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ㅣ청소년 주일학교 청소년 관련 통합자료실 입니다.
|
세계청년대회 개최지를 가다: 폴란드 WYD (2) 하느님 자비로 물든 교황과 청년들 |
|---|
|
[세계청년대회 개최지를 가다] 폴란드 WYD (2) 하느님 자비로 물든 교황과 청년들 아우슈비츠 비극 너머 화해와 희망으로 나아간 폴란드 WYD "소파에서 일어나시비시오"... 안락함 떨치고 '자비의 길' 나선 청년들
1941년 7월 말, 14호 막사에서 한 명의 수용자가 탈주했다. 간수는 그를 잡아들이는 대신, 연대 책임을 물어 막사에 있는 수용자 10명에게 아사(餓死)형을 내렸다. 그런데 한 명이 처절하게 울부짖자 누군가 조용히 간수 앞으로 걸어나갔다. 죄수 번호 ‘16670’. 이름 없는 ‘수감자’였다. 그는 말했다.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간수는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가 답했다. “저는 가톨릭 사제입니다.”
그의 이름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했던 시절, 홀로코스트 참상이 벌어졌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유다인만 있지 않았다. 소련군 포로와 집시·동성애자·나치에 저항한 이들까지, 수많은 ‘생명’이 이곳에서 지워졌다. 폴란드인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는 유다인을 도왔다는 이유로 나치에게 체포돼 이곳에 갇혔다.
꼭 75년이 흐른 뒤인 2016년 7월 29일. 성 콜베 신부가 잔혹히 처형당한 차디찬 아우슈비츠 지하 감금시설에 다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본대회 중 성 콜베 신부를 만나러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수행원도 뒤로 물린 채 지하 감옥에 홀로 들어선 교황은 침묵 속에 한참이나 기도했다. 그 엄숙함에 누구도 작은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지금의 교황이 아비규환 속에 이웃을 위해 숨을 거뒀던 성인과 침묵 속에 대화하는 듯했다. WYD 시기 수많은 젊은이도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교황은 지금 우리가 위대한 성인,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선조의 삶을 깊이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생생히 보여줬다. 자리에서 일어선 교황은 단 두 마디만 남겼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이토록 잔혹함을 용서하소서.”
- 1945년 1월에 촬영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생존자들의 사진. OSV
교황의 침묵, 청년들을 움직이다
교황이 남긴 두 문장은 수백만 명의 젊은이를 울렸다. 그 수는 300만 명에 이른다. 그해 7월 26~31일 열린 2016 크라쿠프 WYD는 역대 최대 규모의 순례자가 참가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여정에서 역대 WYD 개최지를 찾아 그 열매를 조명하는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과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공동기획 ‘개최지를 가다’. 폴란드 교회 두 번째 편은 ‘하느님 자비로 물든 교황과 청년들’이다.
WYD에는 젊은이들의 신앙 열기도 있지만, 아픔의 나눔도 있다. 집단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12명을 맞잡은 교황의 손, 침묵의 기도, 묵념. 교황이 크라쿠프 WYD에서 전 세계 젊은이, 특히 폴란드 교회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어떠한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픔 앞에 함께 서는 것, 교회가 고통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달라졌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한 600만 명 희생자 가운데 대부분은 유다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장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유다인 공동체 안에서도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다.
크라쿠프 WYD를 계기로 바티칸 전문 기자가 된 월간지 ‘가장 중요한 모든 것(Wszystko Co Najwaniejsze)’의 미할 클로소프스키(35) 부편집장은 이 문구를 조금은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되, 자비로우십시오”라고. 당시 WYD 자원 봉사자로도 활동했던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파견미사 후 교황과 만났다. 역대 교황들은 WYD가 끝나면, 헌신했던 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을 따로 가져왔다.
교황은 당시 봉사자들에게 “역사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대 간의 연결, 즉 기억을 전달해 역사를 세대 간 전달하는 방식 역시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젊은이들에게 아픔의 역사를 잊지 않고 반추해 함께 나아가야 함을 거듭 요청한 것이다.
