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더보기
2026년 11월 3일 (화)
(녹)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자유게시판

영화『그리스도의 수난』과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

스크랩 인쇄

김신 [kspeter] 쪽지 캡슐

2004-04-14 ㅣ No.6555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이번 사순절은 영화『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인해 여느 사순절과 달리 주님의 수난을 생생히 묵상할 수 있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EWTN에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게시판에 올립니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고대 아람어와 라틴어는 예수회 윌리암 풀코 신부님(William J. Fulco, SJ)의 노고(勞苦) 덕에 재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번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신학이나 철학을 배워본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잘못이 있을 줄 압니다.  지적 부탁드립니다.  원문은 영문 제목을 클릭하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영화『그리스도의 수난』과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 그리고

아그레다의 마리아

(The Passion of The Christ

and Anne Catherine Emmerich

and Mary of Agreda)

 


멜깁슨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은 가톨릭 신비가인 가경자(可敬者)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와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의 저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성서가 그 영화의 원전(原典)임에도 불구하고, 깁슨은 이 두 분의 거룩한 가톨릭 여성들의 저술로부터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깁슨은 그 분들의 저작(著作)이 그가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이끈 영적 여정에서 상당히 중요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는 1774년 9월 8일, 독일 뮌스터 교구 플람쉬에서 태어났고 1824년 2월 9일 둘멘에서 선종(善終)한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입니다.  그분은 그리스께서 입으신 상처와 같은 신비로운 오상(五傷) 현상을 체험했습니다.  이는 지역 주교의 명을 받아 의사들과 성직자들의 전문 위원회가 시행한 조사를 받아 진정성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그분은 신비로운 환시를 보았고 그 내용을 서기(書記)로 봉사했던 클레멘스 브렌타노가 받아 적었습니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저술들 중에는『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선종하신 후 한참이 지난 1892년, 뮌스터 교구 주교가 그분에 대한 시복 청원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가경자 칭호가 붙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영웅적인 덕(德)의 삶을 사셨다는 로마의 인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1928년 로마는 그러한 시복 청원을 유예시켰습니다.  브렌타노가 그녀의 것이라 기술한 내용이 조작된 것이라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은 위조했을 가능성이 있는 저술들을 참고하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삶에 대해서만 심사를 다시 열 것을 허가했습니다.  2003년 7월 2일,  교황청 시성성은 기적 판결을 공표함으로써 시복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로세르바또레 로마노 N.29, 16, 2003년 7월 2일자)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는 스페인의 프란치스칸 수녀였으며, 1602년에서 1665년 5월 24일 사이에 사셨던 분입니다.  시복 청원은 선종 직후인 1672년에 바로 이루어졌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의 눈에도 그분께서 분명히 성덕(聖德)의 삶을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생애에 걸쳐 그분께서는 사적 계시를 포함한 신비한 현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한 사적 계시의 내용은 순명에 의하여 받아 적혔고 그분의 죽음 이후 스페인에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이러한 저작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의 거룩한 생애』입니다.  하지만 『거룩한 생애』가 (오늘날 신앙 교리성이라 칭하는) 교황청 기구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 때, 1681년 8월 4일 파리 대학의 조사에 근거하여 그 내용이 옳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고, 교황 인노첸시오 11세에 의해 금서 목록에 기재(記載)되었습니다.  그후 교황은 스페인 국왕의 간청에 따라 그 효력을 유예(猶豫)시켰습니다.  스페인 등지의 명망있는 가톨릭 대학들이 시행한 연구들은 그를 옹호했고, 1713년 교황청은 내용이 옳지 않다는 판정에 대한 유예 조치를 모든 곳에 적용한다고 공시했습니다.  하지만, 아그레다의 마리아의 죽음 이후 가해졌을 수도 있는 편집상의 변경에 관한 몇가지 역사적 의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은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결코 적절히 해결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그러한 저작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그에 대한 답은 두 겹으로 구성됩니다.  

