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이주일(1940~2002)
대중예술(코미디), 정치인 별칭 : 코미디의 황제,
금연운동(금연홍보대사)
자료출처 / 관련사이트 : 금연운동 이주일 팬 클럽http://cafe.daum..net/2juil
본명 : 정주일 출생 : 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 에서 출생 사망 : 2002년 8월 27일 폐암으로 사망 데뷔 : 1965,1960년 문선대에서 코미디 시작,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데뷔 데뷔일 : 1965년 학력 : 강원도 사천면 운양초등학교 - 강릉사범 병설중학교 - 춘천고등학교 -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주요수상 : 대통령 표창(1984), MBC 연기대상 최우수상(코미디 부문:1986), 국민훈장 모란장(2002) 주요저서 : 칼럼집 《뭔가 말되네요》《이주일 평전, 삐딱한 광대》 자서전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
[그의 일생]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본명은 정주일이다. 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高城)에서 태어나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에 몸담은 뒤, 1979년 텔레비전 방송에 뛰어들면서 희극배우로 이름을 얻기 시작하였다. 이후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등의 유행어로
인기를 끌면서 '코미디의 황제'라는 별칭을 얻었다.
1992년에는 경기도 구리에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교청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1996년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뒤, 같은 해 4월 방송에 복귀하였다.
1982년 연예인축구단 단장, 1988년 한국코미디연구회 창립 회장, 연예인협회 연기분과 명예위원장, 한국 BBS 중앙연맹 부총재 등을 지냈고, 폐암 투병 중이던 2002년 1월부터 금연 명예교사, 범국민금연운동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다 같은 해 8월 27일 사망하였다.
《평양 맨발》《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등 여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였고, 저서로 《뭔가 말되네요》(1985) 《이주일 평전, 삐딱한 광대》 등의 칼럼집이 있으며, 사후에 회고록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가 출간되었다.
대통령 표창(1984), MBC연기대상 최우수상(코미디:1986)을 받았고, 범국민금연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지금도 이주일은 웃고 있다
"고향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불알 친구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강원도 고성 앞 바다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고향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만류하는 집사람과 두 달을 싸운 끝에야 겨우 도착한 고향. 그러나 친구들과 바다를 보고 오히려 병이 도졌다."
지난 달 8월 27일 암과의 끈질긴 투병 끝에 끝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故 이주일(본명 정주일)씨의 자서전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가 나와 그를 아끼던 많은 사람들의 코 끝을 찡하게 하고 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깐요' 등 수많은 유행어를 남긴 '코미디 황제' 이주일. 이제 그의 그 못생긴 얼굴도, 그 천진난만한 행동도, 서푼이처럼 헤헤거리던 웃음도, 녹화 필름이 아니면 영원히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어차피 회고록을 통해 내 삶을 한번 정리하고 싶었어요. 연예인 칼럼이 전무했던 1980년대에 유일하게 내 글을 실어준 게 한국일보입니다. 그 인연을 잊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요."
회고록 연재를 약속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말에서는 화고록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겠다는 말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암과 싸워 기어코 일어서고 말겠다는 삶에의 의지가 더 강하게 숨어있는 듯하다.
그리고 3월부터 7월까지, 자신의 생을 한가닥 한가닥 갉아먹고 있는 암과 싸우며 그는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정말 최선을 다해 진솔하게 써내려갔다.
'월남비사'에서부터 한국전쟁, 딴따라 시절, 그리고 마침내 코미디의 황제가 되기까지의 힘들었던 시절의 수많은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이주일은 마치 자신을 갉아먹고 있던 암이 그 이야기들처럼 추억 속으로 흘러가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며칠 후 집에 돌아오니 몸은 더욱 상해있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벌써 5개월이 지났지만 치료에 진전이 별로 없다... 경기 분당 집 정원에 있던 고목 20여 그루도 밑동만 남겨두고 싹 잘라버렸다.
수년 전에 정주영 회장이 선물해 심은 것인데 이상하게 지난 해 정 회장이 죽고 나서 얼마 안 가 시들어버렸다. 그래도 고목 주위에 예쁜 장미를 심으면 잘 어울리겠다 싶어 그냥 놔뒀는데 얼마 전 갑자기 보기 싫어 다 잘라냈다."
그랬다. 그가 갑자기 보기 싫어 잘라낸 고목처럼 그도 밑둥만 남긴 채 그렇게 갔다. 정말 인생은 코미디가 아니라는 걸 절감하면서, 육순을 갓 넘긴 아직은 한창 젊은(?) 나이로, 인생은 60부터란 세인들의 말조차 차갑게 외면한 채로 그렇게 홀로 머나먼 저승길을 향해 조용히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영결식에서 보았던 사진 속의 이주일은 웃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자신의 상여를 바라보며 웃고 있던 이주일. 그리고 그 상여를 에워싸고 슬픈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진 속에서 그렇게 웃고만 있었던 이주일. 그가 산 인생은 그의 말대로 코미디가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이 책은 이주일이 자신의 인생역정을,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스스로 썼다는 점에서, 또한 그가 떠난 뒤 연이어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일반 추모 서적과는 사뭇 다르다. 이 책을 대하면 죽음을 앞둔 사형수, 마치 <모래시계>의 최민수가 사형대 앞에서 하던 그 말이 떠오른다.
