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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2.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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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cosma] 쪽지 캡슐

2004-10-14 ㅣ No.72742

2. 고속도로

 

오늘의 세계를 '하나의 세계'라 하고, 이 하나의 세계를 가능하게한 가장 큰 원인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지구의 이쪽과 저쪽, 그리고 오지와 문명의 세계는 별개의 세계인양 서로 고립한채 떨어져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지상(地上)의 오지(奧地)와 문화(文化)의 벽을 헐었고, 거리와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져 한꺼번에 바꾸어 놓았다. 교통의 발달이라는 면으로 보면 세계는 '1일 생활권의 하나의 세계,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고, 통신이라는 이름으로 보면 이미 '1일 생활권'이 아닌 '동시(同時) 생활권(生活圈)'이 되었다.

 

고속도로는 지상(地上)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電波) 고속(高速) 도로(道路)가 우주 공간에 무수히 깔려 제한 없이 지구촌 어데서든지 쌍방 통신 왕래가 가능해진 전파정보고속도로시대이다. 앞으로 교통과 통신이 얼마나 어떻게 더 발달하여 인류 생활에 어떤 변화를 줄지에 대해서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발전의 속도가 빠르다.

 

우리나라나 세계가 이러한 세상이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바로 얼마전의 일이다. 현란하게 발달 벌전해 나가고 있는 정보 통신은 그만두고라도, 우리나라의 도처에 건설되었거나 건설되고 있는 지상의 고속도로에 대한 역사를 되돌아보자.

 

1960년대 초의 일이다. 정치적 낭만주의자로 알려진 김종필이 국내 정치의 소용둘이 속에서 밀려나 잠시 외유 중에 독일에 갔다. 그림 잘 그리고, 피아노 잘 치고, 드럼까지 처대는 김종필의 젊은 시대는 폭주족(暴走族)이었다. 포장 도로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시속 60킬로미터로도 달리지 못하던 시대에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그는 시속 200킬로미터 전후의 속도로 폭주를 즐겼다.

 

"각하! 우리나라에도 고속도로를 뚫어야 합니다."

 

요즘 대통령들은 임기 5년 동안에 한 해가 멀다고 정상 회담을 빙자하여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지만, 나라를 세운 후에 12년간 통치권을 쥐고 달러를 아끼던 이승만이나 18년간 권좌에 앉아 있던 박정희는 그리 심한 외국 나들이를 하지 않았다. 그런 박정희가 독일에 가서 보니 역시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김종필의 말 그대로였고, 우선 서울과 부산을 고속도로로 뚫으면 경부간의 산업 발전과 문화 발달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현대 정주영을 불러라!"

 

박정희와 정주영의 독대(獨對)였다. 일찍이 해외 건설에 눈을 돌렸던 현대는 그 무렵 태국에서 국제 경쟁 입찰로 고속도로 공사를 한 바 있었다. 수지는 ?추지 못한 공사였으나, 고속도로 건설 경험의 축적이라는 뼈아픈 지적(知的) 재산(財産)을 모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그런 경험을 가진 건설회사가 없었고, 보통 사람들은 고속도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마져 정립되어 있지 않을 때이며, 고속도로 건설이라면 으레히 선진 우수 건설회사들이나 하는 난공사로 알고 있었다.

 

정주영은 신이 났다. 태국에서 겪은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이번에는 우리의 힘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성공의 어머니'가 되었다. 공사는 착착 진행되었다. 국책 제1 사업이라 정부의 지원과 격려 또한 대단했다. 불철주야(不撤晝夜) 공사장에 정주영이 있었다. 찝차 속에서 잠시 잠간씩 잠을 자는 습관이 이때에 생겻다. 하늘에는 가끔 대통령 박정희가 타고 공사 진행 현장을 돌아보는 헬리콥터가 뜨고 있었다.

 

세계적인 건설회사들은 한국이 자신의 힘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니까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당시에 해낼 수 없는 공사가 바로 고속도로 공사였다. 그러나 박정희의 독기(毒氣)와 정주영의 오기(傲氣)가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뎶어냈다. 공사는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막바지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소양강 댐 공사에서도 그랬지만 정주영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경석(硬石)보다 모래나 진흙 같은 절암(節岩) 토사(土砂)와 인연이 많은 모양이다. 소백산이 가로 놓여 있는 옥천과 영동의 당재터널을 팔 때의 일이다. 터널을 파들어 가자 경석이 아니라 절암토사였다.

