬의 봉헌에 참여하며, 여러 가지 성사를 받고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며 거룩한 삶을 증언하고 극기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제직을 수행” 「교회 헌장」, 10항. 합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일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할 소명이 있습니다.

21. 코로나19 이후로 집회 중심의 활동이 현저하게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집회를 통한 전례와 성사 중심의 신앙생활을 전개해왔던 교회로서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대면보다는 비대면 위주로 전개될 것입니다. 비록 상황이 호전되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비대면을 선호하는 문화적 경향은 지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기회에 교구와 대리구는 신자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꾸준히 신앙을 실천해 나가는 습관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특히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습관화하도록 이끌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밖에도 가정 성경 필사, 가정 성지 순례, 가정 기도 등 가족 구성원이 함께하는 신앙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안내하고 독려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자기주도적 신앙 실천
22. 신앙의 여정은 완덕을 지향합니다. 이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소명과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방법과 정도로 완덕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애주기에 맞는 인생의 여정이 있듯이, 신앙도 생애주기에 따른 완덕의 여정이 함께 합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하느님과 대화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점점 믿음이 강해지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나아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며 내면의 성화와 완덕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신이 신앙의 생애주기에 어디쯤 있는지 스스로 진단하고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안내하지 않고,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 여정을 스스로 진단하고 안내받음으로써 자기주도적으로 신앙의 온전한 성숙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통합 소통환경 구축
23. 이를 위해서는 교구 차원에서 지원하는 ‘통합 소통환경’이 필요합니다. 교구는 홍보국을 중심으로 사제와 신자, 신자와 신자, 교구와 본당, 본당과 본당, 단체와 단체, 신자와 단체 등 교구 내 모든 지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합 소통환경을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아직은 미비한 점이 많지만 점차로 완성된 형태로 성장하리라 전망합니다. 여기에서 신자들은 대면과 비대면 모두를 망라한 종합 신앙 정보를 얻고 소통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Ⅴ. 사목 실천과제

청소년국
24. 영유아․초등부 저학년
교구․대리구 : 부모의 신앙교육이 영유아기 자녀의 인성발달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 연구,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과정에 눈높이를 맞춘 신앙교육 콘텐츠 개발, 초등부 저학년을 위한 신앙교육 콘텐츠 개발 지구․본당 :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교육, 영유아 자녀와 함께 하는 미사, 영유아 부모 소공동체 운영, 각종 행사 기획

25. 초등부 고학년․청소년
교구․대리구 : 초등부 고학년을 위한 신앙교육 콘텐츠 개발, 청소년을 위한 신앙생활 기본 습관 안내 앱 개발, 본당․지구에서 실천 가능한 또래 학습 프로그램 기획(학업, 취미, 운동, 사회봉사, 성지 순례 등), 청소년 피정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들을 위한 사이버 공간 마련(전담 사제의 적극적 개입 필요) 지구․본당 :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교육, 초등부 고학년 및 청소년들로 구성된 소공동체 운영, 각종 동아리 활성화 모색, 특화된 청소년 미사 기획 및 운영, 지역사회와 연계한 위기 청소년 돌봄 센터 운영, 지구 차원의 청소년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사회봉사, 피정, 성지 순례, 축제, 콘서트, 운동회 등), 지구 차원의 청소년 기금 조성(긴급 지원, 장학금 등)

26. 청년
교구․대리구 : 기존 청년 교육 프로그램 강화, 청년들을 위한 사이버 공간 마련, 20대 30대 40대를 위한 신앙생활 가이드 앱 개발 및 알림 서비스 제공 지구․본당 : 청년 세대로 구성된 소공동체 운영, 청년 미사 활성화 방안 모색, 지역사회와 연계한 위기 청년 돌봄 센터 운영, 각종 청년 동아리 활성화, 취업 및 결혼 전문 상담소 운영, 교구 차원의 청년 프로그램에 적극적 참여, 지구 차원의 청년기금 조성(긴급 지원, 장학금 등)

복음화국
27. 가정
교구․대리구 :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신앙생활 가이드, 부모 자녀 관계 교육 자료, 가정 폭력 예방 교육 자료, 가족과 함께 하는 성경 및 기도 프로그램 제공, 성지 순례 안내, 사회봉사 안내, 환경실천 안내, 기타 이웃사랑 실천 가이드
지구․본당 : 교구․대리구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프로그램 활용 및 교육, 지역사회와 연대한 위기 가정 돌봄, 가족과 함께 하는 미사

28. 소공동체
교구․대리구 : 생애주기에 따른 자기주도적 신앙생활 로드맵 구축 및 안내 서비스 제공, 다양한 소공동체 모델 개발, 소공동체 교육 자료 발간(영상물) 지구․본당 : 자기주도적 신앙생활 교육 및 홍보, 다양한 소공동체 운영, 모범 소공동체 홍보 및 포상, 지구 및 본당 차원의 소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축제, 운동회, 나눔터, 성지 순례 등)

29. 노인
교구․대리구 : 노인대학 활성화 방안 연구, 노인대학 봉사자 양성 및 교육, 노인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 개발, 노인을 위한 기도학교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지구․본당 : 지구 차원의 노인대학연합회 결성, 노인들로 구성된 소공동체 운영, 노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기획 운영(성지 순례, 피정, 기도학교, 축제, 경로잔치 등), 각종 노인 동아리 활성화, 지역사회와 연계한 긴급 돌봄 센터, 노인 기금 조성, 지구 차원의 사회복지 전문가, 심리상담 전문가 양성 및 본당 지원

사회복음화국
30. 가난한 이들: 다양한 특수 사목
교구 : 본당 사회복지분과 활동 지침 교육, 전문 봉사자 양성, 긴급 지원 활동, 다양한 특수 사목 지원
지구․본당 : 사회복지분과, 소공동체, 단체, 지역사회 등과 연계한 다양한 위기 가정 지원 활동 전개, 무료 급식소 운영, 나눔 장터 운영, 충분한 예산 배정 및 운영

31. 생명․환경
교구 : 교황청 ‘사용자 지침’ 교육 및 홍보, 본당에서 활용 가능한 홍보 영상 제작, 구체적 실천 방안 모색, 모범 사례 홍보 및 포상
본당 : 환경실천 교육 및 실행, 생명 교육, 생명 수호 운동 전개

성직자국, 성소국
32. 사제․수도자 양성
성직자국 : 중견 사제 연수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사제 피정 및 연수 프로그램 강화
성소국 : 예비신학생 인성교육 프로그램 강화, 수도 성소 모임 활성화 모색

홍보국
33. 통합 소통환경 구축
신앙생활 종합 서비스 플랫폼 개발, 양방향 신앙 정보 네트워크 구축

Ⅵ. 나오는 말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34.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일치를 이루는 신비체입니다(에페 4,16). 각각의 지체는 나름의 고유한 역할을 통해서 교회를 윤택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 한 지체도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12,12~31).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소통한다는 것이며, 소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치유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공동체의 아픈 곳을 느끼고, 어루만지며, 위로하여, 치유하는 살아 있는 교회, 사랑하는 교회,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일치를 이루는 교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35. 교회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항상 우리를 위해 전구하십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를 맞이한 인류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모님의 성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기대어 계십니다(요한 19,25~27).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께 당신 사랑의 힘으로 다시 인류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또한, 성모님은 교회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이기에, 교회가 다시 예수성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의 원천으로 돌아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 곁에 꿇어앉아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사목교서를 마치며 교구민 모두에게 우리 교구의 복음화를 위하여 자비로우신 주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수원교구 복음화를 위한 기도
○ 만민의 임금이신 주님,
죽음으로 진리를 증언한 선조들을 통하여
이 땅에 구원의 빛을 밝혀주셨으니 감사하나이다.
● 수원교구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오니
사랑으로 협력하고 나눔으로써
주님 안에 일치하며 살게 하소서.
◎ 이제 저희도 선조들의 믿음을 본받아
힘차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
온 민족의 복음화를 이루게 하소서.
또한,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인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아멘.
○ 수원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0년 11월 22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안동교구]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통합 생태적 교회를 향하여 -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시작