교황의 당부를 마음에 새긴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cpbc와의 인터뷰에서 “선조들이 경험한 역사와 기억도 중요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위에 하느님 자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라며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배우되, 주님의 자비로 미래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앞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또한 폴란드인과 독일인으로서 상징적인 장소인 아우슈비츠를 찾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은 전 세계인에게 더 큰 울림을 선사했다. 모든 젊은이에게 어떠한 고통 속에도 화해와 용서, 자비의 마음의 중요성을 심어준 것이다.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이웃을 대신해 자기 목숨을 바친 성 콜베 신부의 희생은 하느님의 자비를 그대로 보여줬고, 그보다 더 자비로운 모습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그것도 세계 젊은이들이 모인 WYD 도중에 죽음의 수용소 한복판에서 우리를 위해 슬퍼한 사실은 폴란드 젊은이와 전 세계인에게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폴란드에는 여전히 나치 독일의 피해자들이 곳곳에 살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도 나치 정권에 가담한 이들이 살아있다. 그러나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오늘날 폴란드와 독일은 국가 간 관계를 잘 다지며 지내고 있다”면서 “우리는 폴란드와 독일의 수도인 바르샤바와 베를린을 연결하는 고속열차를 만들고, 이것이 경제적 엔진이 되어 유럽연합에 동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역사 위에 세우되, 자비로워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었다.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자비로 인해 우리는 상처를 넘어 더욱 위대하고 좋은 가치, 희망을 건설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며 “한편으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상처를 딛고 나아가려는 폴란드인들의 현실을 설명했다.
클로소프스키 부편집장은 미국 콜로라도에서 고고학자로 일하다 크라쿠프 WYD때 커뮤니케이션부 봉사자로 참여했다. 교황과의 만남을 계기로 2019 파나마 WYD, 2023 리스본 WYD에도 봉사자로 참여한 뒤 가톨릭 언론인이 됐다. 가톨릭 신앙의 가치를 깊이 실감하며 삶에 변화를 맞은 것이다.
“크라쿠프 WYD에서 공식 웹사이트의 편집자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특권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질문하고 진실을 찾으려 한 여정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분명히 느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성소라고 믿습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또 다른 청년들
크라쿠프 WYD의 생생한 기억을 간직한 청년들은 더 있다. 2025년 12월 12일 크라쿠프 외곽의 한 피정의 집. 피정의 집 이름은 ‘Totus tuus’로, ‘모든 이의 모든 것’이라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모토를 그대로 붙였다. 청년 피정 ‘구시가지의 그리스도’는 2012년부터 시작됐지만, 크라쿠프 WYD를 계기로 더욱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이날 피정에 참가한 10여 명의 젊은이 중 절반은 WYD에 참가한 이들로, 요한 복음 속 ‘사랑’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나누는 시간을 이어갔다.
아르카디우스 마르제츠(39)씨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6년 7월 30일 밤샘기도에서 강론하시는 모습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들었다”며 “그 유명한 ‘소파에서 일어나라’는 메시지였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자신의 길을 가라. 하느님이 부르신 것을 하라’는 말씀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메시지는 크라쿠프 외곽 브제기(Brzegi)에 조성된 ‘자비의 캠퍼스’에서 열린 WYD 밤샘기도 때 교황이 전한 말로,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소파에서 감자 칩을 먹으며 TV만 보는 일상에서 벗어나 일어나라”고 독려했다. 마르제츠씨는 “당시엔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를 ‘자전거를 계속 타고 가라는 거군’ 정도로만 여겼는데, 이후 나눔을 통해 메시지를 다시 성찰해보니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면서 “인생 전체가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이라 생각하면서 WYD 이후 피정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교회 가르침을 더 깊이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소파에서 일어나라”는 교황의 말은 안락함에 머물지 말고, 세상의 고통 속으로 나아가라는 요청이었다. 곧 ‘자비를 실천하라’는 강력한 호소였다.
