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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뭣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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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살레시오 수사가 된 후부터 나는 캠프장과는 더 이상의 인연은 없었다. 나의 사도직은 오라토리오였는데, 해마다 일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실내 체육관에서 "돈보스코 아마추어 농구대회"를 하였다. 이때부터 같이 사는 형제들만이 아닌 평신도들과 일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우리 집에서 유기서원자로 있는 동안 난 총 7번의 농구대회를 하였었다. 다른 담당 형제들은 4번정도인데 나는 참 농구대회와 인연이 많았다. 1884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농구대회는 지금 20년의 역사를 가진 대회이다.
농구대회를 통해서 난 살레시안으로서의 또 다른 기쁨을 맛보았고 배웠다. 지금은 공동체와 관구에서 금전적 후원을 해지만, 예전에는 지도 신부님과 담당수사들이 발과 입으로 뛰면서 후원금과 상품들을 모아야만 했다.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참가비는 일인당 오천원이었다. 아이들 기념품 값과 시상품을 구입하면 남는것이 없었다. 나머지는 우리들의 몫이었다. 아니 그것은 우리를 도와주셨던 많은 지금은 이름조차 잃어버린 후원자 분들이셨다.
대회운영비와 상품을 모으기위해 처음에 한것은 전화였다. 처음에 전화할 때, 왜 그리도 입을 떨어지지 않는지, 후원금을 부탁할 때,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이 세게 뛰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한 수사님은 장문의 편지를 썼었다. 한 회사는 그 편지를 받고 회사가 어려워 도와주지 못하지만, 직원들과 함께 모았다며 작아서 미안하며 주신 지점장님도 있었다. 이밖에도 동문들, 대회 출신자들,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시는 후원자분들, 모든 분들에게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심판들, 기록들, 안내요원들 한 대회를 치루려면 보통 30여명의 봉사자들이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않고 10여일 이상을 우리와 함께 하였다. 농구대회의 출신들이 이제 졸업을 해서 심판과 기록으로 우리와 함께 하였다. 대회를 위해서 여름휴가를 내는 심판도 있었고 멀리 서울에서 내려와서 방학을 보내다 가는 봉사자도 있었다. 대학 서클인 돈보스코 회원들이 매점을 비롯하여 기록 그밖의 모든 일들을 해주었다. 그들 중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도 있었고, 살레시오를 모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농구가 좋다는 이유로 우리와 함께 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천주교를, 살레시오를, 수사를 알게 되었다. 이 모두와 우리는 한 여름의 열기를, 한겨울의 추위를 잊으며 젊은이들과 함께 농구장에서 뛰고, 숨쉬고, 땀 흘리면서 함께 하였다.
무엇보다 우리의 기쁨은 아이들이었다. 일년에 두번있는 이 대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주말에 마다 만나면서 열심히 뛰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도 함께 뛰었다. 멀리 목포 , 순천, 전주등에서도 소식을 듣고 출전하는 아이들.... 유명 스포츠회사에서 많은 경품을 내걸고 개최하는 3대3 농구를 마다하고 기념티셔츠 달력하나 밖에 없는데도 먼길을 달려오는 아이들 딱 5명 밖에 없는데 한 명의 친구가 배신(?)으로 게임을 못하게 될때에도 꼭 뛰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아이들, 4명 밖에 없는 상대편을 뛰게 해주려고 게임를 상대해주고 같은 조건으로 4명으로 뛰어주던 아이들, 학교는 다르지만, 친구도 아니지만 농구를 위해서 모였다는 아이들, 아깝게 졌다면서 대성 통곡하며 서로 부둥켜 울면서 친구를 위로하는 아이들. 비록 졌지만 내년을 약속하며 밝게 웃으며 떠나는 아이들.... 아직도 그때를 생각나면 기억에 나는 아이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하나, 어느해인가? 농구대회 마지막날, 한 아이가 나에게 카드 한장을 고맙다며 주었다. 그 많은 농구대회를 하면서 처음 받아보는 카드였다. "아저씨는 뭣 때문에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뛰어요? 돈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2년동안 농구장에 만난 녀석인데도 수사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였다. "나? 그야 너희들이 좋아서지, 난 너희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좋단다. 여기있는 많은 형들 누나들 모두가 그 때문에 여기 있는거지. 내 꿈은 말이다. 네가 커서 어른이 되고 자식을 나아서 지금 네 나이가 되었을때, 이 농구대회에 참가한 네 아들에게, 이 농구장에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는 거란다. "이 아빠가 옛날에, 지금 내 나이때 지금처럼 여기에서 땀흘려 뛰면서 기쁘게 보냈었단다.""
내년부터는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적어져서, 일년에 한번 농구대회를 한다고 한다. 참 아쉬운 소식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그 아이가 다행히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농구대회장을 찾을 수 있을 희망이 있어 행복하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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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871 | +구상시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 2004-05-11 | 이현철 |
| 66867 | 삭제합니다 | 2004-05-11 | 김신 |
| 66865 | 아저씨는 뭣 때문에... | 2004-05-11 | 김평안 |
| 66862 | 테즈메이니아 데블(Tasmanian devil) | 2004-05-11 | 배봉균 |
| 66861 | 긍정적인 사람은...! | 2004-05-11 | 황미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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