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ㅣ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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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성지를 댕겨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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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구산성지를 두번이나 다녀왔다.
첫번째 순례는 생활성서 9월호에 나온 한수산 씨의 글을 읽고 나서 갔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훌훌 떠난 순례...
김성우 성인을 비롯한 9분의 순교자들이 처음 묻혔던 곳,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조선에 들어와 첫미사를 봉헌한 곳. 그런데 가난한 교우촌, 시골, 미사리, 성지 정문 앞에 자리잡은 카펫공장, 근방에 널린 밥집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곳이다.
소박한 구산 성당(여기는 꼭 가볼 것. 성당 한쪽에는 갖가지 닭도 있음).
성 김성우(안당)를 기리는 순교비를 읽으면서. '왜 비문은 띄어쓰기를 안하는 것일까' - 해독하는 데 한참 걸렸음. 성인의 가족들이 남한산성에 갇힌 성인을 위해 식사를 나르고 돌아오면서 빈 밥그릇을 눈물로 채웠다는 이야기, 성인이 남긴 한말씀: "나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 것이요,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이오" 그냥 덤덤하게 읽을 수도, 아픔과 결단이 서려 있는 말씀임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도 있는 구절. 더불어 잠시 고민... 역시 난 안돼.
궁금증 하나, 성지에는 왜 아줌마들만 오는 것일까? 혹시 다른 여가생활과 같은 선상의 순례는 아닐까? 젊은이들이나 남성 교우님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둘, 성지순례는 오직 '십자가의 길'과 '순교성인들에게 바치는 기도'만 하면 다 되는 것인가? 감동스럽게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나와 금새 희희덕거리는 신자들...그저 멍한 느낌뿐.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시락 먹고 야단하는 레지오 단원들의 희희낙낙만을 보았을 뿐이다. 성지순례라...푸 하하하 셋, 성지 문위에 걸려있는 '현수막- 고3 수험생을 위한 40일 미사'. 왜 할까? 우리의 순교성인을 고작 수능의 수호신정도로 생각하는 것일까?
* 오늘날 순교성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찾아가는 길 88도로를 타고 미사리 쪽으로 쭉 가면 됨. 구리 쪽으로 빠지지 말 것. 가다 보면 표지판이 보인다. 엄청 잘 보인다. 표지판만 잘 따라가도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자세한 사항은 '굿늬우스'를 뒤져보거나 생활성서 9월호(98년), 주평국 신부님이 쓴 성지안내서를 보면 됨.
퀴즈 1. 구산성당의 주보 성인은 누굴까요? 2. 현재 구산성지에는 성인의 유해가 있을까요?
답 1. 김성우(안당) 2. 없다. 그럼 어디에 있을까요?... 투 비 컨티뉴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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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낯선 곳으로 떠나기]시작의 글 | 1998-10-05 | 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
| 4 | 추석 인사 올립니다. | 1998-10-04 | 굿뉴스 |
| 3 | 구산성지를 댕겨와서 | 1998-09-28 | nam bong woo |
| 2 | 갈매기의 섬 석모도... | 1998-09-15 | 김성겸 |
| 1 | 평화를 빕니다. | 1998-09-09 | 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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