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6일 (화)
(녹)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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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전국 교구 교구장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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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21-12-24 ㅣ No.2486

2021년 전국 교구 교구장 성탄 메시지

 

서울대교구

광주대교구

대구대교구

대전교구

마산교구

부산교구

수원교구

안동교구

원주교구

의정부교구

인천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청주교구

춘천교구

군종교구

 

 

 

 

[서울대교구]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요한 1,14)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수도자 여러분, 그리고 형제 사제 여러분,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북한의 형제자매들, 온 세상에서 구원의 은총을 청하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 성탄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성탄은 하느님이 죄로 물든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거룩한 탄생입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자 인간 본성을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降生)은 그리스도교 최고의 신비이며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소통 방법입니다. 이 강생의 신비를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5-8)

  작년부터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히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곤궁에 처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코로나 팬데믹은 온 세상의 모든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종교도 그 예외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보시고 시노드를 교회의 현안 과제로 주셨다고 생각됩니다. 교황님께서 전세계 모든 교구에 요청하신 시노드는 단순히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시노드의 시작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하느님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공동의 여정 안에서, 지금 이 시대에 울리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가 친교 안에서 모두가 주인공으로 참여하여, 서로 경청하고 함께 사랑의 나눔을 체험하면서 교회의 본질인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초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번의 시노드는 예전과는 다르게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 모색하고 함께 경청하며 살아가는 ‘하느님 백성의 시노드’로 초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소통하며 서로 경청하면서, 교회가 새롭게 변화해야 할 몫이 있다면 그 부분이 무엇인지를 모두와 함께 고민하고 찾아 나아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을 중심으로 제자들의 공동체가 함께 문제를 찾고 경청하며 함께 성령의 뜻에 귀 기울이며 식별의 결실에 도달하였습니다.(사도 6장) 이런 교회의 전통에 발맞춰 “하느님 백성이 함께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는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시노달리타스’(시노드정신)는 교회의 매우 중요한 친교의 영성과 전통에 속하며, 이 여정에는 경청이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친교와 경청을 통해 우리들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며 활동하시는 성령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노드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이번 시노드의 방향은 하느님 백성 구성원 각자가 하느님 앞에 신원의식(정체성)을 짚어보며, 성령의 인도 아래 서로 경청하고 존중함으로써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전망을 함께 찾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의 삶에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초대교회 신자들이 그러했듯,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은 말에 앞서 먼저 하느님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둘째,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질이라고 하는 세상적인 가치에 우선권을 두고 거기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 앞에 바로 세워야 합니다. 참사랑이신 하느님 앞에 대면하면서, 참 행복이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 사랑 안에 있음을 새기고, 우리의 가치기준을 하느님 앞에 바로 세워야 합니다. 세 번째, 참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변화시킨 그 사랑을 이웃 안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내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가난한 이들은 교회의 보물이다.” 하셨듯이, 우리 이웃의 가난과 불편을 함께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애덕 실천이 복음화의 중요한 한 모습입니다.

  오늘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기억합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성탄이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의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다시금 이뤄지는 사건이 되게 합니다. 나아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 자신이 그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이웃과 사회에 그리스도를 말과 행실로써 증거하며 참되게 주님 강생의 신비를 전해야 합니다.
  먼저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우리가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묵상하며, 시대의 요청 안에서 우리의 소명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복음을 증언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저희를 특별히 보호해주시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살고 영원한 구원에 이르도록 전구해주소서.
  주님 성탄의 은총과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고 또한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광주대교구]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루카 2,10)

 

 

  세상을 비추는 참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며, 이 빛이 모든 사람 속에서 기쁨과 희망으로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1.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코로나19라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심연이 여전히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삶을 암울하게 뒤덮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쳐가고 있지만, 특히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연로하신 분들이 더욱 곤란한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이처럼 지친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이 어느 때보다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연약한 아기 예수님의 모습으로 하느님께서 친히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우리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운명 속으로 들어오시어, 우리의 운명과 함께하시고, 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 2,10)인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의 기쁨과 희망이 바로 짙은 어둠 속에서 솟아나는 샛별과 같은 것임을, 좌절과 절망이 가득한 가운데서 발견한 희망, 죽음의 길목에서 되찾은 생명과도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2.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찢긴 마음을 싸매 주셨듯이...

  우리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시는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의 궁핍을 덜어 주도록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합니다’(교회헌장, 8항 참조). 그렇습니다. 이 길이 바로 우리가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길이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한껏 기뻐하고, 겸손하게 경배하는 길입니다.

3. 세상 속 ‘길 위의 공동체’를 꿈꾸며...

