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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과 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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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빚
십자가를 안테나로! 부활성야전례연습을 위해 오후에 수녀님들과 함께 모여 예절연습을 하였습니다. 아직 목감기가 낫지 않은데 부활찬송가를 불러야하는 부담도 있는데다 크고 무거운 부활초를 들고 "그리스도 우리의 빛"을 노래할 것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런데 미사일(?)만한 초가 2자루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놀라서 "수녀님, 저 초들을 제가 다 들고 가야합니까?"하고 물으니, "신부님, 걱정마세요. 하나는 병원에 모실 겁니다."^^* 깜깜한 밤과 같은 빚의 신비에 사는 우리에게 참 빛으로 오신 주님의 부활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카드 빚처럼 우리는 얼마나 신앙카드, 자유카드등을 예수님이름으로 마구 긁어대었습니까? 그 옛날 이집트에서 빚(?)에 허덕이며 노예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모세를 통해 그 빚을 갚고 홍해바다를 건너게 함으로써 해방을 주신 주님은 분명 여러가지 빚에 허덕이는 깜깜하게 사는 우리 민족에게도 분명 참빛이 되어주시고 해방을 안겨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빛이 작은 촛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는 그동안 얼마나 그 빛을 무시했는지요...이렇게 깜깜한 저에게 촛불의 가치를 "퍽"하고 깨닫게 한 어느 사제의 글이 있어 퍼드립니다. 조금이라도 빚을 갚는 마음에서...가브리엘통신
<부활체험>
최창덕 (프란치스꼬) 신부 / 춘천교구 우두 천주교회 보좌
몇 년 전 부제로 성주간 전례실습을 위해 본당에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성 토요일 오후 아이들이 부활계란을 꾸미는 작업을 한다고 하기에 교리실에 들어갔습니다. ’시끌시끌’ 정신 없는 가운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던 저에게 갑자기 "퍽" 하며 딱딱한 것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놀라서 "어느 놈이야!" 하면서 돌아보니 한 아이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부제님 이거 드세요." 라며 방금 전 제 머리에다 "퍽" 하며 깨뜨렸던 계란을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저는 혼내주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 아이의 장난스럽지만 고마운 사랑이 느껴져서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부활만 되면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제게는 "퍽" 하며 부활 계란으로 머리를 맞았던 그 아픈 사고가 참된 부활체험이 아니었는가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부활에 대해 늘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려고 또 설명하려고 고민했던 저의 우둔한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게 하는 충격적인 사고를 통해 살아있는 부활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하느님께서는 또다시 참으로 의미 있는 충격적인 사고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지난 3월 12일 역사상 유래가 없던 대통령 탄핵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였습니다. 국민의 심부름꾼으로 자처하는 국회의원들이 대다수 국민의 뜻을 저버린 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저지른 반민주적인 처사였습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너무나도 정당한 분노를 터뜨리며 촛불 집회를 통해 나라의 주인 된 자로서 국민의 참된 바람을 표현했습니다. 탄핵을 감행한 국회의원들은 그야말로 국민들로부터 호되게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은 꼴이 되었습니다. 의회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환호하던 그들은 이제 진정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겸허하게 반성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아니 정말 어리석게도 여전히 국민의 바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른바 ’배후설’ 까지 퍼뜨리며 평화스럽고 정당한 촛불 집회를 욕보이는 온갖 잘못까지 더하고 있으니, 그들은 얼마나 더 충격적인 사고를 당해야 그들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을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 탄핵정국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체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이제 우리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부활은 언제나 살아있는 역사적 체험을 통해 옵니다. 탄핵 역시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부활을 위한 커다란 민족적 체험일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신앙인들은 그동안 우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정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복음적 가치를 삶 속에 실현하지 못했던 잘못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인, 사회적인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혹은 내 종교와 무슨 상관이야?’ 라고 하면서 오직 개인적인 구원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구원사상’ 에 매달려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참뜻은 아직까지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먼 지적인 호기심 거리에 불과합니다.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져버린 충격적인 사고를 당했지만 여전히 부활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탄핵이라는 사고를 접한 우리가 ’부활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복음 속에 나오는 제자들과 같은 어리석은 신앙인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참된 부활을 깨닫는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 것인지. 어쩌면 4월 15일에 우리의 선택이 부활의 참된 깨달음을 위한 또 하나의 체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빛두레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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