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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12, 聖女 이 아가타(1823~1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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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女 이가타는 한양에서 출생 하였으며 부부성인 이광헌(아우구스티노) 권 희(바르바라 )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부모의 거룩한 순교영성의 표양을 본 받아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일찍이 동정을
지킬것을 결심하면서, 한편으로는 수계범절에 소홀하지 않습니다. 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7일
전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하는데 형조의 형관이 초기에는 좋은 말로
달래도 보고 가혹한 형벌로 위협을 가하면서 배교하기를 강요 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연약한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확고 부동한 그녀의 신념은 꺽을수가 없습니다. 당시 나라에서는
나이가 어린 사람은 목을 베는것이 국법으로 금하고 있었기에 이 아가타는 포청으로 되돌려 보내려
하자, 포청에 혼자 남는다면 마음이 약해져 배교할까 두려워 이 아가타는 한사코 부모와 헤어지기를
거부하며 눈물로 호소 합니다, 그렇지만 들어 줄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포청에서 간교한 계략으로
이 아가타에게 "네 부모가 배교하고 집으로 돌아 갔다"하는 거짓말로 배교의 유혹을 보냅니다.
그러나 아가타는 동생인 다미아노의 대답까지 대신하여 "부모님이 배교를 하였거나 안했거나
그것은 우리가 알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늘 섬겨온 천주를 배반할수 없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가 순교하고, 이어 숙부(이광렬 요한),그리고 어머니가 차례차례 목이 잘립니다.
이런 부모의 순교 사실은 오히려 아가타에게는 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아가타를 배교 시키기위한 고문은 끊이지 않지만 실로 아가타의 인내와 용기는 경탄하지 않을수
없을 정도로 굳건 합니다. 옥중에서 아홉달동안 기갈과 굶주림, 추위를 견디며 열병을 참아 냅니다.
또한 이 아가타는 무려 300회가 넘는 태형과 90도가 넘는 곤장질을 끝까지 이겨낸 것 입니다.
이러한 아가타의 의지는 하느님에대한 믿음과 확신이 부족 하였다면 감히 상상이나 할수 있을련지요.
뿐만 아니라 추잡한 간수들의 농간으로 잡범들이 갇혀있는 감옥속에 함께 투옥시키는 패륜적인
행위조차 그들은 서슴치않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하지만 이 아가타는 천주의 도우심으로 끝내 정결을
지킬수 있었습니다. 음탕한 간수들에 맞서 얼마나 힘든 투쟁을 해야했음을 시사해 주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옥에서 만난 김 데레사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을 지켜 나갑니다.
마침내 1839년 1월 9일 포청 옥에서 김 데레사와 함께 교수형을 선고 받습니다.
聖女 이 아가타는 교수형을 집행 하는 날..형장으로 데려가 이 아가타의 목에 끈을 동여 멥니다.
그런다음 양쪽에서 끈을 오랬동안 힘껏 잡아 당깁니다. 그런다음...
끈 양쪽을 말뚝에 단단히 고정시켜 놓으므로 聖女 이 아가타는 숨이 끊어 집니다.
때는 1840년 1월 9일 성녀의 나이 겨우 꽃다운 17세의 소녀였습니다.. 끝...
다음은 聖 이광렬(요한,1794~1839)편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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