 

우선, 그러한 저술과 같은 사적 계시를 복음서와 동등하거나 더 큰 권위를 갖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사적 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성서에 누락되어 있는 세세한 역사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개인의 기도 생활의 맥락 속에서 일어납니다.  「정화(淨化)의 길」이라고도 하는 성성(聖性)의 성장 시작 단계를 거친 사람은「비추임의 길」로 들어갑니다.  정화의 단계에서는 인간의 언어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도의 양식으로 삼아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회 가르침에 대해 묵상합니다.  비추임의 단계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기술(記述)이 아니라 그로부터 나온 장면들을 관상을 위한 새로운 양식으로 주십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격언과도 같습니다.  그 목적은 지성(知性)이 진리이신 하느님 안에서 쉬면서 선(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의지(意志)를 불태우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하느님께서 새로운 빛을 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적 계시는 그 사람의 기억과 지식의 구성체로부터 “구축”됩니다.  이는 신비가가 보게 되는 장면들이 제시되는 방식이 신비가(神秘家) 자신의 종교적 문화적 교육적 영향에 따라 결정됨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를 들어, 다른 여러 신비가들이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제시하는 상세 묘사의 다양성을 설명해 줍니다.  일부 상세 묘사는 하느님께서 주셨을 것이겠지만 다른 것들은 신비가 자신의 추정으로부터 취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목적은 성서를 고치거나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의지가 불타오르는 것이므로, 그러한 상세 묘사의 전거(典據)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목적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결국, 교회는 그러한 저술들의 진정성을 그러한 상세 기술(記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에 신앙과 도덕에 반대되는 것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정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상세 묘사가 참되다는 것을 보증해주지 못하며 다만 그것이 신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것만을 보증해줄 뿐입니다.  

 

두 번째로, 사적 계시를 해석하는 일반적인 “문제”와 더불어 이러한 특정 저술들과 결부된 불확정성을 갖는 특이적인 문제 역시 상존합니다.  두 가지 요인(要因) 모두는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와 아그레다의 마리아의 저술들을 읽는 것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는 사랑을 불태우는 도구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이지 성서에 대한 부록(附錄)으로서가 아님을 잘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목적을 지향한다면, 그 저술들은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이 주님의 수난에 대한 결실 풍부한 개인 묵상으로 이끌 수 있듯이 그 모든 세부 묘사의 역사적 사실성을 떠나 매우 많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일례(一例).  환시나 사적 계시를 형성하는 것으로 신비가에 의해 이미 알려진 것을 사용하시는 하느님의 원칙의 일례는 못들의 위치와 그에 따른 성인들이 가졌던 오상의 위치입니다.  성서는 예수께서 어떻게 십자가에 못질을 당하셨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편 22장 16절의 히브리어 단어는 통상적으로 “손”으로 번역합니다만 손목이나 그에 근접한 전완(前腕)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전통은 보통 손바닥으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신비가들은 손바닥으로부터 손목, 전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위치로 제시합니다.  한편, 투린의 수의(壽衣)와 십자가형에 대한 역사 연구는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으로서 사람의 손목에 못을 박았음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랬을 법한 손목의 경우와 더불어, 신비가들에서 나타나는 차이점들은 손바닥이든 전완이든 찔린 상처가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가톨릭 신비신학은 신비주의에 주관적 (개인적) 요소가 있음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그러한 세부 묘사의 차이를 허용합니다.  영화『그리스도의 수난』에서 멜 깁슨은 엠메리히가 묘사한 못의 위치를 따르기로 선택하였고, 그것은 예술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정당합니다.  

 

콜린 B. 도노반, STL



73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65554 총선의 추억 ⑤ 하느님 전상서 2004-04-14 지요하
65553 투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2004-04-14 최기형
65551 영화『그리스도의 수난』과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 2004-04-14 김신
65571     [RE:65551] 김신 Guru 형제님 !! 2004-04-15 박요한
65550 잊지 마세요, 3.12 ! 2004-04-14 이진현
65544 화성은 전에 탄광지역이었음. 2004-04-14 박찬진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