1.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2020년 특별 사목 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교서는 「찬미받으소서」가 제시하는 통합 생태론의 정신에 따라 온전히 지속 가능한 세계로 나아가는 7년 여정을 출범하자는 교황님의 요청에 대한 한국교회의 응답입니다. 그리고 한국 주교단은 이 교서에서 “‘기후 변화에 관하여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찬미받으소서」, 52항)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생태적 회개를 실천하며 복음을 선포할 것을 다짐”하고 2021년 5월, 그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2. 한국 주교단은 사스, 메르스, 에볼라에서 코로나19로 이어진 감염증 확산 사태가 현대 물질문명이 큰 전환기에 와 있음을 반증하는 것임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단순히 의학적, 경제적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현대문명 전체의 구조와 균형 안에서 통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기후 위기와 어머니 지구의 울부짖음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복음화 사명과 사목 활동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임에 뜻을 같이하며, 각 교구는 지속적으로 생태적 회개에 대한 미래 방향을 제시하고 그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에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통합적 위기
3. 오늘날의 기후 위기는 단지 지구 자연 생태계만의 위기가 아닙니다. 기후 위기는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더욱 근본적인 위기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님은 지난 2012년 신앙의 해를 개막하시면서 우리가 날마다 목격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하여 ‘영성의 사막화’, 곧 ‘하느님 없는 삶이나 세상의 공허함’이라는 영성적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특별히 최근의 감염증 대유행과 기후 변화에 따른 불가항력적 재난들을 통해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위기와 재난에 따른 두려움 또는 영적 공허함은 우리를 하느님께 더욱 온전히 의탁하게 하고 신앙인의 소명에 더욱 충실하도록 이끌어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를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는’(「찬미받으소서」, 62항) 더 큰 위기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기후 위기는 단지 자연환경의 위기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신적, 영성적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자연환경의 위기와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위기, 그리고 영성적 위기는 서로 다른 별개의 두 위기가 아닙니다. 이 위기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통합적 위기입니다. 그리고 이 위기들의 바탕에는 사람이든 자연이든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그저 우리의 소유물로 여겨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 베네딕도 16세, 볼차노-브레사노네 교구 성직자들에게 한 연설(2008.8.6.). (「찬미받으소서」, 6항)하려는 유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곧 “오늘날의 위기는, 그것이 경제적 위기든 식량 위기든, 환경적 또는 사회적 위기든,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위기이며, 그 모든 위기는 서로 연관되어” 베네딕도 16세, 제4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2010.1.1), 5항.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덕적 위기, 통합적 위기 앞에서 교회는 “‘인간에 대한 전문가’로서 창조주와 인간 그리고 창조 질서의 관계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노력” 위와 같음, 4항. 하고, 교회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위기의 원인 – “피조물에게 저지른 죄” 「찬미받으소서」, 8항. , “궁극적으로 동일한 악” 「찬미받으소서」, 6항.
5.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의 훼손은 모두 궁극적으로 동일한 악 때문에 발생하였습니다. 이 악은 … 바로 인간의 자유는 무한하다는 생각입니다.”(「찬미받으소서」, 6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교황님은 교황이 되기 이전에 이미 “쾌락주의적이고 소비중심적이며 자기도취적인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침투”했음을 지적하시며 “이런 문화가 우리를 물들여, 어떤 식으로든 종교적인 삶을 경시하고 이교도적으로 행동하며 세속적으로 변해가도록 하여 종교가 약화된다.” 아브라함 스코르카, 「천국과 지상」, 2013, p.304. 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6. 우리는 교황님의 이 두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연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의 훼손 그리고 종교 약화의 원인에는 하나의 같은 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뿌리를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와 바벨탑 이야기 등에서 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곧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거슬러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왜곡하고 자유를 남용한 것이 바로 그 공통의 뿌리입니다. 이 공통의 뿌리가 교회에는 “영성의 사막화”라는 영적 위기를, 인류에게는 불평등과 소외라는 공동체적 위기를, 지구에는 “지구의 사막화”로 대표되는 생태적 위기를 가져온 악(惡), 궁극적으로 동일한 악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전 지구적인 위기를 도덕적이고 통합적인 위기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7. 이러한 위기들 속에서 교회가 살아가야 할 소명은 생태적 회개를 통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삶이 “생태적 악”을 이겨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8.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라는 이 표현은 우리 안동교구의 「사명 선언문」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 터에서 …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이 표현에는 생명의 원천이신 우리 하느님께 그 뿌리를 둔 인간 생명과 자연 생명, 곧 모든 생명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살겠다는 우리 교구민들의 사명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일찍이 「교구 사명 선언문」에서 선언한 것처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가 되고자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명을 충실히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생태적 회개를 통한 공동의 집 돌보기와 교회의 생태적 삶을 위해 같은 정신으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적극 동참해 나아갈 것입니다.

9.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와 사람들의 생태적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겠습니다. “생태적 악”, “궁극적으로 동일한 악”에 대항하여 절제와 절약을 현대적 금욕생활의 수칙으로 삼겠습니다. 농민, 사회적 취약 계층, 이주 노동자 등 급격한 기후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보살피겠습니다. 생명 농업이 곧 하느님 창조 사업이라는 소명 의식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애쓰고 있는 교구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앞으로도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며 모두를 살리는 생명공동체 운동을 지속하겠습니다. 개인의 식생활 개선과 친환경 제품 사용, 기업들의 친환경 경영을 위해 착한 소비, 친환경 소비를 장려해 나가겠습니다. 백두대간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겠습니다. 교구에 생태환경 사목을 실행하는 조직과 활동을 더 확대하고 활성화해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2021년부터 시작한 피조물 보호와 생태적 회심을 위한 미사를 앞으로도 지속하고, 또 전례와 성사와 기도 안에서 하느님 창조 질서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하겠습니다. 가정과 본당, 교구, 그리고 지역 사회 공동체가 이 모든 여정에 함께 하시도록 초대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데 함께 매진하겠습니다.

“통합 생태적 교회를 향하여”
10.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생태적 영성은 교회의 외적인 활동만이 아니라 교회를 내적으로 쇄신하여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모든 형제자매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걸어갈 때 교회는 더욱 건강해집니다. ‘교회는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는’(1코린 12,26 참조) 살아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된 신자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회헌장, 2항 참조. 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내적으로 더욱 튼튼해진다면 세상을 위한 소명을 살아가는 데에도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통합 생태적 교회는 이 신비체의 모든 지체, 곧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 생태적 회개를 통해 내적인 친교와 일치를 이루고, 나아가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이 땅에 하느님의 구원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통합 생태적 교회”로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통합 생태적인 교회를 향하여” 모두가 함께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11. 통합 생태적 교회를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와 개인 안에 구조적이고 습관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세속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대한 성찰과 회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생태적 회개가 어머니이신 교회를 위협하는 생태적 악을 이겨내는 치유와 쇄신의 영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끊임없는 참회와 쇄신” 「교회헌장」, 8항. 의 주체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며, 보살피지 못하고, 함께 걸어가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과감히 회개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곧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태적 회개’가 단지 ‘환경보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의 모든 사목 분야에서 사랑의 복음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로 승화” 한국 주교단 특별 사목 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통합 생태적 교회”로서 실제로 생태적인 삶을 추구하며 실천할 때 교회는 그 자체로 세상의 변화를 일깨우는 복음화 사명의 실천적인 표징이 될 것입니다.