  코로나19는 비록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가꿔온 일상의 모습을 새롭게 비춰주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쇄신되어 공동체성을 회복하도록 재촉하는 징표이고 계기입니다.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신 예수님께서는 길 위에서 사람들과 만나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요한 14,6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길 위에서 이루셨고, 세상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마태 10,1-15 참조). 예수님께서는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고쳐주시고(마태 4,23-25 참조),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는 인격적인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마태 9,9-13 참조).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길 위에서 낯선 이방인과 만나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고(루카 4장 참조), 공동체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배척받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다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마르 5,1-20 참조).
  예수님께서 이루셨던 공동체는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모든 경계와 장벽을 허무는 것이었고, 혈연과 민족과 종교의 차이마저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 곁에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소와 이방인을 상징하는 말이 등장하는 모습은 바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루신 공동체는 어떠한 인간적인 차별도 배제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 존중함으로써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였습니다.

4. 지친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는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우리가 가꿔야 할 공동체는 바로 ‘하느님 나라’를 지향합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세상 사람들 누구나 기꺼이 환대하는 공동체, 어려운 이웃과 연대하는 공동체를 이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위한 ‘백신 나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세상에 열린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의 일상생활에 뛰어들어 그들과 거리를 좁히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을 낮추며, 인간의 삶을 끌어안고, 다른 이들 안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어루만집니다”(복음의 기쁨, 24항).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는 세상 속에서 살아있고 생동하는 공동체를 이루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웃에 대한 존중과 환대, 배려와 연대,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공감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있는 공동체를 이룹시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요한 1,14 참조) 하느님의 육화를 경배하고 경축하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 가운데 탄생하심을 축하합니다!

2021년 12월 25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대구대교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춥고 어두운 세상에 따스하고 밝은 빛으로 오신 구세주를 영접하며 이 기쁨을 교구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나셨지만, 교회는 매년 전례력으로 성탄을 기념하며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성탄의 참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성탄이 다가오면 설렙니다. 경제 사정이 힘들더라도 집 안에 작은 장식이라도 달아 성탄 분위기를 내고, 성탄 카드와 선물을 준비합니다. 또한 성당이나 모임에서는 성탄 행사를 준비하며 바쁘게 보냅니다. 하지만 외적인 준비에는 분주하면서도 정작 내적인 준비에는 소홀하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성탄의 원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축제로 즐기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누구의 탄생일인지는 모르지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요. 신앙이 없는 이들도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흥청거립니다. 예수님이 사라진 성탄절이 되지 않도록 외적인 행사에만 치중하지 말고 구세주께서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강생(降生)의 신비를 묵상하며 성탄절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구세주께서 세상에 오신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나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구세주 탄생의 의미를 우리는 거듭 묵상해야 합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려고만 합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라도 높아지려고 합니다. 내가 높아지는 만큼 다른 사람이 내 밑에 깔려 낮아진다는 것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올라가지만 마냥 높아지는 것이 우리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주지는 못합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낮춤으로써 오히려 높아지는 하늘나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교회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앞에서 국가는 국경을 봉쇄하고,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경제 논리에 의해 선진국들은 백신을 선점하고 가난한 나라의 도움의 손길을 외면합니다. 개인들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소통하려는 마음도 닫은 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이로 인한 경제 불황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에게 더 큰 위기로 다가옵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가난하고 독재의 폭압 아래에 있는 나라들과 거기서 탈출한 난민들이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 보면, 경제적 약자와 노인, 병자, 장애인 같은 이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스크로 입과 코는 가려도, 어려운 이웃에게 향하는 따뜻한 시선과 선한 마음까지 가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 10월 17일, 세계 모든 교구에서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의 개막미사를 거행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현재가 교회와 세계 모두에 있어서 결단의 시기라고 말씀하십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은 코로나19의 유행이 분쟁과 기후 변화, 차별, 폭력, 박해 같은 불평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고 지적합니다. 교황께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세계주교시노드를 개최하여, 우리가 어떻게 ‘함께 가는 여정’을 걸을 수 있을지 하느님 말씀과 형제자매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주제 아래, 3년 동안 ‘경청, 식별, 협의’라는 단계를 따라 세계 교회의 모든 평신도, 사제, 선교사, 수도자, 주교, 추기경들은 각자의 교회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과 요청에 따라 시노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구는 10년간의 장기 사목 계획을 수립했고, 두 번째 해를 맞이했습니다. 작년에 저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라는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2년마다 하나씩 실천하며 살 것을 제안했습니다. 새해에는 ‘하느님 말씀을 따라’라는 주제로 살아가는 둘째 해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고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바로 우리에게 오신 말씀,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뿌리내린 말씀의 씨앗을 잘 싹 틔워, 어떤 새도 쉬어 갈 수 있는 큰 나무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힘으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갈 것입니다. 결국 성탄을 기뻐한다는 것은, 우리 가운데 오신 말씀을 잘 받아들여서 그 말씀의 힘으로 성장하여,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기쁘게 한 해를 살아갑시다.

다시 한번,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드리며, 말씀의 힘으로 이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 내어 희망과 기쁨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합시다.

