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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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제31회 농민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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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농민 주일 담화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1코린 3,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여름도 그 어느 때 못지않게 열기가 뜨겁습니다. 기후 위기로 말미암아 공동의 집인 지구의 생태계가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전쟁과 에너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류에게 닥친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돌보고 일구라는 사명을 따르고 있는 이 땅의 농민들을 기억합니다. 특히, 가톨릭 농민회원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생명 농업의 기치를 내걸고, 땅과 생명을 돌보는 수고를 하느님께서 맡기신 창조 세계를 보살피라는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농사는 노동이기 이전에 하나의 초대입니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흙을 만지는 그 손길 안에, 모든 생명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머무릅니다.
한편, 국내 시장에 값싼 수입 농산물이 유입되면서 국산 농산물의 가격 하락과 농가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한, 청년 인구의 급격한 이탈과 고령화에 따른 지역 소멸 위기, 폭염과 가뭄 등 자연재해에 따른 경작의 어려움, 농업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등으로 우리 농촌은 갈수록 힘들어만 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는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깨진 이 시대 전체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농업 문제를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생태 정의, 공동선,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으로 바라보셨습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오염된 땅과 물과 공기는 인간마저 병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앞세우던 길에서 발길을 돌립시다. 생명을 살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농업으로 나아갈 때, 메말랐던 땅은 다시 우리에게 생명으로 응답합니다.
생명 농업은 단순히 재배 방식을 바꾸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땅을 하느님의 선물로 바라보며, 흙과 물과 뭇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는 생태 영성을 오늘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는 실천이기도 합니다. 농민은 생명의 터전을 온전히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인간도 자연이 내어주는 먹거리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한 끼의 식사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 밥상 위에는 수많은 생명과 농민의 땀,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차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진실을 기억하며 식탁 앞에 앉을 때, 한 끼의 밥은 감사의 기도가 됩니다.
농민 주일을 맞아 도시의 소비자인 시민들에게 더욱더 굳건한 연대를 요청합니다. 소비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윤리적 행동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식탁에 올릴지 선택하는 일은, 곧 우리가 어떤 땅을 후손에게 물려줄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격만을 앞세운 선택이 쌓일수록, 우리의 식탁은 위협받고 우리가 지켜야 할 지구의 환경 또한 위태로워집니다. 반대로, 친환경 방식으로 정성껏 길러 낸 지역 농산물을 고르고 제철 먹거리를 이웃과 나누는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곧 생명을 살리는 연대가 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을 통하여 생산자인 농민과 도시의 소비자가 서로를 지키는 공동체적 관계로 소중한 연대를 이루어 왔습니다. 한 가정이, 한 본당이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에 함께할 때, 우리는 비로소 밥상 앞에서 농민의 얼굴을 기억하게 되고, 도시와 농촌은 서로를 살리는 한 식구가 됩니다.
우리는 지금 지속 가능한 농업을 향한 전환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며 땅과 물과 공기를 안전하게 지켜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위하여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생명과 식량 주권, 공동체와 문화, 그리고 생태계 보전을 위한 공공의 가치 측면에서 농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인 생태적 회심이 필요합니다. 생태적 회심은 자연을 오직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던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가 창조 세계 안에서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는 변화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을 가만히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생명의 가치를 가장 먼저 품는 감사와 절제와 나눔의 삶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이는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잃어버렸던 참된 기쁨을 되찾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후 위기의 시대, 농민들의 땀방울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언제나 농민들과 함께하며, 생명을 살리는 농업과 정의로운 먹거리 체계를 위하여 연대할 것입니다. 농부는 땅에 씨를 뿌리고 귀한 소출을 인내로이 기다립니다(야고 5,7 참조). 우리 또한 그 인내와 신뢰로,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어 이 땅을 가꾸어 갑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하느님의 밭”(1코린 3,9)이니, 그 밭에서 자라난 생명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하고 안전하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농민들의 수고를 축복하시고, 우리의 땅과 공동체 위에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7월 19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 0 2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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