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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사 규명, 보안법, 행정수도이전 문제를 두고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서울 한복판에선 진보와 보수 단체가 하루가 멀다하고 집회를 갖고 있다. 이번 싸움의 특징은 심판이 없어 상대방에 막말을 해도 막을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 우리는 결례가 되는 말들을 쓰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식모’나 ‘운전수’가 그랬으며 ‘청소부’가 그랬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방에 대해 반말을 사용하는 것처럼 무례한 것이었다. 그래서 ‘식모’는 ‘가정부’로, ‘운전수’는 ‘운전기사’로, ‘청소부’는 ‘환경미화원’으로 바뀌었다. 또 ‘맹인’은 ‘시각장애인’이 됐다. 왜 여성에게만 탓을 돌리는 ‘매춘’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매매춘’이라고 해야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일 터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현주소가 돼야 할 정치는 어떤가.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지가 엊그제인데 국가보안법을 ‘악법’이라고 규정한다면 그 법이 헌법과 합치한다고 옹호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어떻게 되는가? 또, 같은 생각을 가진 한나라당은 어떻게 되는가? 졸지에 ‘악의 세력’이 되는 셈이 아닐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표현을 써서 ‘상극의 정치’의 실마리를 제공하니 온통 사회가 시끄럽다. 희대의 살인범에게도 인권을 존중하여 ‘○○○씨’라고 부르는 시대인데,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다고 해도 존엄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악의 세력으로 취급하면 더불어 살 수 없다. 나치독일이 그랬고, 인종청소 세력이 그랬다. 나치독일은 파괴되고 인종청소하던 사람들도 전범으로 처벌됐듯이, 상대방을 악으로 취급할 때는 따로 따로 살아야 한다. 또 그것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보안법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안법 없는 국가’를, 보안법 존치를 원하는 사람들은 ‘보안법 존치 국가’를 만들면 된다. 서명이니 궐기대회니 하며 번거로운 다툼을 할 필요도 없다.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과거사 규명을 해야 하겠다는 사람들은 ‘과거사규명국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재·미래가꾸기국가’를 만들면 된다. 행정수도 이전을 원하는 사람들은 ‘공주·연기국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울국가’를 만들면 된다. 강남을 싫어하면 ‘강남죽이기국가’를, 강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강남살리기국가’를 만들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찢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게 아닌가. 그래서 ‘반통령’이 아니라 ‘온통령’을 뽑고 축구 응원을 할 때 ‘소~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견이 다르다고 악인으로 몰아서는 곤란하다. 악인과는 절충이나 협상이 있을 수 없고 갈라설 수밖에 없다. 부부로 살다가 이혼하는 사람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서 머리가 파뿌리되도록 사느니 차라리 헤어져 남남처럼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같이 살려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써야 한다. 지금의 다툼은 하나의 선과 또 다른 선이 맞서는 형국이지, 결코 하나의 선과 하나의 악이 맞서는 상황은 아니다. 인권을 중시하는 세력과 안보를 중시하는 세력이 다투고 있고 과거를 밝혀 역사를 바로잡자는 세력과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 매진하자는 세력이 다투고 있으며, 균형 발전을 도모하자는 세력과 국가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중시하는 세력이 다투고 있는 것이다.
선과 선이 부닥치는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악으로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부디 집권층은 상대방에 대해 악법을 옹호하는 수구 세력이라 하지 말고 국정의 동반자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올바름’의 이치를 표현한 셈이 된다.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