2021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타대오) 대주교

 

 

 

[마산교구]

말씀이 돌파하셨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의 성탄을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해마다 성탄을 준비했지만, 이처럼 어둡고 희망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절망의 대림절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의 맹위 앞에 어쩔 줄 몰라 불안합니다. 마치 2700여년전 강력한 아시리아의 침공 앞에 부들부들 떨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에 예언자 이사야의 입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터져 나옵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 7,9)

정치적인 꼼수와 인간의 술수에서 의지처를 찾는 백성들에게 보라 소리칩니다.
“자 보라,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너희가 의지할 모든 것을 …… 없애버리시리라.”(이사 3,1)
“그런 다음 나는 풋내기들을 그들의 제후로 세우고 철부지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리라. 백성들은 서로가 서로를, 저마다 제 이웃을 괴롭히고 젊은이가 노인에게, 천민이 귀인에게 대들리라.”(3,4-5)
“그들의 얼굴 표정이 자기들의 죄를 증언하고 그들은 소돔처럼 자기들의 죄를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그들은 불행하리라!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였다.”(이사 3,9)

그러나 그날이 오면
“보라, 임금이 정의로 통치하고 제후들이 공정으로 다스리리라.”(이사 32,1)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를 더 이상 고귀한 이라 부르지 않고 간교한 자를 더 이상 존귀한 이라 말하지 않으리라.”(이사 32,5)

그리하여
“마침내 하늘에서 영이 우리 위에 쏟아져 내려 …… 광야에 공정이 자리 잡고 과수원에 정의가 머무르리라.”(이사 32,15-16)
“보라 동정녀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의지가지없이 엎드려 숨만 쉬어 온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크고 더 기쁜 말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 옛날 이스라엘이 절망 속에서 주님을 찾았듯이 오늘 우리는 코로나 절망 속에서 주님을 뵙고 이렇게 기뻐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 평화”

2021년 성탄절에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

 

 

 

 

[부산교구]

기쁘다 구주오셨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천주교 부산교구장
손삼석 요셉 주교

 

 

 

[수원교구]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16)

 

 

† 소통과 참여로 쇄신하는 수원교구!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의 은총이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성탄의 신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께서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요한 1,14 참조)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습니다”(요한 1,1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7 참조).

코로나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은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시련입니다.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로 머지않아 이 시련을 극복하리라 희망하지만, 이미 세상은 코로나와 함께 사는 방향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와 국민의 노력으로 다분히 위축되었던 우리의 일상이 조금씩 활력을 되찾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다시 활력을 되찾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코로나 감염병의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점진적으로 신앙생활의 활력을 도모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염병의 대유행과 같은 전 세계적 비극은 우리가 모두 한배를 탄 인류 공동체라는 인식을 강렬하게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개인과 집단, 국가와 국가 사이에 차별과 불평등의 장벽이 얼마나 높고 견고하게 존재하는지 여실히 깨닫게 했습니다. 서로를 불신하고 배척하기 쉬운 분위기 가운데서도 단합과 일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 상황은, 지금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성찰함으로써 창조주의 선하심과 인류 공동선에 대한 희망과 믿음 안에 머물도록 모든 계층의 공동체와 개인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교회는 모든 계층과 개인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존중과 경청, 봉사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세계주교시노드를 소집하시며 지난 10월 장엄하게 그 개막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번 세계주교시노드 주제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입니다. 시노드라는 단어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생활방식과 활동 방식이 지니는 고유한 특성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함께 걸어가는 데에서, 회중의 모임을 통하여,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에서 자신이 친교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실현합니다(「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6항 참조).

교회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지난날 교회가 짊어지고 온 성직자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의 무게를 숙고해야 합니다. 또한 부지불식간에 교회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세속화된 사고방식, 종교 근본주의, 온갖 문화적·구조적 폭력 등이 어떻게 교회 안팎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구성원 모두가 ‘함께 걷는’ 경청, 대화, 공동 식별의 과정들을 시작해야 합니다. 교회 구성원 모두는 저마다 이러한 단계들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걷기’ 위하여 성령의 가르침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겨, 참다운 시노드 정신을 따르는 사고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용감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변화의 과정들을 시작하여야 합니다(2021~2023 세계주교시노드 「예비문서」, 6항~9항 참조).

교구는 이러한 시노드 정신의 실현을 위해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참여하여 기도하고, 경청하며 함께 식별하는 다양한 장을 마련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도 교구와 함께 걸으며 성령의 이끄심에 귀 기울여 말씀을 듣고, 대화와 나눔의 장에 함께 하며,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교회 구성원으로서 친교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실현하는 데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빛으로 오신 주님께서 우리를 재촉하십니다. 은총에 은총을 더해 주시며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함께 걷는 길에 들어서야 합니다. 온갖 시련으로 아파하는 지구와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과 사랑, 평화와 선의 복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모든 이와 함께 연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희망의 빛을 향해 나아갑시다.

