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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3.바닷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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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닷가
국력(國力)은 체력(體力)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체력이 아닌 능력(能力)은 어데에서 나오는 것일가. 그에 대한 해답은 정주영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고, 정주영으로부터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정주영과 바닷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1915년에 정주영이 태어난 지구상의 좌표이다. 송전리에는 송전해수욕장이라는 유명한 바닷가가 있고, 거기에서 10리 쯤 가면 정주영의 고향이 있다. 고향을 떠나 최초의 노역(勞役)을 한 곳도 인천 바닷가 부두(埠頭)였고, 부산에서 돈을 번 곳도 부산 바닷가였다. 뿐만 아니다. 죽을 뻔 했던 곳도 바닷가였고, 여생을 트럭터를 몰려 농사꾼으로 지내고 싶다고 대단위 간척 사업을 벌린 곳도 서산 천수만 일대의 바닷가이다.
어두 컴컴한 신새벽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정주영은 습관대로 차를 몰아 울산 현대조선소 공사장을 향하여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맨 날 같은 시간에 다니던 길이다. 그런데 그날 따라 이변이 생겼다. 악셀레이터를 밟자 차는 한 바퀴 빙 돌더니 허공을 날아 첨벙! 물 속에 떨어져 잠기기 시작했다. 허공에 떴을 때에 정주영은 '아하! 사람은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희미한 기억이 있었고, 물에 떨어지자마자 '어떻게든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차는 점정 더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차 문을 열려고 하였으나 수압(水壓)에 의하여 열리지 않았다. 정주영의 팔힘 발힘 등힘은 알아줄 힘이다. 그러나 발을 동동 구르고 팔을 휘휘 저어도 물 속에 갈아앉고 있는 차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차 속에 물이 가득 들었다. 이는 차 내부와 외부의 수압이 같아 짐을 의미한다.
정주영은 창문에 등을 대로 온 등힘을 다하여 밀어냈다. 꽝! 드디어 문이 열렸다. 급히 헤엄을 쳐서 물 위로 떠올라 왔으나 그 짧은 순간이 자신이 살아온 일생보다 더 길고 더 어려웠다.
풍랑(風浪)이 심했다. 그가 떠오른 곳은 부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또 죽을 힘을 다하여 파도를 이기며 간신히 부두에 접근했다. 두 팔로 부두 난간을 잡고 날 살려라! 소리칠 사이도 없이 기진맥진한 몸을 부축이며 매달려 있었다.
"누구야!" "누구긴 뭘 누구야 이놈아, 어서 밧줄을 가져와라!" "아이구 회장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리고 밧줄은 어데에 있습니까?"
기가 막힐 일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보고 밧줄이 어데 있느냐고 물어보는 경비원이었다. 그날 잠못했으면 정주영은 수중(水中) 고혼(孤魂)이 될뻔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용왕(龍王)님의 도움이었다.
"조금 나은 것이 없을가..."
이것이 사업가 정주영의 화두(話頭)이다. 자동차 수리 공장을 하다가도 좀 나은 것이 없을가 하는 생각 끝에 현대토건을 만들었고, 현대건설이라는 굴지(屈指)의 건설회사로 키운 다음에도 너 나은 것이 없을가 하다가 땅을 파는 건설업보다 쇠붙이를 용접해 만드는 조선 공업이 나을듯하여 조선 공업에 손을 댔다. 건설 사업에서 얻은 노 하우와 기술들을 이용하면 조선(造船) 공업이야말로 어찌보면 누어서 떡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울산에 조선소를 만들다가 육상(陸上)에 있는 현대(現代)라는 대궐(大闕)을 버리고 수중(水中) 궁궐(宮闕)로 들어갈뻔한 사건이다.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아 먹었다더니 사업가 정주영은 허허 벌판 사진 한 장 가지고 세계 굴지의 조선소와 겨루어 수주(受注) 활동을 벌였다. 영국에서의 일이다. 한국의 정주영이 배를 만든다니 아무도 귀를 기우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굴지의 조선사업가를 찾아갔다.
"이 돈을 보시오. 대영제국이라는 당신들은 1800년대에 조선 사업을 시작했지만 우리 한국인은 그보다 300년이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이 돈에 새겨 있는 것과 같은 철갑선을 만든 세계적인 조선국(造船國)이었소."
이 말 한 마디로 대형 선박 조선 기술이라는 엄청난 노하우를 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또 다른 굴지의 해운 선박 회사를 찾아갔다.
"배를 우리 회사에서 만드시오" "아니, 당신 회사에 배 만드는 공장이 도대체 어디에 있오?" "여기요!"