12. 세상이 당면한 여러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의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202항) 누구보다도 먼저 교회와 우리 신앙인 각자가 이에 대한 명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인류가 이 책임에 합당하게 사는 것에 실패할 때는 언제나, 우리가 피조물들과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돌보지 않을 때는 언제나 그 길이 파괴로 열리게 되고 마음은 완고해 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미사 강론(2013.3.19). 그래서 우리 모두는 교회와 인류가 직면한 이 위기들로부터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공동의 집을 지켜내기 위해 함께 책임지고, 함께 걸어가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통합 생태적 교회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초대받은 것입니다.

13. 통합 생태적 교회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우리 교회의 수많은 자산으로부터 뛰어난 영감과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신의 길잡이요 영감으로 삼으신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우리 신앙의 핵심인 성체성사, 그리고 2021년부터 시작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로부터 우리의 주제와 관련된 중요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통합 생태론을 기쁘고 참되게 실천한 가장 훌륭한 모범”(「찬미받으소서」, 10항)이십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성찬례도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사고방식에 참다운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베네딕도 16세, 「사랑의 성사」, 92항 참조. ‘성찬례는 늘 세상의 제대에서 거행되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8항 참조. , ‘하늘과 땅을 이어 주기 때문입니다.’(「찬미받으소서」, 236항 참조) 또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하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와 우리 교구 시노드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통합 생태적 교회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노드의 목적인 “함께 걸어가기”가 바로 하느님 백성 공동체를 구성하는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14. “우리는 이 터에서 …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우리 교구의 이 「사명 선언문」의 정신대로 우리 교구민 모두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충실히 살아, 우리가 이미 이 세상에서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을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인 우리 모두가 믿음의 기쁨, 구원의 기쁨을 함께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로 생태적 회개를 통해 이 세상에서부터 통합 생태적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믿음의 기쁨, 구원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그리고 세속주의라는 풍랑 속에서 세상과 교회가 체험한 위기와 공허함으로부터 ‘믿는다는 것의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고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쁨에 대한 이러한 체험이야말로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구원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보여 주며 우리 교회를 “기쁨 넘치는” 교회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

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공동의 집인 지구, 하지만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 그리고 폭력으로 말미암아 황폐해지고 울부짖고 있는 우리 어머니인 지구’(「찬미받으소서」, 2항 참조)를 지키기 위한 7년 여정에 기도와 실천으로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를 더욱 살아 있는 공동체로 만드는 데에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피조물의 보호자, 자연에 새겨진 하느님 계획의 보호자, 서로의 보호자, 환경의 보호자가 됩시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우리가 피조물을 보호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호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미사 강론(2013.3.19).

주님,
주님의 힘과 빛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어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아멘.

2021.11.28(대림 제1주일)
천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원주교구]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교우, 수도자, 사제 여러분!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평화와 건강을 빕니다.

우리는 지난 해를 ‘자선의 해’로 보냈습니다. 원주교구 평협 주최로 ‘예수님께 한 끼 식사 대접하기’와 교황님의 뜻을 따라, ‘백신 나누기’에 적극 동참해 주신 교우 여러분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나누는 일은 항상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밝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은 해마다 사순절에 세 가지를 훈련합니다. 바로 ‘기도’ 와 ‘자선’ 과 ‘단식’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이미 여러 번 말씀 드렸듯이,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 필요한 훈련입니다. 심리학을 통하여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 열등의식, 자아분열, 자폐증, 대인공포증 등을 일으켜 자신을 스스로 파괴합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먼저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하고, 가정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절제’는 동양에서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중요한 덕목의 하나입니다. 절제는 용기, 현명, 정의와 더불어 사추덕(四樞德)의 하나입니다. 절제는 기쁨과 쾌락을 악이나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는 자신의 주체성을 위한 덕목이요, 자신의 행동과 말에 있어서 자신이 꼭두각시가 아니라, 주인공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기 위하여 필요한 자질입니다.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훈련 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은 ‘단식’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식욕을 절제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루를 굶어도 먹는 것을 참기 어렵습니다. 성욕은 한 달 두 달을,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기간을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명예욕은 4년이나 5년이 걸리는 선거 때를 기다리며 오랜 기간을 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절제라는 덕목을 수양하기 위해 우리에게 단식의 훈련을 제안하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마태 6,16-18)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식을 제안하시기 전에 몸소 사십 일간 단식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고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루카 4,1-2) 그렇지만 이어지는 악마의 유혹들(루카 4,3-13)을 이겨내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범은 결국 당신의 행위에 대하여 당신 자신이 주체자였으며, 진정한 자유인이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1905-1997)은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서 당시 나치들이 재미삼아 유다인들에게 당근을 던져주며, 배가 고픈 포로들이 당근을 향하여 달려드는 것을 즐겼던 상황을 전해줍니다. 그 상황에서 그는 비록 감옥에 갇혀있을 지라도 당근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자제함으로써 그들의 농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그 내면에 성자처럼 행동하든지, 혹은 동물처럼 행동하든지 두 가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인간의 ‘내적 자유’를 깊이 연구하여 심리학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적으로 속박되어 있을지라도, 본인의 의지에 따라 내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탐함으로써 하느님의 명령을 어겼던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창세 3장 참조)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고달픈 현실을 느끼면서 과거 원조 아담과 하와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마치 자신은 그렇지 않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넘긴 에사우의 이야기(창세 25,29-34)를 알고 있습니다. 에사우를 보잘것없는 것에 귀한 것을 팔아넘긴 딱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처럼. 과연 그렇습니까? 사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에사우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약한 의지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19)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악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선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절제는 의지에 속한 문제입니다. 사람에 따라 의지가 강한 사람도 있고, 의지가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높은 아이큐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낮은 지능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듯이 말입니다. 낮은 지능을 지닌 사람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높은 지능을 지닌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입니다. 그런데 의지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듯 싶습니다. ‘나는 의지가 약해.’라는 말로 자신을 규정짓고, 더 이상 노력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약한 의지를 지닌 사람은 강한 의지를 지닌 사람보다 더 많은 훈련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강한 의지가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그 강한 의지가 악한 의지라면 더 많은 해를 사회에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합니다. 선한 의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심리학자 로베르토 아싸지올리(1888-1974)가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의지에도 단계적 훈련을 통해서 강한 의지로 키워갈 수 있다고. 또한 우리에게는 초월적 의지, 소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도 가능하다고. 그렇습니다. 의지가 약한 우리들도 단계적 훈련으로 의지를 강하게 키울 수 있고, 또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이 결심한 것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많은 성인들의 회개의 경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단식은 먹는 것이 악행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식은 먹는 행위의 주체가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어야지, 먹는 것만 보면 게걸스럽게 되는 일은 음식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이지, 술이 우리를 마셔버리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게임을 해야 하는 것이지, 게임이 청소년들을 놀이감으로 만들면 안됩니다. 성욕의 절제는 성이 악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절제하지 못한 성욕으로 추락한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명예욕의 절제는 명예가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절제하지 못한 욕심으로 비참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무절제한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주체성을 지키지 못하게 하여 예상치 못한 혼란과 불결한 생활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소위 도박이나, 알코올이나, 또는 성적 욕망이나 재물에 중독이 된 사람들은 중독물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단식을 비롯한 절제는 우리 자신을 자유인이 되도록 합니다. 음식에 자유롭다는 건, 먹고 싶은 것만 먹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싶지 않은 음식도 기꺼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음식에 있어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일에 자유롭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원주교구민들이 올 한해 단식을 통한 훈련을 통하여 절제의 덕을 닦아, 우리 행동을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코로나-19로 여러 가지로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내적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2021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조 규 만 바실리오 주교

 

 

 

 

[의정부교구]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사도 4,32)

 

 