“평화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1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안동교구]

“임마누엘 예수님, 우리에게 오소서! 어서 오소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성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모든 피조물에까지 기쁜 소식이 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가 먼저 이러한 신앙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고 세상과 나눈다면 세상은 더욱 따뜻하고 희망이 넘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 함께 하시고자 친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요한 1,14 참조) 세상과 인간을 살리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신 깊고 넓고 따뜻한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우리는 다시금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살겠다는 신앙인의 소명을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 우리가 일에 지쳐 힘들어할 때, 온갖 생활고로 낙심하고 용기를 잃을 때, 영적으로 배고프고 목말라 할 때 하느님께서는 몸소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고 빛이 되어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어 세상 한가운데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성탄절 기쁨이 될 것입니다.

  성탄의 이러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저는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특별히 ‘임마누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 우리에게 오소서! 어서 오소서!” 임마누엘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와 늘 함께해주시고 우리 모두를 구원해주시기를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로나19 감염병이나 기후 위기와 같은 세계적인 대재앙을 겪으면서, 하느님 존재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말입니다.

  마태오 복음을 보면,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에게 주어진 이름이 두 가지, 곧 ‘예수’라는 이름과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먼저 그 말씀을 함께 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1,21)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1,23)

  이 말씀은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이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하면서 요셉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이 두 가지로 나오는데, 하나는 ‘예수’라는 이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의미를 하나씩 보면,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시다.’는 뜻이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임마누엘 예수님’이라고 부르며 기도할 때 그 호칭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임마누엘 예수님, 우리에게 오소서! 어서 오소서!” 이 호칭 기도의 의미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혹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대로라면 ‘하느님께서 언제나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코로나19 감염병이나 기후 위기와 같은 세계적인 대재앙 한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하느님의 존재가 바로 이분이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임마누엘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면서 구체적으로 우리 각자가 청하고 기도하고 싶은 내용을 각자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말씀드려 봅시다. “임마누엘 예수님, 우리에게 오소서! 어서 오소서!” (잠시 침묵하는 시간을 함께 가집니다!)

천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원주교구]

2021 교구장 성탄 메시지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교구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교우 여러분!
올해는 작년에 이어 코로나바이러스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학교와 직장은 물론 성당도 마음 놓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생계가 힘들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죽음으로 이별한 가족들도 많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느 해보다 희망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은 메시아의 탄생에 희망을 가졌습니다.
마침내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선포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늘의 천사와 성인들처럼 우리들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의 탄생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비춥니다. 
아직 그 꿈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애와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비추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끄시는 그리스도 나라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야말로 어떠한 절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위대한 참된 희망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낼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희망으로부터 떼어낼 수 있습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칼입니까? 코로나 바이러스입니까?
현세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빛, 우리의 희망, 우리의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축일로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평화와 건강을 기도합니다.

2021년 12월 성탄절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

 

 

 

 

[의정부교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구세주를 찬미하며, 성탄의 기쁨을 형제자매들에게 전합니다.
금년 한 해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주님을 신뢰하고 살아오신 여러분께 예수님의 따뜻한 위로가 내리기를 빕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치고 불안하게 살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각별한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은 기대와 실의,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백신의 개발과 보급이라는 희망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최근에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러나 답답하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위험을 무릅쓴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이 있었고, 비록 드러나지 않지만 방역지침을 철저히 따르며 서로를 배려한 대다수의 시민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인내를 요구하는 혼란의 시기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 희망과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2,10)입니다.

