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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4.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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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cosma] 쪽지 캡슐

2004-10-14 ㅣ No.72746

4. 권력

 

재벌(財閥)에 대한 기초 지식이나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재벌들은 재벌 상호 간에 패권(覇權) 다툼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고, 정경(政經) 유착(癒着)의 실상(實像)을 모르면서 권력(權力)과 재력(財力)의 유착과 싸움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그 내막(內幕)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해가 뜨는 것을 보면 날이 밝아 낮이 되고, 해가 지면 밤이 온다는 정도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정주영과 권력의 이야기를 펼쳐볼가 한다.

 

이승만과 정주영의 관계는 밝혀진 것이 없다. 박정희와 정주영의 관계는 앞에서 몇 번 언급한 일이 있다. 그렇다면 전두환과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과 정주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박정희시대에 정주영은 포항제철의 박태준과 약간 껄꺼러운 관계가 있었고, 삼성의 이병철과도 돈독(敦篤)한 관계였다고는 평가되지 않는다. 삼성과 현대 사이에는 서로 할 말들이 있을 것이고, 박태준과의 관계는 정주영이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숙원 사업의 하나인 제철(製鐵) 산업에 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박태준은 죽어도 이 땅에 포철 이외의 제철 회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람이고, 정주영은 죽어도 철강 산업을 하고야 말겠다고 벼르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90이 넘은 이승만의 비서 출신이고, 자유당 정권의 내무부 장관 출신이며, 공화당 정권의 당의장 출신이던 고 윤치영 선생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권력의 총구멍에서 나오지 않은 재벌이 어디 있나!"

 

그의 결론을 명쾌했고, 그의 설파(說破)는 쾌도난마(快刀亂麻)였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의 말 속에는 '모든 재벌은 권력을 아버지로, 권력이 낳은 아들'이라는 뉴앙스가 풍겨 있었다. 여기에서 공개할 필요은 없지만 그는 실제로 자기가 본 그러한 실례들며 이야기했다.

 

전두환과 정주영의 관계는 앙숙(怏宿)으로 시작된다. 전두환 패거리들이 정주영을 불렀다. 가보니 거기에 김우중에 와 있었다.

 

"경제 산업 구조를 통폐합할 예정이다. 자동차를 택하던지, 발전 산업을 택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정주영은 전두환 집단의 방침을 현장에서 거부했다. 천하의 이병철이 전두환 집단의 언론 통폐합 조치 현장에 끌려가 티비시 포기에 대한 '오케이 서명'을 해주고 올 정도로 '무서운 군인들'이었던 전두환 패거리에게 반기(反旗)를 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정주영은 현대는 대우와는 다르다고 했다. 대우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업, 남들이 지어 놓은 건물을 인수하여 재벌이 되었지만, 현대는 건물 하나, 기업 하나, 어느 것도 자기 손을 거쳐 만들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런 기업체를 정부의 방침이라 하여 호락호락 내줄 수 없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무서운 아이들'의 권력을 배경으로 한 협박과 공갈을 심했다. 드디어 그도 발전 사업을 포기하였고, 자동차 산업을 선택하여 창원중공업은 대우로 가고, 대우의 자동차는 현대로 오게 되었으나, 어디 그게 말대로 되던 세상인가. 정주영은 창원중공업을 잃었으나, 김우중은 자동차를 잃지 않았다. 결국 이 통폐합인지 억압인지의 결과로 현대는 중공업을 날리고 대우는 자동차를 날리지 않았다. 권력과 재벌과 파워 게임은 이렇게 놀음판을 방불한다.

 

전두환의 대를 이어 민선(民選) 대통령이 된 노태우와 정주영의 관계는 노태우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와 현대가 소송 싸움으로 번지고, 재벌이라는 사람이 새로운 정당을 급조하여 자신이 직접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태로 발전한 것을 보면 불을 보듯 뻔하다. 노태우 퇴임을 앞두고 정주영의 '막판 대결'은 대통령 후보라는 관을 스스로 써야했다.