  머리말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겪은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 모든 나라를 위협하였습니다. 부강하고 과학이 발달한 선진국과 가난한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그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코로나19로 가족이나 친지를 잃고 충격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직장과 사업체가 재기 불가능한 지경에 놓여 절망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백신 개발이 이루어졌지만, 그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라는 아직도 코로나19의 심각한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공동체도 그동안 체험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때로는 미사에 전혀 참례할 수 없었고, 참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소수의 인원으로 제한될 뿐이었습니다. 특히 세례성사를 비롯한 교회의 기본적인 성사를 거행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아서 성사를 받는 신자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들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찾아가고 싶어도 뜻대로 할 수 없었기에 의욕을 잃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이 힘을 모아 새로운 길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대면 종교활동이 어려워지자 여러 본당이 온라인 미사를 실시하였으며, 비대면으로 하는 교리나 성경 공부, 회합 그리고 어린이 주일학교까지 실시한 곳도 있었습니다. 일부 사목자는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대문 앞에서 기도드리며 축복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우리 교구 사제들이 여러 차례 진지하게 토의하고 의견을 나누었듯이 코로나19 팬데믹은 분명 교회에 큰 위기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목을 반성하고 새로운 대책을 세우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은 ‘코로나와 함께하는(with corona) 일상’으로 전환될 시기이며, 앞으로의 시간을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때가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2022년 사목교서는 시대의 징표를 읽는 교회와 세상으로 한 발 더 다가가는 사목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1. 코로나19 팬데믹 안에서 신앙과 공동체의 회복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신자들과 교회공동체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미사에 자유로이 참례할 수 없고, 편히 성당을 드나들며 신심을 키워왔던 기도 활동과 공동체 모임이 금지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갈증을 더 깊이 느꼈다는 신자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심이 무뎌지고 약해졌다는 신자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 한국교회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특별희년을 보낸 것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사제도 교회도 없는 가운데서 놀라운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분들은 신앙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마지막 편지에 나오듯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하느님을 알고 구원을 얻는 것인데, 그분들은 이 진리를 마음 깊이 간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웃 신자와 함께 기도하며 격려하였고, 가진 바를 서로 나누면서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천주교가 얼마나 좋은 종교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순교의 길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9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과 윤지헌 형제 그리고 권상연의 유해가 발견되었고 보도되었습니다. 지난 3월, 전주교구에서 실시한 성역화 작업 중에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견되었는데, 이에 대해 고고학자와 의학자들이 연대 측정과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세 분 순교자의 유해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에게 주님을 참으로 알아 섬기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알려주신 놀라운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을 겪으며 우리 교구 사제들은 사목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서 지난 시간 동안 교회가 신자들에게 신앙의 본질인 구원을 깨닫게 하고 미사성제와 성사 생활을 인도하는 데 소홀했다고 반성하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신자가 신앙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번 한 해는 무엇보다 신앙과 공동체의 회복에 중점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틈틈이 비대면 방식으로 해왔던 여러 가지 교육과 공부, 모임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평신도, 수도자, 사제 모두 하나 되어 신앙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2. 우리와 후손을 위한 생태적 회개
한해 한해 살아갈수록 기후 위기를 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의 경고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전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태환경과 기후 위기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특히 최근 들어, 전 세계에서 많은 젊은이가 자신들의 미래를 심각하게 염려하며 지구를 살리는 데 행동으로 참여해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지구를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사회운동 이전에 그분의 자녀인 우리 신앙인이 앞장서야 하는 신앙의 활동입니다.
2021년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시작한 우리 교구는 모든 본당과 가정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생태환경을 살리고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2022년도 실천사항으로 제안하는 ‘생활 쓰레기를 줄입시다’(사회사목국 제언 참조) 운동에 동참하여 ‘생태적 회개’로 부르시는 주님께 응답하도록 합시다.

  3. 가난한 이들과 난민을 돌보는 교회
가난한 이를 돌보는 일은 하느님 자녀의 소명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에서 특별한 애정을 갖고 다가가신 대상은 가난하고 병이 든 사회적 약자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밑바탕 삼아 이웃에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신앙과 공동체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는 사랑을 실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신앙의 회복이란 하느님을 마음으로 깊이 알아뵈옵고 진실로 사랑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하느님을 아는 방법은 바로 그분께서 아끼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서간에서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마태오 복음사가는 최후의 심판이 굶주리고 목마른 이, 나그네와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를 따뜻이 돌보아 주었는지에 달렸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었습니다(마태 25,31-46 참조). 이처럼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바로 신앙의 본질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근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전쟁이나 테러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고향을 떠나는 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을 돌보고 도움을 주는 일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소명이겠습니다.

  4. 함께 걷는 시노달리타스의 구현
최근 보편교회는 초기 교회부터 사도들이 보여주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정신이 된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의 구현을 새롭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에 개막한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제가 바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입니다. 전 세계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갖는 바와 같이 시노달리타스는 이 시대에 더욱 요청되는, 우리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며 사목과 교회 운영의 방법입니다. 2020년 우리 교구 사제단은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사제연수를 한 바 있습니다. 평신도와 사목자가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주제가 직접 실천하기에 말처럼 쉬운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요즘 봉사자들의 숫자는 줄고 있는 반면, 교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 전문성을 지닌 이들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가 위기를 극복하고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공동체의 회복과 도약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데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5. 사제와 수도자 성소개발을 위한 관심과 노력
신심 깊고 성실한 젊은이를 교회 일꾼인 사제, 수도자로 양성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미래가 달린 일입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성소자들이 급격하게 줄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 앞날을 생각할 때 대단히 걱정되는 일입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들을 보기 어려워지고 청소년 사목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면서 성소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맞아 우리에게 당신의 일꾼을 보내달라 기도하고 발굴하며 후원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모든 신자가 함께 관심을 갖고 애써야 할 과제입니다.
성소의 위기와 관련하여 신앙교육의 첫 자리인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정은 모든 인간 활동이 시작되는 못자리이기에,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각 사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신앙을 위한 환경과 토대를 여러분 가정에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대화를 나누는 가정을 바탕으로 훌륭한 신앙인이 나오고 교회의 앞날을 위해 일할 사제와 수도자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맺음말
신앙과 공동체를 회복하며 시대적인 징표를 교회 안에서 구현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6-47).
이러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복된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도 주님께서 초대하시는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한 명의 백 걸음보다 백 명의 한 걸음이 더욱 가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을 애틋이 바라보시는 하느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결실을 선물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가정에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2021년 대림 제1주일에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

 

 

 

 

[인천교구]

기도하는 가정의 해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야고 5,1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교구설정 60주년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의 여파가 지속됨에도 교구설정 60주년과 희년의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교구설정 60년을 넘어 100년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교구가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늘 은총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신앙인에게는 기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특별히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깊은 마음 안에 늘 정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 동안 우리 교구는 가톨릭교회교리서에 나오는 다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기도와 가정’ 이 두 가지 주제를 통해 성화되어가는 한 해를 보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기도를 가르치는 첫째 장소이다. 혼인성사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교회’로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법과 기도에 항구하는 길을 가정에서 배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685항)

기도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모든 것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그 신비를 더 깊게 알고,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신앙인들에게 기도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일부분이며 기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가장 쉽게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또한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드높이는 것이요, 또한 마땅한 선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다.”(2590항)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뜻을 찾아갑니다. 동시에 나약한 인간이기에 하느님께 우리가 바라는 바를 청합니다. 하지만 기도 안에서 우리는 늘 어려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원하는 청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기도의 응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을 때가 있으며, 기도가 허공에다 외치는 소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기도가 진정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가집니다. 그리고 때로 우리는 기도 안에서 얼마나 하느님이 우리의 바람을 꼭 이루어 주고, 꼭 우리가 바란 대로 살게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쉽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섬겨야 한다고 요구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2735항 참조).
하느님이 기도 안에서 우리를 회심시키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느님을 회심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녀 마더 데레사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기도란 내가 하느님께 바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순간이기보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신지를 묻는 순간이다.” 분명 우리는 기도에 대한 여러 성인의 이야기를 듣지만, 그들처럼 기도하기를 어려워하는 우리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우리 신앙의 어려움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올 한 해 동안 언제나 겸손하게, 항구히 그리고 다양한 기도의 방법 가운데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기도의 맛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분명 지금 이 순간도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넘치는 사랑으로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님 2021년 6월 2일 일반알현).