배려와 사랑을 나누는 연대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름길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이야기에서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루카 2,8)이었습니다. 목자는 당시 가난하고 힘든 일을 하는 변방의 사람,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든 처지에 놓인 변방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백신접종이 잘 이뤄져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직도 가난한 나라에서는 전체 접종률이 10%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선진국과 가난한 나라를 가리지 않고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피해는 전 세계로 전파되어 나갑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찬미받으소서」 51항 참조)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으며, 형제애로 연대하여 서로 돕지 않으면 인류가 매우 치명적인 위험 속에서 살게 될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변방의 사람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들과 백신을 나누는 일은 아기 예수님께 드리는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백신 나눔 운동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집시다. 전염병에 확진되어 고통을 겪는 이들과 강화된 방역조치로 인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어 괴로움에 한숨 짓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오직 나만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다.’는 코로나19의 교훈을 기억하면서 이웃을 향한 마음을더욱 활짝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은이를 위해 축복을 빌며 환대하는 공동체
특별히 이번 성탄절에는 힘든 시대를 살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마태 8,25) 하고 외치는 젊 은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을 빌어주자고 초대하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 정치 현장과 언론에서는 젊은이들의 어려운 현실을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말만 무성한 채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이들을 걱정하고 희망을 주는 대책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은 교회의 미래인데, 그들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닥친 암담한 현실과 희망 없는 미래가 신앙과 교회마저 멀어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위로하고 축복을 빌어주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공동체도 젊은이들이 교회에 나올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며 그들을 환대하도록 합시다.
지난 10월 15일, 우리 교구는 일산 지역에 청년센터 <에피파니아>를 마련하였습니다. 청년들을 찾아가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에피파니아>에 많은 호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로 생긴 센터가 젊은이를 위한 활기찬 공간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청소년과 청년에 대한 노력을 성찰하게 됩니다. 청소년 사목이 저절로 이뤄지던 시절의 기억만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게을리했기에, 젊은이들이 교회에 무관심하고 떠나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나자렛 성가정은 아버지인 요셉과 어머니인 마리아로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인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그곳은 성가정일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 청소년, 청년이 없는 본당은 균형잡힌 공동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포기하면 안 되겠습니다. 젊은이들을 환대하며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본당 공동체로 거듭나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의정부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내일부터는 가정 성화 주간이 시작됩니다. 저도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기도하는 가정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족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면, 새로운 2022년을 더욱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내년 6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에 맞는 가정 성화 주간이기에 그 은총은 더욱 특별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성탄의 기쁨과 축복이 모든 가정에 내리기를 기도드립니다.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2021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

 

 

 

 

[인천교구]

[2021년 성탄 메시지]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구세주 탄생의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 탄생의 빛이 온 누리에 비추기를 기원합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 9,1)

  이는 주님의 탄생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고, 구원의 빛을 바라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모든 삶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라고 주님 탄생의 기쁨을 표현합니다. 사실 성탄은 하느님 사랑의 신비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신 나머지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인간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신비를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신 그 사랑 앞에 그저 감사를 드릴 뿐이며, 그 사랑의 은총을 빛으로 받아 그 빛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사랑의 신비를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점차 사랑의 신비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연한 상업주의는 이 사랑의 의미를 재화 벌이의 도구로 사용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숭고한 하느님의 사랑을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이야기쯤으로 교묘히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그래서 성탄을 맞이하고 지내는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의 고귀함을 생각하지 않고,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성탄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변해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게 됩니다.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계산된 사고방식으로 인간의 사랑만을 말하려고 합니다. 조건 없이 내어주고, 희생하는 사랑은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그런 사랑의 가능성마저도 저버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는 우리 생각에 갇혀 각자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점차 홀로 외로운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속에 스며들고 있는 관계성 단절의 모습들 그리고 고독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애타게 주님이 태어날 곳을 찾습니다. 이들 두고 성경은,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 곳이 없었다.’(루카 2,7)고 우리에게 전합니다. 하느님이 들어가시기를 바라지만, 이렇게 닫혀있는 곳은 세상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여관은 시대를 넘어 모든 장소에 모든 시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여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 보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한번 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기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베들레헴의 여관의 문들 두드리듯, 우리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하지만 아기들이 태어날 자리가 없다며, 아기들이 태어나도 책임지기 힘들다며, 아기들에게 문을 닫아버립니다. 생명을 거부하는 이 시대가 굳게 닫혀진 베들레헴의 여관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한 모두가 자신의 생각 안에 갇혀 하느님을 맞아드리지 않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거부합니다.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드리지 않았다.”(요한 1,11)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굳게 닫힌 여관과 다르게 마구간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마구간의 구유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였습니다. 구유는 무엇으로 꽉 찬 곳이 아니라,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곳이었습니다. 이 비천하고 가난한 마구간과 구유는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자신을 비움으로 모든 이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남에게 먹을 것을 담아 주는 곳이 바로 마구간과 구유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주고,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으로, 고집으로, 아집으로 꽉 찬 우리 마음을 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서로 받아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는 성탄의 신비는 바로 이렇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나를 가난하게(Anawim) 해야 성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의 것을 비우고 하느님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 고독과 외로움의 어둠이 아닌, 생명의 빛을 느끼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요한 1,14)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비움으로 더욱 채워지고, 내어줌으로 더욱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신비이고, 이것이 성탄의 또 다른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이런 어려움을 우리 모두가 이겨왔기에, 다가올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그러기에 이번 성탄을 맞이하며 지난 2년간 코로나-19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닫아야만 했던 서로의 문이 열리기를 희망해 봅니다. 마음으로 멀어졌던 서로의 관계를 다시금 회복하고, 서로를 보듬고, 서로의 생각을 나눔으로써 더 풍요로운 공동체와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탄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인천 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전주교구]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가난의 신비
(2코린 8,9 참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온 누리에 가득 내리기를 빕니다.