 

터널 공사에서 경석이 아닌 절암토사를 만나다는 것은 날벼락이나 다름이 없다. 파기만 하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수없이 장비들이 망가지고, 공사 현장에서 생명을 잃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무서워서 공사 현장에 접근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하루 10 미터의 터널을 파고 들어가기는 커녕 겨우 30센치미터를 파지도 못해서 날이 저무는 때가 허다했다. 성질이 불같은 정주영이 보아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큰 일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건설부 장관이 일주일에 한번씩 현장에 왔다. 도로국장은 3일이 멀다고 현장에 왔다. 정주영은 하루도 현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대통령 박정희의 추상같이 호된 질책이 매일 같이 장관과 정주영의 면전에 쏟아졌다. 체구(體軀)가 작은 박정희의 어데서 그런 무서운 담력과 가공할 추진력이 나오는지 장관이나 정주영으로서도 고개를 설레설레 내졌지 않을 수 없었다. 정주영이 달리는 말이었다면, 박정희는 뛰는 말에 박차(拍車)를 가하는 기수(騎手)였다. 그래도 경석이 아닌 절암 토사의 터널 공사는 쉽게 진행되지 못했다.

 

"생각 좀 해 보자. 무슨 묘책(妙策)이 없을가?"

 

현대건설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보통 시멘트보다 20배나 빨리 굳는 시멘트를 생산하여 굴을 파자마자 그 자리에 시멘트를 이겨 발라 붙이는 기상천외(奇想天外)의 공법을 채택했다.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6개월이 되어도 뚫릴 가능성이 없다던 당재터널은 드디어 3개월만에 성공적으로 뚫렸다.

단군 이래 최초 공사인 경부고속도로는 이렇게 해서 드디어 착공 290일만에 개통되었다. 박정희와 정주영과 현대와 한국민의 쾌재!였다. 멀다던 부산과 서울을 하룻만에 오고가는 시대가 개막되었다. 구름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도 단숨에 넘을 수 있게 되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서울과 부산, 그리고 그 주변 도시들은 모두 1일 생활권으로 편입되었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기술로 건설한 고속도로라고 하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7개 건설 회사가 참여했으나 이익을 낸 회사는 현대를 비롯한 몇몇개에 불과했고, 몇 개의 회사는 도산(倒産)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단가(單價)가 적었다. 공사 기간은 엄청나게 단축되었다. 착공 1년도 되지 않아 준공 테이프를 끊고 달려본 고속도로이다.

 

그 때 쯤 와우아파트가 사건이 터졌다. 서울 연희동 언덕에 세워졌던 와우 아파트가 무너져 숱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때 쯤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결이었다. 말 잘하기로 이름난 김대중 후보가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그대로 지날 사람이 아니었다.

 

"경부고속도로가 누어 있으니 말이지, 서 있었다면 와우아파트처럼 와르르! 무너졌을 것이다."

 

입 힘 좋은 김대중 후보의 독설(毒舌)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경부고속도로는 도처에 불실 공사의 흔적이 나타나, 그 후 현재와 같은 누더기고속도로가 되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건설 30 여 년이 되는 경부고속도로는 건설 비용의 몇 배에 해당하는 보수 공사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성공은 했으나 졸속(拙速)이 남긴 문제였다.

 

문제없는 성공은 없다. 특히 건설공사에서 그렇다. 경부고속도로가 아무리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여력(餘力)과 저력(底力)은 한국의 교통과 도로 사정을 바꾸어 놓았다. 호남고속도로가 뚫려 광주와 전라도가 서울과 1일 생활권이 되었고, 영동고속도로가 뚫려 강릉과 강원도가 서울과 1일 생활권이 되었다. 뿐만이 아니다. 서해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 그리고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는 세상이다.

 

서울과 평양, 그리고 부산과 신의주를 잇는 남북고속도로가 뚫릴 날도 머지 않았다. 한국에 고속도로의 건설 신화를 창조한 정주영은 아마도 하늘에서 '영혼(靈魂)의 질주(疾走)'를 통하여 이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한반도의 고속도로는 최초에 누구의 손에 의하여 이 땅에 건설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박정희와 정주영의 이야기가 또 다시 남북한에서 동시에 신화(神話)처럼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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