가정
교회는 오래전부터 가정을 ‘가정 교회’, ‘작은 교회’(권고 「가정 공동체」 49항 참조)라하면서 사회와 교회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교회는 모든 가정 교회의 삶을 통하여 끊임없이 풍요로워지기에, 교회는 ‘가정들의 가정’이라고 말합니다(권고 「사랑의 기쁨」 87항 참조). 이처럼 가정은 교회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교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현대화의 물결 안에서 가정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많은 가정이 어려움 속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 직장 문제, 정서적 사회적 영성적 어려움 등 복합적으로 다가오는 도전들은 가정 안에서 부부의 관계나 원만한 가정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 대한 총체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는 신앙을 가진 다양한 가족 형태 안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들부터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복음화를 위한 노력을 ‘가정 사도직’이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가정 사도직’을 위해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가정 공동체」 49,71,86항; 「사랑의 기쁨」 200항 참조).
가정이 주체가 되어 가정에서부터 교리교육과 복음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 사도직을 실현하고 실천함에 있어 교회는 먼저 자녀들의 신앙 교육, 생명존중 교육, 윤리적 양성 그리고 신앙의 전수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가정 공동체」 71항; 「사랑의 기쁨」 259-290항 참조). 가정 사도직이 수행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기도하는 노력일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녀들과 부부들과의 대화도 가능하게 됩니다. 또한 조부모님들의 역할이 이런 면에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삶 안에 녹아있고 살아있는 신앙을 자손들에게 기쁘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년간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고, 이런 비정상적인 삶이 우리로 하여금 가정의 중요성을 더욱 깊게 느끼고 체험하게 이끌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2022년을 보내며 다양한 사목적 방안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간략히 이를 다음의 3가지 방향으로 모든 형제, 자매님들에게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1. 자신에게 맞는 기도 방법을 찾아봅시다.
2. 항상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3. 가정 안에서 기도하고,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서도 기도합시다.


2022년은 교구 차원에서 ‘기도하는 가정의 해’이자 온 세계 가톨릭 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2023년까지 함께 할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기간입니다. 이번 시노드를 개최하시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두 함께 걸어가는 길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교회의 미래를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며(경청), 대화하고, 마음을 헤아리는(식별) 과정을 통해 변화와 쇄신의 길로 함께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초대로 이 과정에 참여하는 온 세계 교회의 신자들과 더불어 우리도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기도하는 가정의 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청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전주교구]

“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 (1테살 5,17)
- 교구설정 100 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 -

 

 

1. 우리 교구의 사목방향은 기도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콜로 1,2). 작년 2021년 우리 교구는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로 그간 행방이 묘연했던 세 분의 순교복자 유해를 찾았습니다. 이 놀라운 하느님의 선물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며,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특히 신앙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순교자들처럼 우리의 삶에 하느님이 항상 첫째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2018년부터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라는 중장기 계획에 따라 교회 생활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순차적으로 묵상해 오고 있습니다. 이미 ‘하느님의 말씀’(2019년)과 ‘교회의 가르침’(2020년)을 묵상하였고, 작년 한 해 동안은 ‘성찬례’를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쇄신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코로나 사태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찬례의 보화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보화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신 교우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다가오는 2022년에는 성찬례를 통해 깨닫고 맛본 하느님의 사랑을 항구하게 간직하도록 ‘기도 생활’에 전념합시다.

2. 기도는 우리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봅시다. ‘나는 정말 기도하는 사람인가? 나는 자주 기도하는가 아니면 거의 기도를 안 하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을 가끔 제기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점점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하느님이 마치 계시지 않는 듯이 살기 때문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것만이 전부인 양 살아갑니다. 결국 신앙인이면서도 무신론자처럼 삽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기도에 대한 정의를 통하여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예수의 성녀 데레사)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거룩하신 하느님께 들어 올려 그 하느님과 친밀한 우정을 자주 나누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보다 더 잘 알아차릴 뿐만 아니라 그 뜻에 자신을 맞추어나가기 때문에, 덕스러운 사람이 되어가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변합니다. 곧 기도는 우리 자신을 올바로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고통스런 마음을 벅찬 마음으로 변화시키고, 슬픈 마음을 기쁜 마음으로, 빈곤한 마음을 부유한 마음으로,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로운 마음으로, 약한 마음을 강한 마음으로, 어두운 마음을 밝은 마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성녀 게르투르드). 결국 “기도를 가까이할 때에 삶이 바뀝니다”(프란치스코 교황,『기도, 새 생명의 숨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21[=기도], 16).
따라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신앙인다운 삶을 살 수 있고, 한층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우리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라고 거듭 당부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기도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기도만큼 값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 주고, 어려운 것을 쉽게 해 줍니다.”

3. 예수님은 끊임없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항상 내적으로 강하시고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인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셨습니다”(히브 4,15). 곧 예수님도 우리처럼 기쁨과 슬픔을 느끼시고 지치거나 분노하기도 하셨습니다. 군중이 밀어닥쳤을 때 몹시 예민하게 반응하셨고, 수난 직전에는 괴로움과 번민에 떠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 때마다 예수님은 홀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마르 1,35; 6,46; 루카 5,16 참조). 기도를 마치셨을 때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당신의 내면이 더욱 새롭고 강하게 된 것을 분명 느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깊이 만나시고 용기와 새로운 힘을 얻으셨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기도를 배우셨고, 나자렛 회당과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를 익히셨기 때문에(가톨릭교회교리서 2599 참조), 기도의 힘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며 세례를 받으신 후에 기도하셨고(루카 3,21 참조), 특히 당신 사명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더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선택하시기 전에는 산으로 가시어 밤새우며 기도하셨고(루카 6,12 참조),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으며(루카 22,41-44 참조),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실 때에도 기도하셨습니다(마르 15,34; 루카 23,34.46 참조).
이렇게 기도는 예수님에게 당신 사명을 이행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일치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 자체는 당신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학교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골방에 들어가…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나아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마태 6,9-13 참조)를 직접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이며 “복음 전체를 요약하고 있는”(테르툴리아누스)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께 마땅히 청해야 할 것만이 아니라 청해야 할 차례와 순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먼저 하느님께 합당한 찬미와 영광을 드려야 하고, 그다음에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에 내맡겨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여 우리가 용기 있게 기도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청한 것보다 더 많이 주십니다! 언제나, 언제나 더 많이 주십니다”(기도, 25). 말하자면 은총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총 안에서 당신 자신 곧 성령도 내어 주십니다(루카 11,13 참조). 그러니 우리는 담대하게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다음 세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5. 기도에는 올바른 지향이 필요합니다.
먼저 기도에는 올바른 지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3). 그리고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기도가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행할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마태 7,21 참조).
예수님은 먼저 하느님의 것을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수난의 잔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셨지만, 결국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 하느님의 뜻에 적극 협력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6. 기도에는 굳은 신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도에는 굳은 신뢰심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정말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마르 6,6) 고향 사람들과 “믿음이 약한”(마태 8,26) 제자들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그 이유로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라고 지적하시면서 믿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마태 17,20).
따라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청하러 주님께 가까이 다가갈 때에, 믿음에서 출발해서 믿음으로 청해야 합니다”(기도, 43).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마르 9,23).
우리가 주님께 대한 굳은 신뢰와 확신으로 청한다면, 결국 기도 안에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것을 주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기도는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교회를 맡겨 드리고, 사람들을 맡겨 드리고, 상황들을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기도, 42).