천사는 구세주의 탄생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것이다”(루카 2,11-12). 지금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선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인간 본성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하느님이시며 온전한 사람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이며, 성탄의 신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느님이 연약하고 작은 아기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셨을까요? 무슨 까닭으로 하느님은 작은 아기로 곧 빈손으로 오셨을까요? 하느님이 당신 손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다른 무언가를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구세주 안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콜로 1,19)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진 셈입니다. 하느님의 충만한 생명마저 누릴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어둠을 밝히시는 빛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진리이시며,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생명의 빵이시며, 그분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요한 6,51 참조).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부활이며 생명이십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은 바로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한 1,11 참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갈망하는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도, 그분을 외면하고 거절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이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이 크게 지쳐 있고 심리적 불안과 불신과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더 변두리에 내몰려 생활고에 크게 시달리고 생존의 위기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세주의 탄생은 우리를 크게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티토 2,11)이시고, 또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손수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코로나 사태의 짙은 어둠 속에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께 마음을 열라고 당부하십니다. 힘들 때일수록 하느님께 눈길을 돌리며 그분께 희망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온갖 환난에 억눌리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거센 세파가 몰아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7,25-26 참조). 참된 신앙인의 삶은 반석 자체이신 하느님 위에 세워졌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힘껏 붙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고 실제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눈을 돌리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 가운데 한 사람, 그것도 가난하고 연약한 아기가 되시어 초라한 구유에 누워 계십니다. 바로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 안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들을 돌보는 일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연약한 아기에게 도움이 필요하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사실 지금 코로나 사태의 상황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자기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기적인 자기 보호 본능에 따라 자신의 필요에만 더욱더 집착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을 불편하고 번거롭게 여기고 그들의 고통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결국, ‘나만의 세상’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혼자 구원받을 수 없으며 오로지 함께라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모든 형제들 32항). 그리고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이들을 향하는 행동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마음을 활짝 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돌보면, 무엇보다 우리의 삶이 피어나고 우리는 삶의 참다운 아름다움과 충만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형제애를 증진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주변에 고통에 짓눌린 이들,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입시다. 그들을 정성껏 돌보고 일으켜 세웁시다. 바로 이런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코로나 사태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다.”(2코린 8,9)는 성탄의 신비를 잊지 맙시다. 그리고 이 신비를 우리가 실천하여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성탄절과 새해가 되기를 빕니다.

2021년 성탄절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

 

 

 

 

[제주교구]

성탄의 신비: 하느님 사랑의 ‘대화’

 

 

  올해도 성탄이 찾아왔습니다. 먼저, 계속되는 코로나의 상황에도 여러분 모두에게 성탄이 주는 크나큰 사랑의 축복으로 인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성탄”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처럼 이벤트가 넘치는 휴일일 뿐인가요? 아니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특별하게 보내는 한 시즌일 뿐일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성탄이란, 『경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날 이후 하늘과 땅 사이에 경계가 무너지고, 가로막혔던 장벽은 허물어졌습니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그것도 나약하기 그지없는, 포대기에 싸인 아기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 아기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청하시는 “사랑의 대화” 자체이신 겁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의 절정을 알리고 있습니다.

  대화는 이 시대의 요청입니다. 대화를 더 쉽게 하도록 과학기술과 통신, 교통은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명의 도구들은 멀리 떨어진 세계 각국을 가까운 이웃으로 만들면서도, 정작 진정한 대화를 이르도록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화는 만남입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만 진실한 대화가 가능합니다. 이 만남을 위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고, 오늘 이 밤도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은총의 선물을 베풀어 주신다고 봅니다.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서로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 모두가 함께 향유하기 위해 서로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만나서 말할 수 있는 입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회중 안에서 활동하실 뿐 아니라 우리 각자 안에서도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올해 성탄, 주님께서도 우리 인간의 비천한 신세를 가엾이 여기시어 참된 자유와 평화의 선물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으로 진실하게 대화하자고 하십니다.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세상은 평화와 자유, 그리고 사랑의 결실을 얻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구세주의 성탄은 그 옛날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 그중에서도 조그마한 고을 베들레헴에서 일어났던 역사 속의 사건만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도 각자 오시고, 우리 삶의 자리인 가정에도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인 제주 사회에도 오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상황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닥친 엄중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위기는 각종 폭력과 재난 뿐 아니라 분열과 불신 등으로 얼룩진 세상의 혼란들로 커져만 가는 실정입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여러 개발에 따른 생태 환경적 부담들이 계속 가중되고, 그리하여 여기저기에서 울부짖는 자연의 피해를 보고 울부짖음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 안에서도 세대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의견 충돌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소통의 부재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미래의 제주를 걱정하는 일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여기에서 지금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성탄의 거룩함과 더불어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의 신비는 우리들에게 이 응답의 열쇠를 제공한다고 여겨집니다. 거룩한 만남은 은총의 사건입니다. 이는 사랑의 대화가 절정에 달한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환희의 순간이며 하늘이 스스로를 낮추어 그 숭고함으로 모두를 감싸는 섭리의 놀라움인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구원의 선물이 포대기에 싸인 아기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신비는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날카롭던 마음도 무디어 지고, 경계를 풀지 않던 완고함도 아기 예수님 앞에서는 사라지고 맙니다.