"나 떨고 있니"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는 하춘화와의 인연-이리 폭발사고-박상규의 펑크-그로 인해 일약 코미디의 황제로 등극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정계 입문과정에서의 외압과 비화, 연예계 복귀와 암투병, 그리고 금연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카메라 플래시 불빛 속에 가려졌던 인간 이주일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유랑극단 시절 받은 그 수많은 설움과 괄시, 비인간적 대접도 모두 극복했는데 이 정도에 무너질 수는 없다. ‘코미디 황제’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이 바로 나인데 진짜 이럴 수는 없다. ‘이주일이 폐암에 걸렸다’는 보도 이후 나에게 쏟아진 애정과 관심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겠다."
(이종찬/오마이뉴스 2002-09-04)
<이주일님이 남긴 유행어와 어록>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이주일씨가 지방 공연 무대에서 내뱉은 인사말인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한번 봐 주십시오" 혹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못생겨서 연예계에 나왔으니 한번 잘 봐주시십시오. 자세히 보시면 더욱 못생겼습니다"의 줄임말. 이 말은 관객들에게 폭소를 자아냈으나 그에게는 한과 설움이쌓인 의미심장한 말이기도 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80년 2월 TBC(동양방송)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의 녹화 도중 단역을 맡은 이씨가 사회자 곽규석에게 다가가 불쑥 내뱉은 말. 훗날그는 "답답해서 미치겠더군요. 내가 나가서 그걸 하면 참 잘하겠는데 내게는 기회가주어지지 않아서 그때의 기분을 그대로 표현한 것뿐입니다"라고 술회했다.
▲"요즘 아이들이 커가니까 혼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큰애 결혼시킬 때,딸 가진 집에서 `이주일 집안과 사돈합시다'하고 기쁘게 딸을 줄까, 또 우리 딸을시집보낼 때 뉘집에서 우리 딸을 기쁘게 며느리로 맞아 갈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만약 누가 이주일네 집인데 `아이고 좋소' 한다면 나는 잘 살아온 것이고, `아이고,이주일네와 어떻게 사돈 맺어'하고 고개를 젓는다면 나는 잘못 살아온 겁니다." (87년 2월 「월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인기를 사절합니다"
80년 영동고에 재학 중이던 이씨의 아들이 친구와 싸워 병원에 입원하자 탄식조로 내뱉은 말.
▲"정치도 잘돼야 코미디도 잘됩니다" 정치와 코미디의 관계를 정의한 말.
▲"제가 방송 출연이 금지된 것은 다 중계방송을 잘못해서 그런 겁니다. 연 날리기 대회였습니다. `네 많은 연들이 날고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연들입니다. 한 년,두 년, 세 년 참으로 많은 년들입니다. 한국년, 중국년, 일본년도 있습니다. 온갖잡년은 다 모였습니다. 턱 나온 년도 있고, 까진 연놈도 있습니다…'"
(80년 8월전두환 정권하에서 방송출연이 금지됐을 때 밤업소에 출연해 펼쳤던 개그)
▲"만약 당신 집이 양조공장을 하고 직원이 50명인데 당신이 출마를 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직원들이 오지 않으면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 14대총선 당시 경기 구리시에 출마한 이씨의 유세장에서 상대방 후보가 사람들이 많이모인 것을 보고 `현대 직원들을 동원한 게 아니냐'고 말하자 이씨가 응수한 말.
▲"4년 동안 코미디 잘 배우고 갑니다"
92년 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의 공천을 받아 경기 구리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가 정계를 은퇴하면서 남긴 말.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깐여?"
밤무대 업소 CF에 출연하면서.
▲"따지냐?" "콩나물 팍팍 무쳤냐?"
▲"담배를 끊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지난해 10월 말 폐암 말기선고를 받은 뒤 금연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서울=연합뉴스)
유년시절, 그의 코미디는 늘 유쾌했다.
텔레비젼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참으로 진솔했다. 지독히 못생긴 외모때문이었을가? 어쩌면 우린 그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고,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결코 못생긴 사람이 아니고,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생을 지켜본 사람으로, 그는 분명 이시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준 희극인이었고, 우리의 친근한 이웃아저씨였다. 그의 진솔한 삶에 감명을 받으며, 그가 남겨준 그 웃음과 삶의 열정을 되새겨본다.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코미디를 펼쳐보일것만 같은 그가 그립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