7. 기도에는 항구함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에는 항구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한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빵을 청한 이야기(루카 11,5-8 참조)와 불의한 재판관에게 계속 탄원하는 과부의 이야기(루카 18,1-8 참조)를 통해서 꾸준히 기도하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꾸준히 기도하는 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를 중지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분명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지금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우리의 소망이 기도 안에서 정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는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성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가장 적절할 때 들어주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너무 늦다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는 그때가 가장 적절할 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할”(루카 18,1)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며, 따라서 언제나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8. 우리 신앙 선조들은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생활을 강조하는 이 기회에 우리 신앙 선조들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혹독한 박해 시대에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지켰고,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것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분들은 성체성사의 고귀함을 깨닫고서 그 누구보다 성체성사를 갈망하였지만 사제의 부족으로 이를 제대로 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신앙인답게 훌륭한 삶을 살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충실한 기도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아침기도, 저녁기도, 묵주기도 등 일상 기도에 충실했습니다. 특히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주일과 대축일은 말할 것도 없고 공소에 자주 모여 기도했습니다. 가정에서도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각자 서로를 위해, 가정과 교회, 사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힘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신앙 선조들의 이러한 훌륭한 모범을 본받아 우리도 기도 생활에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9. 몇 가지 구체적인 사항을 제안합니다.
이제 우리 교구가 올해부터 앞으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을 제안합니다.

첫째, 공동체와 함께 거행하는 전례, 특히 주일미사에 성실하게 참여합시다. 성찬례는 최상의 기도이자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자리입니다. 가급적 평일에도 성찬례에 참여하여 하느님과 더욱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이룹시다.

둘째,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삼종기도, 식사 전후의 기도, 묵주기도 등 날마다 일상 기도를 꼭 바칩시다. 이러한 일상 기도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을 가까이 체험하게 합니다.

셋째, 가족이 모여 함께 기도하도록 노력합시다. 가족이 함께 기도한다면, 가족 사이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예수님의 가정을 닮은 성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에게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끝까지 함께 갑니다.

넷째, 주님과 더욱 깊은 친교를 맺기 위해 성체조배를 위한 시간을 기꺼이 냅시다. 주님께서는 감실 안에 참으로 현존하시며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섯째, 본당과 단체 및 교회기관은 기도나 전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는 자리를 마련합시다. 미사 전후를 이용한 짧은 교육 혹은 특강이나 정기적인 영성강좌 등을 개최하여 신자들의 기도 생활에 도움을 줍시다.

여섯째,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교구의 성지들을 순례하여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그 신앙을 본받읍시다. 특히 초남이성지에 모신 순교복자들은 물론 교구의 순교자들과 그분들이 남기신 신앙의 유산을 참배하고 공경하며 교회와 세상과 가정의 성화를 위해 전구를 청합시다.

일곱째, 그동안 실천했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운동을 앞으로도 지속합시다. 주님은 끊임없이 간청하라고 이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구온난화를 막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교구의 지침에 따라 함께 기도하고 행동합시다.

2022년 한 해 동안, 저와 여러분은 기도 생활에 전념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맛보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빕니다.

2021년 11월 28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사도 요한) 주교

 

 

 

 

[제주교구]

대화를 살아가는 소공동체

 

 

드디어 교종 프란치스코 의 제안으로 시노드의 2년 여정 (주제: 친교와 참여, 사명) 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를 비롯 한 여러 어려움과 한계 속에 '세상을 순례하는 교회'로서 우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세 상의 파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때론 흔들리고, 때론 고뇌하며 보낸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하느님 백성 모두가 좀 더 성 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다시금 위로와 더불어 서 로에게 격려의 손길을 보내고, 보다 근본적인 성찰 속에 본격적인 시노드의 공동 여정을 함께 시작하자고 제안 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결코 혼자서 걸어갈 수 없고,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만 합니다. 이는 우리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 지입니다. 함께 걸어가는 여정 속에 '식별'과 '책임'이라 는 분명한 우리들의 응답을 요구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시노드는 “공동합의성" 이란 말로 보통 번역되지만 지 난 추계 주교회의에서 충분히 그 뜻을 담아내지 못한다 고 결정하여, 그냥 라틴어 “시노달리타스"란 말로 쓰기 로 했습니다. 그동안 교회의 신학적 성찰에도 불구하고, 지난날의 성직자 중심의 교회 현실은 하느님의 뜻에 온 전하고도 분명하게 '네!'라고 응답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보다 더 시대에 걸맞은 가톨릭 교회의 혁신과 변화를 찾아야 하는 숙제 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종께서는 우리가 또 하나의 교회를 세 우는 게 아니라, 다른 변화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며, "하느님께서 제시하고자 하시는 새로움에 열린 다른 교회를 만드는 것이 도전 과제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교종께서 이번 주교 시노드가 성령으로 충만한 여정이 되길 바라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령, 곧 하느님의 새로운 숨결이 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는 우리를 온갖 구속에서 풀어 주시고, 죽은 것을 되살리시며, 사슬을 풀어 주시고, 기쁨을 널리 퍼뜨려 주 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개인적 기호 가 이끄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우 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대화는 인간 삶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여정에 있어서도 소통을 위한 중요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대화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고 상대방의 필 요를 이해합니다. 특히 이것은 깊은 존중의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듣는 태도를 갖추도 록 하고, 대화 상대방의 보다 나은 면을 이해하도록 하 기 때문입니다. 교종께서는 “대화란 서로의 차이를 인정 하면서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유하게 해주는 애 덕의 표현"이라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화는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선물, 곧 은총임을 느끼게 합니다. 교회도 인간 내면에 자리한 다양한 요청들을 실현하고 공동선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시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오늘날 가 정과 직장, 일상 등 모든 형태의 대화는 하느님 사랑의 위대한 요청을 표현하는 것이며 대화를 통해 분열과 몰 이해, 무관심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진정한 대화는 통교의 다리를 만들고 조그마한 자신 안에 갇혀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줍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취임 이후 쉼 없이 교회 공동체가 지닌 대화의 소명을 일깨워 왔으며, 특히 그리스도 형제들과의 소통 그리고 무슬림 등 타 종교와의 대화도 몸소 실천해왔습니다. (2016년 '자비의 특별 순교자 알 현’ - 10월 22일 베드로 광장)
대화는 오랫동안 구원의 역사 안에서도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늘 만남과 경청 그리고 식별의 과정을 거 치면서 참다운 친교공동체의 모습으로 구체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두가 오롯한 참여와 사명을 가진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주교구는 지난해 복음화를 향한 한 걸음을 전진하며 형제애에 바탕을 둔 사랑을 약속했습니다. 올해 그 사랑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대화의 길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초대합니다. 이는 단순한 대화 기법과 같은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 뜻에 기초 한 신앙을 가진 형제자매들이 지녀야 할 기본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하는 '진정성'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 서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시고 언제나 당신 뜻에 맞갖은 삶으로 초대하시며 걷는 비결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과의 대화 - 하느님 말씀의 신비는 그리스도인들 에게 부여된 생명의 법입니다. 사도로부터 이어 온 교회 의 역사 안에서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비추며 삶의 양식 으로 다가옵니다. 따라서 신앙인은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의 메시지를 새롭게 바라 보면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자 애써야 합니다. 여기엔 날 마다 말씀과 가까이 하려는 영신수련이 필요합니다. 그 럼으로써 살아있는 말씀이 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사 랑을 꽃피울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성체와의 대화 -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신앙의 신비를 가장 크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매일의 전례를 통해 다가오는 주님의 몸을 영함으로써 온전히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각과 더불어 샘솟는 물을 길어 올 리듯이 매일의 거룩한 성덕으로 초대됩니다. 그리하여, 자주 주님과의 내밀한 대화의 시간을 통해 기도의 주인 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히 하느님 현존 안에 머 물 수 있게 해줍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새로운 감실로서 우리 자신이 참된 신앙의 가치를 실천하게 합니다. 그리 고 이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태적 회심의 길을 보다 더 심도 있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형제들과의 대화 - 교회는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통해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안에 드러나는 친교의 현 실을 깊이 경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시선 안에 서 그들 서로 형제애를 나누는 가운데 가장 깊이 예수님 의 현존을 경험하게 해주는 장이 됩니다. 결국 형제애는 우리들의 걸어가는 여정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길이 기도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로 인해 신앙을 멀리하게 된 형제들의 상황에 더욱더 가까이하여 진리의 빛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현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한 문제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올바른 출구를 찾아야 할 식별의 시간이 중요한 때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교회안에서 우리가 모두 한 몸의 지체이고 서로 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스도라 는 뿌리로부터 우리는 저마다 공동선을 위한 은총이라 는 양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 곧 당신 생 명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 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어 모든 이를 당신 자신에게 이끌어 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그 폭넓고 깊은 사랑에 따라, 호 혜와 용서와 완전한 자기 증여를 특징으로 하는 형제애 의 바탕이 마련된 것입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습니다. 정말 올바른 국가의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라며 한 표를 행사할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 차원에서도 지역 일꾼이 되겠다는 분들 역시 우리가 올바로 선출해야 하는 중대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시대가 안고 있는 부르짖음을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나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들까지 포함하여 다른 이들의 고통과 희망에 언제나 귀 기울이며 공감하고, 우리 형제·자매의 선익을 위하여 기 꺼이 온 힘을 다해 헌신할 줄 아는 그 사랑의 힘든 길을 걸어가면서 참된 대화의 성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1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창우 비오

