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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크로마토그래피 - 열린우리당의 갈팡질팡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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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yoondds] 쪽지 캡슐

2004-07-07 ㅣ No.68505

크로마토그래피였던가?

국민학교때 분필의 밑둥에 검정색싸인펜으로 금을 그어놓고 물이 담긴 샤알레에 담궈두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이 분필을 따라 올라가면서 검정색잉크에 담겨있던 여러가지 색깔의 성분들이 드러나며 위로 죽 퍼져 나가던 것.



어떤 사람들은 이번 4.15 총선이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 만큼 잉크가 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10센티미터짜리 분필이라고 하면 이제 겨우 2-3센티나 퍼졌을까?

2-3센티라고 하더라도 잉크의 대부분은 아직도 밑둥에 집중되어 있다. 검정색잉크밖에 모르던 인간들은 자기들보다 겨우 2-3밀리 왼쪽으로 퍼져나간 색깔을 보면서 좌익이니 용공이니 하면서 흥분하지만 아직 멀었다.

우리가 검정잉크의 위용에 압도되어 그 주위 1-2밀리이상을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요즘 파리날리는 한화갑이나 이인제나 박찬종이도 민주인사였다. 하지만 분필의 길이는 100밀리미터다.

어제의 민주(진보)인사는 알고 보니 수구에 가까운 보수세력이었던 것이다.

세상을 노사모와 반노사모로 보는 검정색 아메바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넓은 세계가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사회에는 극우 보수세력뿐아니라 이념적으로 자본주의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마음은 이미 분필의 끝을 넘어가는 좌측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의미있는 정치적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세력으로 본다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적어도 진보와 보수가 의미있는 구분이 되려면 잉크가 분필의 반이상은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4.15 총선에 의한 의석분포를 보는 나의 생각은 보수진영내의 수구세력과 개혁지향세력의 대결이 아닌가 한다.

수구세력이라고 함은 말할 것도 없이 지역감정과 기득권에 대한 향수이외에 내세울 것이 없는 한나라당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열린우리당을 보수진영내 개혁지향세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을 수도 있겠다.

 



사실 열린우리당내에는 개혁당출신들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사람들이 여러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마도 우리가 우리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경계선을 가른다면 그 경계선이 영등포에 있는 열린우리당 당사내의 어디쯤을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통일된 세력으로서 열린우리당을 본다면 보수세력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선생의 열린우리당 잡탕론은 적절할 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적절한 시기였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정동영이 부터가 어디 진보라고 할 수 있겠나? 당선된 면면을 볼때, 그리고 중요한 진보성의 척도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라크 파병이나 대미외교에 대한 모습을 볼 때 열린우리당은 아직 때묻을 기회가 없었던, 그래서 기득권에 대한 애착이 적은 개혁 보수세력이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이 그런 입장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열린우리당의 최근 행보는 배신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저 생긴대로 노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의 한구석에서 선전한 민노당의 모습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수구세력과는 썩 다른) 계급(계층)정당의 정치권진출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이대목에서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당시 의회가 계급들의 대표로 구성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국가들 심지어 19세기 짜르체제하에서 구성된 제정 러시아의 의회인 듀마에서도 의회라는 것은 계급의 대표들이 이해관계를 다투고 조정하는 곳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던 것이 현재 한국에서는 대의(代議)기관으로서의 의회와 그에 기반한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적 개념은 사라지고 지역구라는 개념 아닌 개념에 매몰되어 국회의원을 뽑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다양한 계급과 계층으로 구성된 사회의 갈등이 지역과 지역사이에 발생하는가 아니면 계급과 계급, 계층과 계층간에 발생하는가.

서울시 강남구출신의 국회의원과 부산시해운대구출신의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만나서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의사를 서로 대변하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노동자정당의 국회의원과 자본가정당의 국회의원은 서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국회에서 만나야 하는 관계다.

 


나는 그렇다고 지역별 선거구를 없애고 의원정수를 노동자 대표 몇명, 농민대표 몇명, 자본가 대표 몇명, 소상공인 대표 몇명 등등씩 인구비례로 할당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선거구는 지역별로 될 수밖에 없지만,

지역주민들이 투표를 할때 객관식 보기중에 고를 것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처럼 사회의 한가지 세력이 객관식보기들을 독점하고 있으면서 유권자들을 소외시키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찍을 놈이 없다!' 는 말은,

오답들로 채워진 보기들 중에서 답을 골라내야 하는 수험생의 고뇌를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민노당이 과연 얼만큼 진보정당이 될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서구의 예를 볼 때 노동자들의 정당이라고 해도 스펙트럼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민노당이 검정색잉크로 그어진 출발점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얼마만큼인지,

2-3센티까지 퍼진 현재수준이 끝인지 아니면 분필의 절반을 넘어가는 진짜 진보세력의 중심이 될 것인지...

 


하지만 그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을 보이든 간에 현재에는 의회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역사적 의의는 충분하다.

지금까지의 의회점거세력과는 뿌리가 다른 세력이 소수나마 의회로 진출함으로써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진짜 의회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책대결이 무엇인지, 왜 계급(계층)을 대표하는 정당이 필요한지, 그리하여 -바라건데- 국민들은 자신들이 왜 지지정당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국회에 제2, 제 3의 계급(계층)정당이 들어서고 그들이 치열하게 공방하는 과정에서 지역감정이나 용공시비와 같은 가소로운 이데올로기는 휘발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학습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뜻을 알고 싶으며 사전을 뒤질 것이 아니라 정치판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민노당에서 더 나아가 의회에는 다양한 세력이 진출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수수구일색인 현재의 지배세력이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 다른 목소리들은 길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회계층계급들이 그 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이 사회에서 단 한가지 세력이 의회로 대표되는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지금까지 있어온 비정상적인 사회분열과 소모적 갈등의 원인이다.

 



다양한 계층계급의 정당들이 의회에서 부딪힌다고 해서 사회의 모든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 분명하지만,

많은 부분이 걸러내지고 쟁점이 명확히 되어 사회적 에너지가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을 막아 줄 것이다.

연인원 수십만명이 동원되는 촛불시위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회에서 당당하게 미군범죄를 고발하고 법적인 대책을 마련할 정당의 의원을 찍어야 한다.

해마다 터지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지겨운 사람들은 그들의 대표를 국회로 보내라.

거기서 그들이 임금협상까지야 못하겠지만 불법해고와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의(代議)해줄 것이다.

자본가들의 논리만이 관철되는 농업관련 무역협상에 억장이 무너지는 농민들도 더 이상 여론의 동정심에 호소하거나 자해하지 말고 자신들의 대표를 국회로 보내야 한다.

분신을 해도 국회에서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라크파병이 반인륜적 전쟁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오늘날 그들의 몸짓하나 말한마디 똑똑히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투표에 참고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나는 이번 총선에 의해 구성된 17대 국회의 의미를 이렇게 정해본다.

 

 

비록 열린 우리당이 어리석게도,

민노당과 개혁성을 두고 선명성 경쟁을 하기보다는 수구보수세력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수구성경쟁을 하고 있지만,

그런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17대 국회는
의회민주주의제도가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으로 역사적으로 부여된 그 본래의 기능을 시도해 보는 기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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