  성탄은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 줍니다. 만남이란, 우선 경탄과 존중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다음으로는 침묵과 기도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믿고, 참된 대화의 창을 열도록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열 가지 말을 듣고, 속으로 백 번을 생각한 후, 나의 말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겸손되이 낮추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탄의 신비는 우리 모두에게 신뢰와 존중, 그리고 지극한 겸손만이 사랑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사랑의 절정으로 나갈 수 있는지 가르쳐줍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성탄으로 여러분의 가정에 큰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2021년 성탄절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창우 비오 주교

 

 

 

[청주교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오늘은 예수 성탄 대축일입니다. 오늘 구세주 그리스도 탄생하셨습니다. 성탄을 축하드리며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신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 성탄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요한 1,14 참조). 요한복음서의 이 말씀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성탄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한복음서는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1,1)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이 구절은 구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첫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는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1,1)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하느님께서 세상 만물을 당신의 말씀으로 지으신 사실을 전합니다. 이처럼 말씀은 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세상 창조의 힘입니다. 말씀이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를 정하셨습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왜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셨을까요? 요한복음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라고 알려줍니다. 요한복음사가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고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천상의 영광을 버리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필리 2,7-8 참조). 그래서 우리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의 거룩한 모범을 배우고 따르게 하시어 그분을 믿는 모든 이가 구원을 받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459항 참조). 이처럼 성탄은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이 드러난 날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의 선포인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삶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하느님께서 이토록 극진히 사랑한 인간을 사랑하라는 촉구입니다. 최근 우리 주변에는 이 년여에 걸친 코로나감염증의 확산여파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눌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손과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금년 성탄이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새 날, 새 시작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천막은 구약 성경의 배경을 지닌 말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오시어 언제나 그들 가운데 머무르셨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있던 “만남의 천막”(레위 1,1)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험난한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모든 여정을 친히 함께 하셨습니다. 천막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 한가운데에 계시면서 그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구원해주시는 증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천막을 바라보며 역경을 이겨내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막을 바라볼 때마다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레위 9,23 참조).
  그런데 하느님께서 성탄으로 하느님 현존의 표지인 천막의 상징을 아득히 뛰어넘어 몸소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사람들을 찾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탄절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집으로, 우리 가정으로 오시어 우리 곁에,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십니다. 성탄으로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교회의 거룩한 성사들 안에서 또한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영과 진리로 충만하게 된 우리 가운데에 계십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감염증의 확산으로 두려움과 절망에 휩싸여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1-32).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은 우리의 위로와 희망의 원천입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을 쳐다보지 마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을 바라보시고 모든 것을 의탁한 가운데 두려움과 절망을 이겨내는 새 힘 얻으시기를 기원합니다.

  4. 성탄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 땅위에 사랑의 불을 점화한 날입니다. 성탄은 이 땅위에 타오른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불살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 일어나기를 촉구하는 날입니다. 또한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어 이 땅위에 희망의 빛을 밝혀준 날입니다. 성탄은 이 땅위에 빛나는 희망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온갖 역경과 시련 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촉구하는 날입니다. 성탄의 마음은 사랑이고, 성탄의 기적은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신자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춘천교구]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1,36)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는 요한 세례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던 안드레아는 예수님과 함께 머문 후, 자신의 형 베드로에게 돌아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요한 세례자와 안드레아 사도의 선포는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환희에 찬 외침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요한복음에 대한 강론’에서 “영신적인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형제적 사랑과 우정 그리고 참된 애정의 표시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눕시다.

  좋은 염원을 담아 나무 한 그루를 심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번 성탄에는 구원자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각자의 마음속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마음에 심어질 그 나무에 사랑과 나눔이 꽃피며 평화의 열매가 맺어지길 희망해 봅니다. 이렇게 맺어진 평화의 열매는 이웃들에게 나누어질 것입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분’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심은 나무가 말씀의 땅에서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좋은 농부에게 나쁜 땅이 있을 수 없고 좋은 사람에게 나쁜 환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위협적인 전염병의 확산과 위로를 나눌 수 없는 경직된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메시아를 만난 기쁨의 증인으로 또다시 서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에게서 오는 구원의 은총이 우리를 통해 이웃들에게 나누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실질적인 나눔과 구체적인 선행이 이웃들에게 성탄의 선물이 되어 한 아름씩 전해지길 희망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맞아 말씀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이 세상에 가득하길 빕니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시몬 주교

 

 

  