 

 

 

[청주교구]

미사 중심의 교구공동체의 해
“주일을 거룩히 지킵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지난 한 해 동안 교구에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본받는 해를 보내며, 신부님의 삶을 따라 신앙의 여정에 함께 하신 신자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교구의 모든 신자가 미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고, 주일을 거룩히 지키기를 희망하며 2022년을 ‘미사 중심의 교구공동체의 해’로 정했습니다.

2. 미사는 인류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때가 차자 “당신의 외아들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루카 2,11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미사는 인류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는 이들의 기억 속에 현존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사를 거행할 때,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 영원히 십자가 위에서 드린 희생 제사는 언제나 현재적인 것으로 존속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64항) “새 계약의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제들의 직무를 통해서 활동하심으로써 성찬의 희생 제사를 드리시기”(가톨릭교회교리서, 1410항)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활동이 이루어집니다.”(교회헌장, 3항 참조)

3. 미사는 성체성사의 거행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우리 가톨릭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모든 세대, 모든 세기에 걸쳐 성체성사를 줄곧 거행하여왔습니다.
성체성사 거행의 핵심과 정점은 사제의 축성기도입니다. 축성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제는 미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기도를 통하여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시킵니다. 빵과 포도주 형상으로 예수님께서 온전히 실체적으로 현존하는 성체를 이룹니다.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탁월한 현존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께서 성체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가장 확실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현존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미사는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거룩한 친교의 잔치이며, 파스카의 잔치입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영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를 증대시키며”(가톨릭교회교리서, 1416항 참조), 영원한 생명을 보증받기 때문입니다.

4.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정점입니다(교회헌장, 11장).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주일미사 참석은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의 토대요 중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급변하는 우리사회의 여러 상황이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석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 시작된 코로나감염증대유행은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석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모든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하는 주일미사가 중단되었고 이후에도 장기간 제한적 인원으로 미사를 거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회는 부득이 신자들에게 평화방송에서 중계하는 미사 등 비대면 방식의 대송으로 주일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교회법, 1245조 참조). 이와 같은 교회의 배려는 주일미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신자들의 의식에 큰 혼란과 지장을 초래하였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주일미사 참례는 신자 각자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신자들은 누구나 주일미사에 참여할 중대한 의무가 있습니다.”(교회법, 1247조 참조) 주일미사 대송 허용은 코로나감염증대유행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주일미사 참여의무를 대신하도록 한시적이며 예외적으로 허용한 결정이지, 신자각자가 아무 때나 임의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일미사는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에 원천이요 중심입니다. 주일미사는 신자생활에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일 년 52주 주일미사를 꼭 참여하는 가운데 활력 넘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5. 주일은 하느님 창조위업에 대한 경축의 날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이 살아갈 터전인 지구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지구는 우리가 돌봐야하는 하나 뿐인 공동의 집입니다. 또한 지구는 사람뿐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의 보금자리요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무분별한 개발과 인간탐욕이 빚어낸 무절제한 생활양식으로 무참히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현상을 야기하여 심각한 기후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구상에 수많은 생명체가 소리 없이 멸종되었고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하느님은 항상 용서하시고, 인간은 때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2020년 제50차 지구의 날 연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가 지구에 대한 태도를 시급히 바꾸지 않는다면, 온난화 가속으로 지구온도가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공동의 집인 지구는 생명체와 인간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대재앙에 직면할 것입니다.
교회는 지구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회심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그리고 환경파괴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모범적으로 가정에서부터 에너지를 절약하고 소비를 줄이는 생활을 실천하여 지구를 살리는 전위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일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해 이루신 놀라운 창조위업을 기억하고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매주일 미사가 지구와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한 많은 해를 끼쳤음을 깊이 뉘우치고, 작은 실천으로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는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6. 2022년 새해에 교구의 모든 신자가 미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고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교구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도움이신 매괴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니다. 새해에 신자여러분과 교구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에 하느님께서 풍성한 은총을 가득히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11월 28일
대림 제1주일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춘천교구]

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1. 우리의 현실


지구촌 곳곳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고통의 땅이 되어 가며 절박한 탄식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증의 급속한 세계화로 인해 무너진 일상 속에서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환경 재난이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난과 함께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형성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탄원과 고통이 더해만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앙의 삶과 방향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두려움이 가득해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온유한 사랑 안에서 우리 본연의 사명을 찾아내 식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말씀을 통해 드러내시는 하느님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그분의 입김으로 그 모든 군대가 만들어졌네.”(시편 33,6)

이 시편의 말씀처럼, 주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러기에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시편 1,1-3 참조)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향했던 두 제자는 예수님 존재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멸시받고 배척당해 죽음에 이른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분을 그렇게도 열심히 따랐는데, 결국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군.’ 두 제자가 엠마오로 향하면서 되뇌었을지 모를 이 말은 어쩌면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떠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 생각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런 두 제자와 나란히 함께 걸으며,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십니다. 믿는 마음에 굼떴던 그들은 식탁에 함께 앉아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씀을 통해 체험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불신으로 가득 차 냉랭했던 마음이 다시 뜨겁게 타올랐던 이 체험은 결국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말씀을 통한 체험은 2,000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성령 안에서 사랑의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가 주님을 알아보기 위해서 언제나 말씀을 가까이 두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성경 읽기는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며 그 자체로 훌륭한 기도가 됩니다. 이는 말씀과 성찬의 전례가 결합되는 미사 안에서 절정에 이르며 완성됩니다.