실제 2016년 7월 26~31일 열린 본대회와 앞선 교구대회 기간 젊은이들은 소소한 자비를 실천하면서 ‘자비의 나라’라는 이름에 걸맞은 폴란드 청년들로 거듭났다. 미렉 크르지자크(36)씨는 WYD 기간 60㎡ 남짓한 방 두 개짜리 집에서 14명의 순례자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했다. 크르지자크씨는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들, 독일에서 온 부부, 다른 지역에서 온 폴란드인들, 런던에서 온 친구까지, WYD 동안 저희 집은 정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었다”며 “제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기쁨과 사랑을 사람들로 받았던 시간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교구 도미니코회 학술사목 공동체 ‘베츠카’ 회원 줄리아 크시옹코(22)씨는 13살 때 크라쿠프 WYD를 경험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집에 온 4명의 외국인 언니·오빠들과 나눈 대화와 신앙은 10대 청소년에게도 깊이 각인됐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다시 순례지에서 서로 만났고, 명절 때마다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크시옹코씨는 “저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대회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홈스테이를 통한 환대의 경험은 내면 깊은 곳에서 공동체에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며 “그런 이유로 이후 젊은이들이 신앙을 깊이 나누는 베츠카 모임에 참여하게 됐고, 여기서 주님 안에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폴란드 교회에 많은 신앙 공동체가 있지만, 베츠카의 장점은 젊은이 각자가 지닌 재능을 봉헌해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크시옹코씨는 현재 사진 봉사를 하고 있다. 크시옹코씨는 “제 재능이 2023 리스본 WYD 때에도 순례자들을 촬영해주며 그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면서 다시금 빛을 발했다”면서 “WYD는 새로운 문화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넘어, 오랫동안 신앙으로 이어질 소중한 인연과 깨달음을 남긴다”고 말했다.
스페인 여론조사 기관인 ‘GAD3’가 크라쿠프 WYD 이후 전 세계 100개국 이상의 젊은이 7400여 명을 대상으로 9개 언어로 한 조사를 살펴보면, ‘WYD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강화해 주었는지’라는 질문에 98%가 ‘그렇다’고 답했다. 크라쿠프 WYD 주제였던 ‘자비’에 대해서는 젊은이들의 90%가 ‘WYD를 통해 자비에 관해 더 많이 배웠다’고 했다. 또 89%는 ‘교회와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답했으며, 97%는 ‘WYD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강화해줬다’고 응답했다. 개인 신앙, 교회 역할, 사회와의 관계 모든 측면에서 WYD가 준 열매는 2027 서울 WYD를 개최할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7월 30일 폴란드 크라쿠프 ‘자비의 캠퍼스’에서 열린 밤샘 기도에 참여하기 위해 순례자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OSV
안으로 향하던 신앙, 자비로 확장되다
WYD 이후 개개인의 변화는 폴란드 젊은이들의 신앙 지형을 바꾸고 있었다. 종교를 체제의 적으로 간주하던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폴란드인들은 신앙을 놓지 않았지만, 드러내지도 못했다. 안으로 더 안으로 기도하던 습관이 자연스레 내면적 신앙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래선지 폴란드의 성당 미사에 참여해보면 어느 나라보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마주할 수 있다.
폴란드 특유의 ‘내면 신앙’ 문화 속에 그리스도의 핵심 메시지인 ‘사랑’이 밖으로 확장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개인의 신앙은 깊었을지언정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폴란드인의 과제였다. 교구 청소년사목국장 피오트르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폴란드 젊은이들의 신앙이 오랫동안 개인 내면에 집중돼왔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WYD 이후에는 다양한 공동체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젊은이가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WYD는 청년들의 신앙 열정을 더 크게 불러일으켰다”면서 “전 세계 젊은이가 언어 장벽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놀라운 은사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고 증언했다. 그가 말한 의로움은 용서할 줄 알고 약한 이들을 돌볼 줄 아는 ‘자비’였다.
크라쿠프 WYD 이후 폴란드 현지 교회와 시민사회 안에서는 작은 나눔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거리 노숙인을 위한 급식 봉사,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언어 교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우크라이나 이웃을 돕는 자선 행사까지, 거창한 선언이나 조직보다 일상의 필요 앞에 손을 내미는 방식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기간의 성과라기보다 WYD 이후 형성된 신앙의 방향성이 일상 속에서 드러난 사례들이다. 신앙생활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그 마음은 계속 바깥을 향했다.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젊은이들 스스로 WYD 통해 많은 선의와 사랑을 받았기에 그 경험을 다른 이들을 돕는 마음으로 이어간 것이 크라쿠프 WYD의 유산”이라며 “바오로 성인이 말씀하셨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과 같기에 젊은이들은 실천으로 가득 찬 믿음으로 지속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폴란드 교회는 그렇게 실천 교회로 나아갔으며, 이는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또래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부부가 서로에게 좋은 배우자가 되어 서로에게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자 움직이는 것이다. 코사코프스키 신부는 “이것이 하느님 닮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결국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WYD를 경험한 폴란드는 계속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2월 8일, 박예슬 기자] 0 8 0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초상화. OSV
-


- 전 세계 젊은이가 2016년 7월 29일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WYD) 십자가의 길에서 환호하고 있다. OS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