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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126위중 125,김범우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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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03-31 ㅣ No.64421

증거자‘하느님의 종’선정자

 

125 김범우 토마스(서울,충북 단양 1786년 여름 36세)장독사망

 

김범우 토마스는 10남매 중 8형제의 장남으로 영조 때 사역원 판관을 지낸

김의서의 아들이다. 맏형 범우는 적자이고 넷째와 다섯째 동생인 이우와 현우는 이복동생으로 서자였다. 김범우는 1773년에 실시된 역과에서 2등급으로 합격한 뒤

종 6품인 한학우어별주부(漢學偶語別主簿)까지 올랐다.

서울 명례방에 살던 김범우는 비록 신분은 달랐지만 이벽, 이승훈 등과 학문적으로 접촉하여 1784년 9월 수표교 근처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정약전, 약용형제, 권일신,

최창현 등과 함께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정식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그 후 그는 자기 집에 천주교에 입교한 신자들의 비밀집회 장소로 제공하여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게 하였다. 당시의 행정구역으로는

한성부 명례방 명동계 명례동으로 한적한 남산골에 자리잡은 집이었다.

이처럼 서울에 신앙 공동체가 생겼다는 것은 그때까지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연구해온 서학이 이제 학자와 중인을 주체로 하는 조직적인 신앙실체로 발전해 감을 뜻하는 것이었다. 또한 양반도 서민도 아닌 중인 집에서 출발한 것은 모든 계층의 사람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지닌 공번된 천주교회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세례를 받은 김범우는 즉시 선교활동에 나서 이우, 현우 등 동생들뿐만 아니라

최인길, 최필공, 허속, 김종교 등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또 양반인 홍익만, 윤지충 등은 김범우의 집에 드나들며 천주교 서적을 접함으로써

입교한 사람들이다.

이처럼 김범우는 중인 신분이었지만 계층을 초월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던 1785년 봄에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 벌어지면서 그 실체가 세상에 들어 나게 되었다. 형조의 순라군들은 이들이 나라에서 금하는 노름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집회현장을 급습하여 모여있던 이들을 잡아 형조로 연행했다. 당시의 형조판서는 신중을 기하여 양반출신 신자들은 훈방하고 김범우만 문제삼아 악형을 가하고 유배를 보냈다. 김범우는 1787(丁未)년 (음력7/16) 유배지에서 장독으로 순교했다. 김범우의 후손 김동엽의 집에 보관되어있는 선조들의 기일을 적은 장생보록(長生寶錄)등을 종합해 볼 때 1786년 여름 36세에 옥고의 여독으로

순교한 것으로 여겨진다.

달레 신부의 한국 교회사에 보면 김범우는 1785에 을사추조적발사건 때 단양으로 귀양을 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지명이 충북 丹陽과 밀양의 丹場의  이런 두 가지 설이 있다

(달레한국천주교회사상권313∼319) (순교는믿음의씨앗이되고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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