3. 말씀살기

“교회는 말씀으로부터 태어나고 그 말씀으로 살아간다.”(주님의 말씀 3항)

성경은 하느님 백성이 모인 신앙 공동체에서부터 생겨났기에 “성경의 본래적 자리는 교회의 삶 자체”(주님의 말씀 29항)입니다. “하느님 백성에 의하여,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책은 바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이며, 우리는 이 백성의 신앙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주파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주님의 말씀 30항) 성경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읽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홀로 이루는 길이 아니라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여정입니다.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말씀을 접하고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을 함께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4. 피조물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메시지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며, 당신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선함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책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십니다.”(찬미받으소서 12항)

“무한한 선”이신 하느님께서는 성경과 더불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피조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계시에서 배제된 피조물들은 없습니다. 피조물에 관한 관상은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르침을 발견하게 합니다.(찬미받으소서 85항 참조) 모든 피조물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사랑의 친교로 불리운 소중한 존재들이며, 보편적 친교를 이루어야 하는 사랑의 실재입니다.
말씀과 피조물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배워 알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현실의 아픔에 응답하며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따라서 말씀과 피조물은 더 이상 필요에 의해 선택되어 삶에 도움을 주는 미약한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의 길잡이여야 합니다.

5. 춘천교구의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현대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행동하고, 가난한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정하며, 다른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목표를 세우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더 이상 없는 것처럼 일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80항)
교회는 산업 문명이 초래한 빈부 격차의 심화와 생태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대응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5년 5월 24일에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시어 신앙의 길에 참다운 이정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후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계 기후 상황은 바뀌지 않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생태계 파괴가 눈앞에서 일어나도 피조물을 지키기 위한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처럼, 가난한 이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애써 외면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겠습니다.
이제 춘천교구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말씀과 피조물의 소리를 듣고,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7년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길다면 긴 7년간의 여정 동안 우리는 눈앞에 닥친 현실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인류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사랑과 연민으로 지켜보며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눈빛을 진심으로 찾고 읽어내야 합니다.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 2,22)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말씀과 피조물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우리 삶의 본질이며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실천이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찬미받으소서 49항)에 응답할 수 있기를, 또한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7년 여정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위의 두 주제, ‘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교구에서 실천 사항을 제안할 것입니다. 현 상황에서 특별히 한반도에 사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남겨진 숙제가 참으로 많습니다. 다양성 안에서 우리 사회의 화합과 일치와 한반도의 평화 정착, 무엇보다도 이런 시기에 가장 고통받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의 사랑과 지혜를 모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도 여러분과 이 여정에 동행하면서 경청과 식별의 은총을 청하고 여러분을 축복하겠습니다. 부당한 여러분의 주교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친애하는 춘천교구 하느님 백성을 지켜 주시고 축복하소서!

2021년 11월 28일 대림 제1주일
주님 안에 일치하는
+ 춘천주교 김주영 시몬

 

 

  

[군종교구]

“성체성사로 거듭나는 삶”

 

 

사랑하는 군종사제, 수도자, 교구민 여러분에게 주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인류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고, 아직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 일로에 있던 2020년 3월 28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성 베드로 광장에 홀로 서시어 “우리를 돌풍의 회오리에 남겨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하시며, 성체강복을 하셨던 장면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이 생을 마감해야 했고, 이들을 돌보는 의료 봉사자들의 헌신은 희생적이었습니다. 방역지침 준수를 위해 생업에 제한을 받았던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피해 역시 한계에 와닿아 있습니다.
우리도 미사 전례를 몇 번이나 멈추어야 했습니다. 현재는 제한된 신자들만 미사 참례를 합니다. 과거의 일상으로 언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순간에 붕괴된 우리의 신앙생활이 쉽게 복구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그러나 이대로 멈춰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주신 성체성사의 생명과 희망이라는 커다란 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뒤에 부활이라는 영광을 맞을 수 있었듯이, 코로나19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서 곧 광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 더 간절히 매달리고 서로 격려하며 이 시기를 지내야 할 것입니다.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의 시기에 가톨릭평화방송 혹은 본당에서 준비한 미사 영상을 보며, 신령성체(神領聖體)를 하거나,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식 영성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미사 참례와 영성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의 신앙생활과 전례 참여도 다소 느슨해졌습니다. 다시금 우리 신앙의 자세를, 특히 성체께 대한 신심을 새롭게 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과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한 번의 미사 참례를 위해 그야말로 목숨까지 내놓는 각오로 성체성사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분들은 왜 그렇게까지 ‘성체성사’에 모든 것을 걸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신 성체 안에 생명과 희망이 온통 담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56-58)

코로나19로 기진한 우리가 다시금 향할 곳은 오로지 ‘성체’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생명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사제들에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예수님께서는 친히 당신 곁에 두셨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며 사랑의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감사의 기도로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성찬례를 계속 실행할 직무를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는 사제만이 행하는 엄청난 신적인 일입니다. 사제 외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거룩한 성사 집행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 끝날까지 이어져야 하는 주님의 명령이 기도 합니다.

“사제는 기도와 경배에 전념하며,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며, 다른 성사들을 집전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그 밖의 교역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거룩한 삶에서 사람들을 진보시킨다.”(사제생활교령 2항)

성체가 축성되는 미사 봉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성찬례는 분명히 모든 복음화의 원천이며 정점”(사제생활교령 5항)입니다. 장병들 혹은 군 가족들이 참석하지 못할지라도 매일 미사 봉헌을 성실히 해주시기를 당부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제52차 세계성체대회 폐막 미사에서, “주님을 더욱 닮으려면 성체 앞에서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사제 스스로가 먼저 성체 앞에 오래 머물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성체 공경의 모습은 신자들에게 좋은 표양과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사제 여러분! 힘닿는 대로 성체 신심을 강조하고, 성체가 우리의 희망임을 알려 주도록 하십시오.

사랑하는 장병들에게...

종교를 선택한 사람들의 수효가 점점 줄어드는 세태입니다. 군대 내에도 절반 이상의 인원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종교 생활이 감각적으로 그리 흥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믿음입니다. 타 종교에 비해 전례가 어렵고, 분위기가 장엄하여 부담스럽게 느끼는 장병들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성체성사’의 신비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고 몸의 건강 유지를 위해 음식물 섭취가 필요하듯, 영혼의 양식인 예수님의 성체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생명의 양식인 내 살을 먹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라고 불평하며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에 비하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성체를 정성껏 모시는 여러분들은 참 대단합니다.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인생의 무게가 느껴질 때 혹은 군 생활이 버거워질 때, 그리고 기쁨의 감사를 드려야 할 때 꼭 성체 안의 예수님께 다가가십시오.

군종 교구민 여러분께...

성당에서 사제가 혼자 미사를 봉헌하도록 버려두지 마십시오. 젊은 병사들은 여러가지 제약으로 자유로이 성당에 나올 수 없습니다. 이들을 대신하여 평일미사에 자주 참례하시어 코로나19 극복과 군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성경은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빵을 떼어 나누었다.”(사도 2,46)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달려가 매달려야 하는 분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코로나19의 시절에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믿음의 성숙을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텅 빈 성당에 들어가 감실 앞에 머무르며 성체의 예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십시오. 개인의 사정과 가족의 소망, 군대와 국가를 위해 그리고 코로나19로 고통 중에 있는 세상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가장 커다란 사랑의 실천입니다.

“나의 노래로 그분을 찬송하리라.”(시편 28,7) 말씀과 성찬례에 충실하면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고, 은총을 충만히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루카 5,36)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힘들었던 2021년을 떨쳐 보내고 “새로운 노래를”(시편 96,1) 부릅시다. ‘성체 안에 하나 되어’ 그분을 찬송하는 2022년으로 힘차게 나아가도록 합시다.
감실 앞에 앉아 여러분 모두와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실천 사항

1. 주일과 의무대축일에 꼭 미사 참례를 합시다.
2. 최대한 자주 평일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를 합시다.
3. 준비된 상태(공복재, 고해성사)에서 영성체를 합시다.
4. 성체신심미사와 성시간(혹은 성체강복)에 참여합시다.
5. 개인 혹은 가족 단위로 자주 ‘성체조배’를 합시다.
6. 성체의 정신인 ‘나눔’을 실천하는 자선에 적극 동참합시다.

2021년 대림 제1주일에
천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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