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5일 (월)
(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자유게시판

103위 성인전 8, 聖 모방 (베드로 1804~1839)2편

스크랩 인쇄

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10-10 ㅣ No.72460

...1편이어...

모방 신부는 이때부터 조선말을 공부하면서 3년 9개월 동안의 전교활동을 하면서 조선말을 배우고

 

성사를 집전하며 부활절을 한양에서 지내는 등 경기도와 충청도의 교우촌을 방문하고 200여명에게

 

영세를 주면서 방인사제의 필요함을 절감하십니다,  이에 모방 신부는 성직자 양성을 서두르시며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 최방제(崔方濟) 등 세 소년을 뽑아 천주교의 공용어인 라틴어를

 

가르치며 성직자에게 필요한 덕행을 쌓게 한 뒤, 마카오로 신학 유학을 보냅니다. 1837년에는 샤스탕

 

(Chastan, 鄭) 신부가 입국 하시자, 모방 신부는 상제 옷으로 변장하여 험학한 산길을 헤치며 

 

샤스탕 신부와 함께 공소들을 방문 하면서, 신심 깊고 덕망 높은 교우 중 한 명을 공소회장으로 세우고

 

교우들에게 필요한 지침서(교리지식, 복음서, 성인전등 읽도록)를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이분들에게

 

참기 힘들고 어려운점은 기갈과 배고품이라 합니다. 이분들이 드시는 음식물이라야 고작 소금에 절인

 

풀뿌리나 시래기국으로 본국에서 맛보던 빵과 버터, 쇠고기,생선등은 꿈속에서도 맛볼수가 없었습니다.

 

모방 신부의 이런 어려움 중에는 교우들의 가난으로 인한 생계유지는 모방 신부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면서 동정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가 없게 합니다. 교우들은 인적없는 산속에서 살다보니

 

화전을 일구고 담배나 감자를 심어 겨우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 가지만,  이마저도 새 삶터가

 

외인들에게 발각되면 힘겹게 개간한 땅을 한두푼에 팔거나 그대로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만

 

하는 비참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방 신부는 밤새도록 고백성사와 미사를 드리며

 

교우들의 안전을  각별히 조심 하도록 회장들에게 당부하십니다.. 그토록 척박함에도 이분들은

 

낮에는 흙 바닥위에 낡아 빠진 거적을 깔고 그위에 누워 비,바람을 맞으며 몇 시간 동안

 

단잠을 자고, 어둠을 틈타 또다른 산속 교우촌으로 발길을 옮겨 다녀야 합니다.

 

이러한 고난 중에도 모방 신부님을 가슴 저리도록 감동적인것은 10년,20년 동안 쌓은 죄를 고백하기

 

위해 수십리를 찾아와 고백성사를 보고 신부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즐거워하는

 

교우들의 행복스런 얼굴을 볼때면 그 어떤 고난과 시련도 다 잊어 버리셨다 합니다.

 

모방,샤스탕 두 신부님의 지칠쭐 모르는 왕성한 활동과 꺼지지않는 들불 같은 분발심은 가시는 곳마다

 

평화와 즐거움의 씨를 뿌리게 되며  거룩한 피로 물드리기 위한 조선땅을 당신의 정결한  땀과 

 

피,눈물로 촉촉히 적시어 줍니다. 모방 신부님은 1년동안 힘겨운 전교 활동으로 인하여

 

매우 허약해져 1837년 지방 전교 도중 자리에 누워 심한 열로 위독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완결편으로..  



157 18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72462 이라크 자이툰부대 홈페이지 개통|1| 2004-10-10 박경수
72461 무관심도 죄라고 하니.. 2004-10-10 이은숙
72460 103위 성인전 8, 聖 모방 (베드로 1804~1839)2편|18| 2004-10-10 신성구
72458 아버지의 공책|2| 2004-10-10 양대동
72457 김교훈 님 보세요|4| 2004-10-10 양대동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