정주영은 바닷가 허허 벌판 25만 평 사진 한을 제시했다. 주문만 해 주면 이곳에 조선소를 완성하여 배를 짓어 주겠다는 배짱이었다. 배짱도 이쯤되면 배포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뱃장이고, 그 뱃장은 신념(信念)에서 나온다. 다시 말하여 정주영이 어려움을 돌파하고 나갈 수 있는 능력(能力)은 바로 이 엄청난 신념(信念)에서 나온다.
이런 뱃장 하나로 드디어 26만톤 급의 배를 건조(建造)했다. 길이 270미터에 높이 27미터의 거대한 건조물이었다. 정주영은 정말 이 배가 물 위에 뜰지, 아니면 가라앉을지, 의구심이 가득했다. 스르르르 배가 도크에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긴장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스르르르르, 드디어 배가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떴다! 찝차를 타고 물 속에 빠졌다가도 떠오르는 재주를 가진 정주영이니, 명색이 배인되, 그 배를 물 속에 가라앉히지 않고 떠오르게 하는 것은 긴장은 되었으나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었다. 현대가 조선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의 신호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송전바닷가를 바라보면 소년 정주영이 세계적인 조선소를 성공적으로 발동을 걸었다.
정주영은 다시 눈을 사우디로 돌렸다. 거기에 세계적인 주베일 항구 건설 공사가 있었다. 입찰에서 낙찰했다. 그러나 후에 정주영의 고백에 의하면 '세계적인 공사를 따기는 했지만, 사실은 그런 공사에 대한 경험은 전무한 상태였고, 지식 또한 깜깜 절벽이었다'고 회상한다. 간이 커도 보통 큰 사람이 아니다.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으면서 그 거대한 공사에 입찰하여 낙찰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는 한 치의 실수없이 완벽한 공사를 해냈다.
그는 세계적인 사업가로 성공하였지만 본시 그는 그가 말한대로 '농부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소원은 농토(農土)였다. 남보다 넓은 농토를 갖는 것이 그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 모든 농민들이 꿈이었다. 아버지의 그런 꿈이 대사업가로 대성을 한 후에도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저곳을 막아 농토로 만들자"
서해안 서산지구 천수만 간척 사업을 시작했다. 완공되면 여의도의 33배나 되는 엄청난 규모였다. 국내외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던 장비와 인력, 그리고 기술이 천수만 바닷가에 투입되었다. 공사는 비교적 쉽게 진척되었으나 마지막 마무리 공사인 물막이 공사라는 벽에 부딪첬다.
서해안은 잘 알려진 것처럼 간만(干滿)의 차이가 많고 조류(潮流)의 유속(流速)이 대단히 빠르다. 사리 때에 보면 한강 홍수 통제 시점의 유속보다 더 빠른 바닷물이 흐른다. 드넓은 바다에 만리장성(萬里長城)같은 둑을 쌓았으나 마지막 270미터의 물막이 공사가 문제였다.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였다. 수 십톤 짜리 돌을 산덤이처럼 부어도 돌은 물 속에서 급류에 휘말려 모래처럼 빨려나갔다.
"무슨 수가 없을가?"
정주영은 또 '수 타령'을 불렀다. 그 때 번쩍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앙드레 지드는 '좁은문'이라는 불후(不朽)의 명작(名作)을 써서 세계적인 문호(文豪)가 되었지만, 정주영은 '좁은문'이 아니라 '좁은구멍' 땜질이라는 아이디어로 세계적인 건설 회사의 사장이 된 사람이다.
앞에서 말한 경부고속도록 터널 공사가 그랬다. 그 좁은 구멍을 뚫기 위하여 근 속성 시멘트를 개발했다. 이번에도 세계가 발칵 뒤짚힐 정도로 놀란 정주영의 '좁은구멍'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그는 350 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고철 선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선박을 끌어다 270 여 미터의 물막이 마무리 공사장에 투입했다. 아이디어는 대성공이었다. 지도를 변경한 대역사는 이렇게 하여 마무리 지었다. 세계적인 물막이 공사 토픽과 함께 정주영은 자신이 말한대로 여생을 트럭터 운전하면서 보낼 수 있는 거대한 농토를 만들었다.
바닷가와 얽힌 정주영의 성공 스토리는 한이 없이 많다. 이곳은 정주영의 생애를 다섯 토막으로 나누어 간단하게 쓰는 곳이고, 그 세 번째 테마가 '바닷가'이다. 네 번째 터마는 '권력'이고, 다서번째 테마는 '분신(分身)'이다. 세?째 이야기 '바닷가' 이쯤에서 끝내자. 다만 서산 농장을 완성한 후에 그가 말한대로 트럭터를 몰고 여생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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