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자 조간신문 보셨습니까? 전체 일간지의 1면 Top을 장식한 것은 “낡은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노대통령의 발언입니다.
우리나라 양대 최고사법기관인 헌재와 대법원의 ‘국보법 존치론’ 연타에 ‘국보법 폐지론’이 잠시 휘청거리는 듯 하자 노대통령이 지원사격에 나선 것입니다. 이로써 정치권에서 논의되던 국보법 개폐논란은 사법부는 물론 대통령까지 가세한 전면전이 불가피해졌으며,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 제1아젠다는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또다시 교체된 셈입니다.
오늘은 노대통령의 발언으로 본격화된 ‘국가보안법 개폐논란’을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프라이즈의 ‘김산의 나라’님은 치안과 안보를 명분으로 실시했던 통행금지가 폐지됐을때 대통령의 정체성을 묻지 않았던 보수주의자들이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며, 민주화된 대한민국이 전체주의로 타락한 북한보다 우월하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보수세력은 ‘패배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
진보누리의 ‘꿈꾸는 사람’님은 민족해방을 주창하던 학생운동 계열마저 힘을 상실한 마당에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판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 법관들은 ‘우물안의 개구리’에 불과하다면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수구들의 최종 진지로서 이 사회에 끊임없이 수구적 인식들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사법부는 자신들의 권위와 알량한 법적 지식을 남용하여 수구적 현실인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앙일보 법제.사법마당의 ‘변형구’님은 국가보안법을 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점은 북한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느냐 아니냐 이고, 남북교류의 한편에서 서해교전과 같은 군사적 충돌이 빚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북한이 아직까지 위협적 존재라는 불신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임을 감안할 때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국보법 개폐 논란이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면, 차라리 논의를 유보하더라도 내부 갈등을 먼저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한겨레 토론마당의 ‘회색지대’님은 국가보안법이 인권침해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정권유지를 위해 악용되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과거 자유주의체제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전력을 가진 자들이 정가에 포진해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순수한 의도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과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아무런 반성없이 자유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 이들이 진정 자유민주주의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보안법 개폐논란은 비단 노무현정권 뿐 아니라 군사정권 종식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던 문제이고, 존치론자들과 폐지론자들의 주장 역시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즉, ‘폐지론자’들은 국가보안법을 냉전주의의 망령이자 군사정권의 유산으로 규정,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존치론자’들은 아직까지 북한이 우리의 ‘주적’으로서 안보에 위협적 존재가 되고 있는 만큼 국가안보 수호 차원에서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폐지론자들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과연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당사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의 체제와 헌법에 순응하는 일반 국민이라면 존재여부 조차 느낄 수 없는 것이 ‘국가보안법’인데 과연 이 법을 우리 국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이런 점에서 온 국민들의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던 ‘통행금지’를 국가보안법과 동급으로 비교한 서프 논객의 발상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물론 국가보안법이 과거 정권유지를 위해 악용되면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했고, 현재 남북교류협력법 등과 일부 상치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부분은 ‘개정’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더구나 대다수 국민들은 ‘국보법 폐지는 시기상조이며 개정이 적절하다’는데 동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심지어 집권여당의 일부 의원들조차 꺼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대통령이 사법부의 법률적 판단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까지 굳이 관철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한민국의 과거를 식민지의 역사이자 기득권세력에 의한 치욕의 역사로 인식하는 노대통령의 역사인식에 기반한 것이자 이미 오래전에 언급했던 ‘주류세력 교체’ 의지의 일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다소 논란이 있더라도 ‘밀어붙이기’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친일진상규명’이나 ‘행정수도 이전’으로 상처입은 노대통령의 자존심을 일거에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분노하게 되는 것은 노대통령이 또다시 우리 사회를 ‘편가르기’ 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국정과제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북문제 하나만 잘 하고 나머지는 모두 깽판치겠다’는 발상이 아니고서야 서민경제가 날로 피폐해지는 이때 ‘개정’만으로도 충분한 국가보안법 문제로 국론을 양분시키고, 대통령 스스로 ‘수구꼴통 vs 친북.반미꼴통’ 전쟁의 최전선에 뛰어들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보여준 ‘과거 청산’과 ‘기득권 무너뜨리기’를 위한 일념과 의지의 10분의 1만이라도 경제회복에 쏟아 붓는다면 아마도 국민들의 삶은 훨씬 더 편안해질 것입니다. 언제쯤이면 이 지긋지긋한 ‘편가르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오늘의 태양은 다시 떠오르겠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기만 한 9월의 새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