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25-06-22.....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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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다해) 창세기 14,18-20 1코린토 11,23-26 루카 9,11ㄴ-17 2025. 6. 22. 주제 :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을 나는 어떻게 받는가? 오늘은 인류구원이라는 일을 이루시려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공경하는 날,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와 성혈대축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몸을 가진 생명체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힘을 전달하는 물질을 우리는 '피'라고 부릅니다. 피는 몸에 있는 혈관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이 피가 몸에서 자기만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싶다고 여기고, 실제로 그렇게 산다면, 사람은 생명체라는 이름으로 살아서 움직이지 못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명체를 살아있게 하는 ‘피’는 몸의 이리 저리에 펼쳐진 혈관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사명으로 주신 일을 실천합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인류에게 양식으로 주시면서 구원자가 되셨고, 그 힘을 입은 우리는 세상에서 그분을 공경하며, 성체와 성혈이라는 표현으로 기억합니다. 성체와 성혈이 사람에게 구원의 힘이 된 일은 하느님의 뜻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오늘 복음을 읽은 시간에 들은 말씀은,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5000명이 넘는 사람이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배부르게도 먹고도 음식을 남겼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전설이나 놀라운 기적이라고 대하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일은 사실이 아니라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모든 것은 사람의 권리이고 자유이겠지만, 신앙의 힘으로 해석해야 올바른 일을 대하면서도 우리가 세상의 생각이나 세속의 생각대로만 대한다면 하느님께서 세상에 하신 일을 우리는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로 신앙이 전달하는 내용을, 우리가 세상의 기준으로 칼질하면 어떤 것이 본래의 의미대로 우리의 삶에 다가오겠습니까? 어쩌면 그렇게 하는 일은 세상의 일을 우리가 대하려는 자세에서도 드러날 것입니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이 넘게 모인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우리는 실제로 생각할까요? 루카복음이 전하는 대로 사람들의 현실에 그 놀라운 일이 똑같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 기적을 어떻게 이해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하면서, 배가 고플 때 자기 혼자서 잘 먹으려고 음식을 준비해서 갖고 왔는데, 예수님 때문에 처음에 준비한 생각과는 다르게, 준비한 음식을 모두 내놓아야 했고, 그래서 내가 먹을 음식의 분량이 줄어들었으며, 그 일과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배부르게 먹기는 했는데, 나 혼자만 배부르게 먹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배가 아픈 일이겠습니까?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여러 가지로 생각을 담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일은 신앙의 정신으로 대해야 합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을 세상의 기준으로 칼질하면, 그 누구의 삶에도 좋은 결과로 남지 않을 것입니다. 성체와 성혈을 대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에 따라 하느님의 일을 바르게 대하는 자세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이루신 성체성사에 관하여,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내용은 우리가 신앙의 정신으로 대하지 않으면 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내용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에는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이 실현될 것입니다. 물론, 받아들이든지 그렇게 하지 않든지 그 일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드러내는 자유입니다. 그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고 지금까지 2000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복음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광과 축복에 참여하였을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다는 사실을 대하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창세기의 말씀으로 들은 내용은 전설과 같은 이야기이지만, 하느님을 모시고서 아브람이 한 일은, 자기가 정성껏 드러낸 행동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본보기입니다. 아브람은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의 십일조(十一條)를 살렘의 왕, 멜키체덱 사제에게 바쳤습니다. 그러자, 그다음으로 아브람의 삶에 하느님의 축복이 도착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아브람이 멜키체덱에게 놀라운 일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아브람이 드러낸 정성에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멜키체덱을 통하여 도달한 것일까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찾아오신 일을 기억하는, 성체와 성혈의 대축일에 우리의 삶에도 놀라운 일이 실현되도록 하느님의 사랑에 충실하게 다가서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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