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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것, 하느님의 은총 아닌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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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향 [cpark] 쪽지 캡슐

2004-07-12 ㅣ No.68710

어제 주일 미사 참례하려 가던 중 성당 문 앞 10m 정도 남겨놓고 갑자기 아래 배가 꼬르륵, 사르르 아프더니 더 이상 참기 힘들어졌다. 식은 땀을 흘리며 발길을 재촉하여 허겁 지겁 문 앞에 도착하니 이 어인 일인가? 거짓말처럼 배가 아무렇지도 않게되었다. 그러나 만일을 대비하여 맨 뒷 자석에 앉았다. 조금 있다 생각해보니 미사 끝날 때까지 견딜만 할것 같아 늘 앉곤하던 맨 왼쪽 앞에서 세 번째 줄 좌석에 가 앉았다. 미사 내내 신부님 강론, 성체, 성혈 축성, 영성체 등 분심 없이 잘 드릴 수 있었다.

미사 시작 1시간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히하고 잘 준비했는데 “마귀가 날 못 잡아 먹어 환장을 했나? 좀 있으면 미사 시작하는데 아무렇지 않던 배가 왜이래? 일을 보려면 미사를 10분이나 까먹어야 하지 않아?" 장난질하는 마귀한테 무척 화가 났다. 그러나 그 짦은 순간에도 '온 힘을 다해 참겠으니 미사만 잘 드리게 해주십시오' 하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마귀 제 깐 놈,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두고 보자 하며 성당 문 앞에 허겁지겁 도착, 막 문을 열고 들어서니 씻은 듯 불편함이 사라진 것이다.

또 오늘 아침엔 아들 녀석이 제 엄마, 아빠 방으로 넌지시 들어오더니, “저 장학금 받을 것 같아요, 학과 조교한테서 필요한 서류 준비하라고 전화 왔어요,” 한다. 지난 학기엔 장학금을 받았으나 이번 학기엔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아 아이가 우울해하던 차라, 그 소리를 들으니 참 반가웠다. 사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이번 학기 성적에 관한 말을 지난 주에 듣고 300만원 가까이 되는 등록금 마련 생각에 좀 걱정을 하고 있던 참 이었는데 애가 부모 부담을 좀 덜어주는구나하여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처럼 저는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남들이 생각하기엔 싱겁고 실소에 부칠 일부터 시작하여, 좀 더 일상적이며 작은 일, 가끔씩 닥치는 좀 더 결정적이며, 중대한 결단을 필요로하는 고비, 고비 순간들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그분이 생각하시기에 필요하다 하실 때 항상 저에게 도움과 은총을 주심을 확실히 체험해오고있다.

사실 알고 보면 일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 아닌 것이 없다. 다만 우리가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쳐서 모르고 있을 뿐이다.

마음 속 크나큰 걱정이 있을 때, 번뇌로 마음이 괴로울 때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말씀 드리며 절 잘 도와주십시오, 이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하며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신 은혜,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실을 할 때마다 회개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정개하며 필요할 경우 성사 보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은총, 그리고 무엇보다 주일날마다  성당에 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실 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 이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은총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간밤에 잘 자도록 해주시고 또 다른 하루를 허락해주신 것, 아침에 하루를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과 일치하는 삶을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저녁엔 무사히 그렇게 보내도록 해주신데 대해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다.

우리는 은총과 기적하면 무슨 특별한 장소에서, 특정인에 베풀어지는 특별한, 그리고 큰 은총과 기적만을 생각하며, 자신에게도 그런 은총과 기적이 내렸으면하고 바라곤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부족한 생각이다. 하느님은 전지, 전능, 전재(omniscient, omnipotent, omnipresent)하신 분 이시기에 당신이 원하시면 은총과 기적은  크든, 작든, 특별하든, 일상적인 것이든 어떠한 것이든 상관없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 누구에게나 베풀어 주실 수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같은 하느님의 은총에 대비하는 우리의 마음 가짐과 태세이다. 즉 우리는 은총에 앞서, 하느님이 임하시기에 앞서,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이 은총을 베프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하느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깨닫고 이를 열심히 실천하여” 하느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마음을 그렇게만 해두면 은총과 기적은 하느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경우 틀림없이 주실 것이다.

고린토 전서 3.9-11, 16-17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 자신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항상 흠 없이 깨끗하게 유지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일상 생활에서 항상 “하느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삼고 생각, 말뿐 아니라 행동이 뒤따르는 지행합일의 생활을 해야 함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전에 신부님께서 강론 중 ‘우리 마음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그릇을 비유로 들어 설명해주신 것이 생각난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김치를 담으면 김치그릇, 불고기를 담으면 불고기 그릇, 먹고 남은 온갖 음식물 찌꺼기를 담으면 찌꺼기 그릇, 개한테 줄 개밥을 담으면 개밥 그릇이 된다. 이처럼 우리 마음의 그릇도 올바른 용도에 맞게 올바른 것을 담으면 유용하고 좋은 그릇이 되지만 나쁜 마음을 담으면 나쁜 그릇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오기, 심통, 거짓, 시기, 질투, 증오, 원한, 음탕, 탐욕, 위선, 과대망상” 등등의 나쁜 마음들을 담으면 나쁜 마음의 그릇들이 되며 선하고 착한, 형제 사랑의 마음을 품으면 하느님, 성령께서 거하시기에 합당한, 우리가 매주 영성체 때 ‘성사적 현존’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좋은 그릇이 된다.

이 그릇은 나와 내 안의 예수님이 사랑으로 하나된, 나와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는 티끌만한 장애물도 없는, 이를 조금이라도 느낄 경우 회개하여 聖寵상태를 회복한, 그러나 무엇보다 "하느님이 가르쳐준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의 그릇이다. 이 그릇에 담을 이러한 사랑을 성경에선 고린토전서13장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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