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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5.분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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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분신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좀 어설프기는 하지만 '꼬레아/코리아' '삼숭/삼성' '현다이/현대' 등과 같은 외국화된 한국말들을 들을 수 있고, 실제로 삼성 제품과 현대자동자들이 심심치 않게 외국 땅의 눈 앞에 발견되어,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인 한국에서 태어난 소외감이 어느 사이에 우쭐감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 그런 우쭐감을 선사해 주는 현대자동차의 각종 차들이 아마도 지금쯤은 상륙하지 않은 나라는 지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때 대영제국의 상징인 유니온 잭이 휘날리는 곳에 해가 뜨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을 지금은 현대자동차의 바퀴가 돌아가는 곳에 해가 뜨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로 바꾸어 놓아야할 세상이 되었다.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현대조선, 현대전자.... 그 숱한 지구촌의 '현대/현다이'는 지금 천수(天壽)를 누리고 있는 한국의 기업가 노옹(老翁) 정주영의 분신(分身)들이다.
해방 후에 자동차 수리공업에 첫발을 뒤딘지 20 여 년이 되었을 때다. 그 때까지 정주영은 자동차 업계를 떠나 건설업에 열중했고, 그 동안에 우리나라에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를 도입하여 '코로나'라는 차로 조립 판매하는 신진공업이 있었다. 그 때에 정주영이 주식회사현대자동차를 설립하여 미국의 포드와 손을 잡고 '코티나'를 조립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미국 '코'쟁이들은 현대가 '코'티나를 조립하여 판매하기까지에는 약 3년이 걸릴 것으로 보았으나 정주영은 그들의 예상을 깨고 단 1년만에 차를 완성하여 팔고 있었다.
코쟁이들이 파란눈을 둘리며 놀랬다. 이어서 정주영은 미국 자동차 회사와 교섭하여 조금 더 큰 단위의 조립 생산 라인을 설치하고, 좀 더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미국 측과 구체적인 교섭에 들어가자 코쟁이들의 콧대가 어찌나 높은지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별 바보들이 다 있군!"
정주영은 그렇게 생각하고 미국 측 파트너와 헤어지며 현대자동차 혼자 독창적인 국산 자동차를 개발한다는 뜻을 세웠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의 히틀러가 국민차를 개발한다고 결심하여 그 유명한 '방개' 또는 '반딧불' 차로 불리우는 폭스바겐을 만든 것과 같이 정주영은 그 순간에 국산 제1호로 세계를 달리는 말이된 포니를 탄생하게 했다.
정주영은 그렇게 역경(逆境)을 기회로 변화시키는 기회(機會)와 역경(逆境)의 연금술사(鍊金術師)였다. 기고만장(氣高萬丈)한 포드의 콧대를 꺾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며 협상을 계속하고 포드의 저고리 자락이나 계속 붙잡고 다녔다면 오늘의 현다이자동차는 지상에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에 포드를 보고 바보라며, 독자적으로 포니를 개발한 것이 오늘의 현대자동차가 있게된 배경이다.
정주영은 참으로 희한한 인물이다. 자동차 사업을 하겠다고 울산에 터를 잡았으나 하루는 불어닥친 폭풍(暴風)과 밀어닥친 해일(海溢)로 공장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을 당했다. 천재지변이란 문자 그대로 하늘의 재앙이고 땅의 변동이라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정주영은 그런 천재지변 앞에서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격렬하게 아우성치며 현장을 독려했다. 그 땅이 바로 연산(年産) 1백만대를 능가하는 현대자동차를 생산해 내는 모태가 되었다. 어지간한 사람같으면 땅을 치고 통곡하며 하늘을 원망하며 시작한 사업을 포기할 성 싶으나 정주영은 그러지 않았다. 그 땅에 역경을 찬스로 만드는 또 한번의 연금술을 실현했다.
현대전자를 창립할 때도 그랬다. 남들은 다 앞서가는데 뒤늦게 시작한 현대전자가 그들과 어깨를 겨루며 세계로 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했다. 정주영을 받들고 모시고 조언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다.
"해보기나 했어! 책임은 내가 질터이니, 해 봐!"
이 말은 정주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멘트이다. 정주영은 자동차 사업이 잘 안될 것이라고 했을 때도 이 말을 했고, 조선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 때도 이 말을 했으며, 사우디 주베일에서도 서찬 간척지에서도 이 말을 토해냈고, 현대전자 창설 전야(前夜)에도 이 말로 전자라는 신천지에 뛰어드는 두려움에 가득찬 그룹을 독려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우리나라에 5대 재벌이니 10대 재벌이니, 재계 20위 이내니 하는 말들이 있지만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곳이 전국경제인연합회이다. 빌딩은 여의도 한복판에 우뚝 서 있고, 스카이 라운지에는 명성이 자자한 중국집이 있다.
