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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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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님! 평양 장춘성당에 신부님이 안게신다는데요 ---------------------------------------------------------------------------------------------
- 聖體 없는 미사 - 본지 정운영 논설위원이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 준공식 참석 등을 위해 지난 12일부터 닷새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정위원의 방북기를 두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크리스티나 누님께. KE815 평양 10:00. 인천 공항 출국장에서 이 연동식 사인을 본 우리는 즉각 탄성을 발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파리나 뉴욕처럼 평양도 표만 사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도시라면 얼마나 좋으랴는 바람 때문이었겠지요. 저 역시 이런 미련을 안고 남북어린이어깨동무가 지원한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 준공식에 참석할 방북단 일원으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외교부 장관이 발급한 여권 대신 통일부 장관의 '방문증명서'로 출국 심사대를 통과했습니다.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본 대동강변 전경. 평양=조용철 기자 비행기는 이륙 후 56분 만에 평양의 순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방문증을 소지했지만 우리는 실정법상 반국가단체 지역으로 탈출한 셈입니다.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중에 56년이 지나도 차마 가지 못하는 누님의 처지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지만 누님이야 살아 생전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에 그 비원이 더욱 절절하지 않습니까. 이산 가족 상봉이라는 '통과 의례'로는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삶의 내출혈이지요. 평양의 서문여고라면 관서의 명문입니다. 그 학교 출신으로 일제 시대 대동강에서 스케이트를 탔다니, 누님은 재주와 미모로(!) 단연 주위의 시선을 모았을 법합니다. 의학도 C선생을 만나고 장래를 언약했을 때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하늘의 시샘인지 동족 상잔의 비극이 두 분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1970년대 이민을 핑계로 브라질로 떠난 데는 서울-평양보다 상파울루-평양이 더 가까울 것이라는 마음속의 계산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47층 건물의 양각도 호텔에서 대동강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조선은 평양이야! 누구의 찬탄대로 아침이 곱다는 뜻의 '조선'은 정말 이곳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한강은 지나가기 바쁜 강이지만 대동강은 걷고 싶은 강이었습니다. 점심으로 옥류관 냉면을 먹었는데, 식초는 사리에 치고 겨자는 육수에 풀어야 제 맛이 난다는 접대원 동무의 설명이 고마웠습니다. 식당 정원에서 바라본 초여름의 능라도는 마치 초록 비단을 풀어놓은 듯했습니다. 오늘도 그렇고 반세기 전에도 그랬을 버들이, 연기처럼 서린 실버들이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점심 이후에 모란봉 산책이 잡혀 있었습니다. 내심 은밀할 것으로 생각했던 을밀대는 유명세 탓인지 장마당처럼 어수선했습니다. 불과 5분 거리라는 부벽루로 발길을 돌리려는 참에 그만 김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성 안내원 동무가 "일정에 없습네다"라며 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천하제일강산'이라는 그곳을 그냥 지나만 가자고 간청을 거듭했지만 "안 된다"는 동무의 일언지하에 씁쓸히 돌아서야 했습니다. 누님의 추억 찾기도, 이수일과 심순애의 로맨스 더듬기도 헛일로 끝났습니다. 산천이야 의구하겠지만 인심은 간데없는 듯합니다. 일요일 아침 일정은 성당, 예배당, 단군릉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평양 시내에 절은 없답니다. 호텔에 남을 자유도 없으려니와, 서울에서의 부실한 신앙 생활도 반성할 겸 저는 성당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200석 정도의 장충 성당은 거의 자리가 찼고, 미사 예식과 기도문과 성가는 서울과 꼭 같았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듯이, 우리 민족도 손잡고 사랑을 펼치자는 강론까지는 잘 나갔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민족 공조로! 김이 샌 것은 그 다음입니다. '말씀 전례'가 끝나고 '성찬 전례'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마침 기도를 드리더라고요. 식당에서 밥을 기다리는데 요리사가 없으니 물만 마시고 나가라는 격 아닙니까. 다른 날도 아니고 성체.성혈 대축일에 말입니다. 예식을 집전했던 사람이 조선카톨릭교협회 부위원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더군요. "신부가 없어서" 성찬식은 행할 수 없고, '신부 수업생' 두 명을 바티칸에 보냈지만 "사정이 안 맞아서" 돌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변함없겠지만 말씀을 거행하는(?) 사람은 많이 변했습니다. 국보법이 미치지 않는 브라질에서 누님은 다른 이유로 북녘 '잠입'을 망설였겠지요. 나는 절개를 지키며 기다렸는데, 혹시 당신은? 상상이나마 그 끔찍한 장면을 피하고 싶었겠지요. 여든을 바라보면서 아직도 첫사랑을 그리는 누님은 인생을 보람있게 사신 겁니다. 이제 묻으십시오. 그 퍼런 멍들을 누님 시대의 기억으로 끝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부지런히 '통일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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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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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451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28| | 2004-09-20 | 박여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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