 

코오롱의 이동찬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나이드신 분이 권력과의 싸움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직접 대통령에 나왔겠느냐'는 기록을 남겼고, 자유당 시절과 공화당 시절, 그리고 전두환 시절을 통하여 5선 국회의원으로 야당의 원로로 있던 어떤 분은 '안 나가도 2천억을 빼앗기고, 나가도 2천억밖에 쓰지 않으니, 결국은 정 회장이 직접 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판단을 했다. 이동찬의 이야기나 노정객의 이야기나 정주영은 노태우 정권과 정경유착을 한 것이 아니라 정경대결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들이다.

 

노태우와 정주영의 대통령 선거를 통한 불화(不和)에서 부작용(副作用)이 나타났다. 그것은 엉뚱하게 노태우 이후의 대통령으로 당선한 김영삼과 정주영의 갈등과 대립이었다. 야당이라는 같은 집안에서 정치적 거물이 된 김영삼과 김대중의 대통령 되기 최후의 결전장이나 다름이 없던 선거전에 정주영이 뛰어들자, 정주영의 표는 김영삼의 표를 주로 까먹어 상대적으로 김대중에게 유리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때에 김영삼이 가는 곳마타 내뱉은 말이 있다.

 

"돈으로 권력을 사려는 것은 총칼로 쿠테타를 일으키는 것 보다 더 나쁩니다."

 

김영삼 연설의 특징은 짧은 말을 가는 곳마다 똑 같이 해대는 일이다. 이 때도 그랬다. 김영삼은 입만 열면 정주영과 돈과 쿠테타를 들먹였다. 정주영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단상에 올라서면 김대중보다 김영삼을 공격했다. 결국 김영삼과 정주영의 사이에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건설되었고, 그런 관계는 김영삼이 권력을 잡은 후에 현대그룹의 자금 압박이라는 족쇠를 채우는 감정의 씨앗이 되었다.

정주영은 자신은 정치의 덕을 보기는 커녕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큰 곤욕(困辱)을 치루었다는 기록을 남긴 일이 있다. 아마도 그 말은 사업을 하면서 한 평생을 보낸 노인(老人)의 가슴 속에 깊히 박혀 있은 회한(悔恨)의 한 덩어리가 풀어져 나온 말인지 모른다. 재벌의 막강한 재력을 배경으로 정당을 창설하여 금뱃지를 마음대로 나누어 줄 정도의 영향을 발휘한 그이지만 그 회한만은 지울 수 없나보다.

 

다른 재벌들이 자식을 정치에 입문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는 달리 정주영은 아들을 국회로 보냈다. 돈 냄새와 권력 냄새가 나지 않는 유순(柔順)한 신사풍의 정몽준 의원에 대한 세평도 있다. 그의 뒤에는 항상 아버지 정주영과 아버지가 일으킨 현대그룹, 그리고 경제와 축구라는 단어들이 따라다니고, 성급한 이들은 21세기 대권(大權) 적임자론을 펼치고 있으나, 정치 조직인 정당 배경이 없는 그에게 그런 말이 합당한지 지금으로써는 판단하기 힘들다.

 

재벌의 규모가 커지면 권력이 쉽게 재벌을 지배하기는 어렵다. 재벌도 규모가 적을 때에 권력의 입김에 넘어간다. 정주영의 현대는 이미 한국의 기업에서 세계의 기업으로 랭킹되고 있다. 현대의 정주영이 일년에 움직이는 돈과 대한민국 정부 최고 수반인 대통령이 움직이는 돈의 규모 중에 어느 것이 더 클가. 말할 것도 없이 현대의 규모가 더 크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그렇다. 대한민국 정부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현대나 삼성이나 대우가 미치는 영향이 더 어떤 면에서는 작은 단계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를 세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시대는 서서히 종말(終末)을 고하고 있다. 권력을 배경으로 재벌을 지배하려는 자와 초국가적인 재력을 배경으로 정치 권력의 지배를 받지 못하겠다는 경제인 사이에 벌어지는 아픔을 정주영과 현대는 다른 재벌에 앞서 먼저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재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지 모르나, 재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철부지 권력'을 여러 차례 겪은 일이 있기 때문에 이미 권력에 대한 위협은 별로 느끼지 않을만큼 성장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권력과 재력의 파워 게임은 끝나고 정권(政權)과 신권(神權)을 둘 다 거머쥐고 있던 신성불가침시대에서 정권과 신권이 분리된 것처럼 권력과 재력도 서로 분리되어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온다. 이미 선진국은 그런 단계에 접어들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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