[군종교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탄절을 맞이하여, 먼저 국토방위에 수고하는 모든 장병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또한 군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군종사제와 수도자, 군인 가족 그리고 군종교구에 아낌없는 사랑과 후원을 보내시는 신자 여러분들께도 성탄의 은총을 전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성탄절 즈음이면 오래전에 병사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추운 겨울, 군 생활을 하며 성탄절을 맞이했던 느낌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사회와 가정, 특히 신학교 생활로부터 단절되었다는 고립감과 함께, 밖의 친구들은 얼마나 신나게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을까 하는 상상에 울적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더구나 제가 있던 부대에는 성당도, 군종신부님도 안 계셨기에 성탄 밤 미사 참례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지금 전후방 각지에서 임무 수행 중인 장병들도 당시 신학생이었던 저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근 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는 소위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 일종의 우울증, 공허감과 같은 정신적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들고 암울한 시절에 우리의 희망이신 구세주께서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탄생하십니다. 어둠 속에 ‘빛’으로 우리를 비추시고 기쁨과 생명을 주시려 오늘 이 밤, 믿는 이들 가운데 오셨습니다.

성탄: 육화(肉化)의 신비

예수님의 탄생 사건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신비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예수님의 또다른 이름인 ‘임마누엘’, 즉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라는 것에서도 육화의 신비가 잘 드러납니다. 보이지 않는 지고의 하느님께서 인간들 가운데 오시고, 그것도 가장 낮은 자리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하셨습니다. 황금마차를 타고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며 장엄하게 오실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비천한 곳에, 그것도 ‘작고 약한 자’의 모습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을까요?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랑의 신비’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전철에서 앞을 못 보는 형제님이 개신교 성가를 부르며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성가의 끝 소절 가사가 ‘ …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기 원합니다….’라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우리 인간을 벌레에 비유한 것에 기분이 상할지 모르지만, 하느님 앞에 인간의 처지는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 인간을 위해 하느님은 몸소 그 낮은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이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더욱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분의 탄생이 이스라엘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그리고 가장 누추한 마구간에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탄생의 소식은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집니다. 당시 목자들은 마을에서 떨어진 들판에서 살면서, 낮에는 풀을 먹이고 밤에는 맹수의 무리로부터 양 떼를 지키던 외로운 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교회가 왜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사목적 배려를 가져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이처럼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시며 그 사랑의 증표로 당신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감사’의 자세로 자신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모범을 우리는 성모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메시아를 잉태하리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전언에 마리아는 잠시 당황하며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곧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시며 믿음의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모찬가(마니피캇)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탄생하신 예수님은 이제 내 마음 안의 작은 마구간에서도 태어나길 원하십니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절이기에 혹 성탄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셨다면, 지금부터라도 내 마음 안에 구유를 준비하여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새해를 살아나가심이 어떠신지요? 마치 성모님께서 ‘믿음과 감사’ 안에 예수님을 잉태하고 탄생시키신 것처럼 말입니다.

내 마음속 구유에 성체를 모시는 삶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많이 쇠퇴하였습니다. 각종 종교행사들이 비대면으로 실시되면서 우리 신앙공동체의 모습은 주님 육화의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피상적이고 개인적인 모습으로 바뀐 면도 없지 않습니다.
이에 저는 우리 군종교구 공동체가 다가오는 2022년 한 해 동안 주님의 육화/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며, ‘믿음과 감사’의 생활로 다시금 발돋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성체성사’의 신비와 사랑으로 복귀하기를 당부드립니다. 예수님의 몸인 ‘성체’는 우리 신앙의 핵심이며 양보할 수 없는 최상의 영적 가치입니다. ‘성체성사’ 안에 예수님의 탄생과 복음 전파의 삶, 그리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성체성사’를 떼놓고서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마치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바쳤던 것처럼 우리도 새해부터는 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하고 정성껏 성체를 모실 것을 영적 예물로 약속드립시다. 그렇게 내 마음 안에 준비된 구유에 성체를 모시고 살아가겠노라고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님께 말씀드립시다.
아울러 전 인류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기세가 꺾이고, 대면 미사를 통해 성체를 공경하고 배령하는 새해가 되도록 성모님께도 전구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장병, 군 가족, 수도자, 사제 여러분!
캄캄한 방 안에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 어둠은 자취를 감추고 광명이 가득 차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모두에게 빛이 되고, 희망과 기쁨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 생명의 빛을 나만, 내 가족만 지닐 것이 아니라, 등경 위에 올려놓아 주위 모든 사람을 비추도록 합시다. 내 주위의 고통 중에 동료, 이웃의 사정을 살피고 함께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쌓인 시기와 미움, 그리고 냉소와 비관적 생각을 말끔히 씻어 버리고 자신과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는 새해가 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또한 예수님을 낳아주시고 성체성사와 일치하여 계신 어머니 마리아께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충만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사 전구를 청하도록 합시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며, 성탄의 축복과 평화가 여러분 개인과 각 가정에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주님 성탄 대축일
천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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