1960년대 초에 만들어진 전경련 초대 회장은 당시 자타(自他)가 공인(共認)하던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이 경선으로 뽑혔다. 2대 회장은 경선으로 이정림이 당선되었고, 그 후 누구 누구를 거쳐 정주영이 경선으로 회장에 뽑혔다.
그런데 이 경선에 특징이 있었다. 돈이 없나, 명예가 없나, 힘이 없나, 꾀가 없나, 심뽀가 없나, 흥부 놀부가 다 있는 곳이 재계(財界)이다. 좋은 것과 궂은 것을 가릴 것 없이 없을 것이 하나도 없을 곳이 재벌들의 세상이다. 그런 재벌들의 모임에서 정주영은 만장일치(滿場一致)로 회장에 추대되었다.
확실한 이변(異變)이었다. 그러나 그 이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후 10 여 년간 정주영은 이 거대한 조직에서 연이어 다섯번이나 회장에 당선된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그 후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정주영을 보고 세상에서는 별이별 말을 다하고 있지만 정주영은 재계에서도 그런 위치를 차지한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역설적(逆說的)인 사람'이다. 내가 그를 가르켜 역설적 인간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순리보다 역리 속에 살아난 불사조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순리(順理)만 택(擇)하고 역리(逆理)를 순리(順理)로 바꾸는 기회의 연금술적 능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정주영의 분신도, 세인(世人)을 놀래게 하는 정주영의 일화(逸話)와 비화(秘話)와 신화(神話)도 없다.
삼성의 이병철과 현대의 정주영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지니스의 후계(後繼) 구도(構圖)와 창업(創業)과 수성(守成)이라는 점에서 한 가지 이들의 세계를 반추(反芻)해 볼만만 일이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유야 서로 다르지만 장자(長子) 상속(相續) 전통(傳統) 사회(社會)인 우리나라에서 이병철과 정주영은 둘 다 장자에게 비지니스 대권(大權)을 상속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병철은 생전에 하려고 했던 일들은 한국비료를 제외하면 거의 다했다. 그렇게 어려운 언론 분야까지 진출하여 전파 매체로는 동양방송이라는 라디오와 텔레비젼을 창업했고, 인쇄 매체로는 중앙일보를 창간했으며, 군부 통치자들에게 방송 매체를 빼앗기는 불운(不運)이 뒤따르기는 하였으나, 경영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그런 언론 분야를 진위(眞僞)야 가릴 수 없지만 최근에 후계 구도의 삼성이 포기한다는 설이 있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병철이 당대에 손을 대지 않은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왜 그 재계의 귀재(鬼才)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지 않았던가에 대한 의문은 지금까지 아무도 풀지 못하는 신비(神秘)의 세계(世界)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병철은 자동차 사업을 하려면 얼마던지 할 수 있는 재력과 능력이 있었고, 실제로 5.17 군사 정변 이후 전두환 경제 개혁 팀에서 그 설립하기 어려운 자동차 공장을 공짜(?)로 준다는 제의를 받았으나 그는 거절(拒絶)했다. 그렇게 똑똑한 아버지가 뛰어들지 않은 그 신비의 세계에 아들 이건희가 뛰어들어 삼성자동차를 세웠으니, 그 사업의 전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자못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병철에 비하여 정주영은 하고 싶은 사업이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이다. 다른 테마에서 잠시 언급한 일이 있는 제철(製鐵) 분야이다. 그는 지금도 모든 산업의 중심은 제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철 산업에 뛰어들려 하였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는 삼성이나 현대나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아들들이 이런 아버지의 뜻을 받들려고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근에 하동 어디에 현대제철을 짓는다고 발표하였다가, 아이엠에프니 정권 수평 교체니 빅딜이니 재계 구조 조정이니 하는 살벌한 세상이라 꽁무니를 빼는 세상이다. 이 또한 정주영의 후계자가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삼성의 자동차 산업과 함게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육체(肉體)와 정신(精神)과 영혼(靈魂)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주영, 그는 이미 인생의 석양에 산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80 노옹(老翁)이 건강하면 얼마나 건강할가. 그래도 정주영은 서러울 것이 없다. 살아 생전에 현대의 용트림을 가능하게 했던 정주영의그 무서운 정신은 정주영의 분신인 수많은 현대의 개체 개체마다에서 살아 숨쉬고 있고, 세상을 떠나도 정주영의 영혼은 현대와 함께 지구촌 도처에서 얼과 넋으로 남아 보다 나은 '인류의 앞날'을 위한 등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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