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산책 - 선문염송 620칙 打睡>>
조는 분과 좌선하는 놈
“임제가 황벽의 승당에서 졸고 있는데 황벽이 내려와 보고 주장자로 판두(板頭)를 한 번
쳤다. 선사가 고개를 들어 보고는 다시 자니 황벽이 다시 판두를 한 번 치고, 다시 윗쪽으
로 가서 수좌(首座)가 좌선을 하는 것을 보고 말하되 “아랫쪽의 후생(後生)은 좌선을 하는
데 그대는 여기서 망상이나 피우니 어쩐 일인가?” 하니 수좌가 말하되 “이 노장이 무슨 소
리를 하는가?”하매, 황벽이 다시 판두를 한 번 치고 나가버렸다.”
상황은 이렇게 된 것이다. 황벽 스님이 계신 절 선방에 까마득한 쫄병인 임제가 들어왔
다. 나중에는 큰 스님이 되고 어록을 모은 ‘임제록’도 발간되어 선의 역사에서 빛나는 봉우
리가 되지만 이때는 아직 새카만 애기중에 지나지 않을 때다. 선방에는 나름의 서열이 있
다. 안거철에 동참해서 몇 번이나 참선을 했느냐가 그대로 서열이 된다. 문간에 겨우 앉
는 신세였으니 임제는 아직 참선도 얼마 해 보지 못한 얼치기라는 소리다. 이렇게 문간에
앉는 것을 하판이라고 하고 짬밥이 좀 되어서 눈치도 볼 줄 알고 장판때가 묻었다고 표현
하는 수행이력도 붙게 되면 상판이 된다. 상판이 안거기간의 전체 수행을 리드해 간다. 상
판 중에서도 지도급 인사가 되어야 수좌라고 불린다. 요즘은 그냥 선방에만 들어가면 다
수좌라고 인심 좋게 불러주지만 옛날에는 말 그대로 우두머리가 되어야 수좌라고 불릴
수 있었고 차기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겁도 없지, 아직 어린것이 선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 꼴을 황벽 스님이
내려와서 보게 되었다. 황벽 스님은 각종 선종 문헌에 참으로 거친 스승으로 기록되고 있
다. 언젠가는 “지랄병이 들려 수행하는 흉내만 내고 있다.”며 자기 문하의 제자들을 한번
에 몽땅 다 두들겨 쫓아낸 적이 있을 정도로 수행에 철저하지 못함을 미워했고 표현방식
도 난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양반이니 선방에서 수행은 안하고 조는 놈은 반쯤 죽여 놓았을 것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신호용으로 매달아 놓은 판자를 지팡이로 툭 쳐서 잠만 깨울 뿐이다. 임제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이상하다. 졸다?들켰으면 깜짝 놀라 반성하고 초
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참선해야 하는 것 아닌? 하지만 임제는 “남은
진지하게 자고 있는데 곤한 잠을 깨우려는 나쁜 놈이 누구냐?”하는 투로 잠을 깨운 황벽
스님을 흘깃 보고 다시 뻔뻔하게 잠을 청하는 것이 아닌가.
참 이상도 하지, 황벽 스님은 다시 판두를 한번 칠 뿐 임제에게 더 이상 아무 소리 안했
다. 깨워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놈이니 싹수가 노랗다고 포기한 것일까? 하지만 이어지는
일화는 그것이 아닌 듯 하다.
황벽 스님은 상판에 앉은 수좌, 자세도 근엄하게 참선하고 있는 수좌에게 공연히 시비를
건다. “까마득한 후배는 좌선을 제대로 하는데 너는 여기서 망상이나 피고 있구나.” 이 말
을 들은 수좌는 발끈할 밖에. “이 노인네가 돌았나?”하고 대드는데 황벽 스님은 다시 판두
를 치고는 나가버렸다.
앉아서 조는 놈은 좌선한다고 하고, 제대로 자세 잡고 참선하는 수좌에게는 망상을 피고
있다고 하니 이야말로 뒤집힌 평가가 아닌가. 노인네의 공연한 심술인가? 아니면 나름의
평가기준을 가진 지혜로운 평가인가. 나중에 임제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이유가 아니
다. 임제는 황벽의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대우 스님을 찾아가 쫓겨나고 두들겨
맞은 이후에야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황벽 스님이 대중에게 말했다.
“내 도반 중에 법안(法眼)이 밝은 대우(大愚)라는 분이 있는데 초막에 혼자 살기를 좋아한
다. 나와 헤어질 때에 똑똑한 제자 한명 보내달라고 했으니 누가 가 보겠느냐”
이 말을 들은 임제가 대우 스님을 찾아 황벽 스님의 말을 전하고 밤새 이것저것 질문을 드
렸다. 하지만 대우 스님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다가 아침이 되자 이렇
게 말했다. “먼 곳에서 왔기에 하룻밤 쉬어가라고 했더니 어째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냄
새나는 방귀만 밤새 뀌어대는가?” 그리고 주장자로 두들겨 쫓아냈다.
임제는 황벽 스님에게 돌아가 매만 맞고 왔다고 전하자 황벽은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
했다. “자네를 만난 것을 그렇게 기뻐했거늘 어째서 자네는 헛되이 되돌아 왔는가.” 임제
가 다시 마음을 내어 대우 스님을 찾아가니 이번에도 다짜고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
째서 다시 왔는가.”하며 다시 두들겨 패고 문 밖으로 쫓아냈다.
하지만 임제는 그냥 쫓겨나지 않았다. 황벽 스님을 찾아가 “이번에는 다시 돌아왔으나 헛
되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 방망이에 부처님의 경지에 들었습니다. 설사 백겁동안 뼈
를 갈고 몸을 부수도록 수미산을 머리에 이고 끝없이 돈다 해도 이 깊은 은혜를 보답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했다. 황벽 스님은 임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평소와 달리 이렇게 말
했다.
“그대는 우선 쉬고 다시 오너라.”
열흘 쯤 지난 뒤 임제는 다시 대우 스님을 찾았다. 대우 스님이 또 방망이를 들려고 하니
임제가 얼른 빼앗고 오히려 대우 스님을 두들겨 주었다. 대우 스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
이며 “내가 혼자 초막에 살며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 여겼더니 뜻밖에 오늘 한 아들을 얻었
구나.”라고 했다. 임제는 십여 년 동안 대우 스님을 모셨으며 대우 스님은 임종할 때 황벽
의 고마움을 잊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러므로 임제는 대우의 법과 황벽의 법을 모두 이은
것이다.
아무튼 이것은 후일담이고, 황벽이 판두를 세 번 두드리며 임제와 수좌를 가르친 것이 오
늘의 주제다. 신호용 판두를 두드린다는 것은 ‘정신 차려라’는 의미다. 그 소리에 임제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수좌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정신을 차렸는가?
화두에 정답은 없다. 있다면 화두가 아니다. 다만 나는 이렇게 본다는 자신의 견해만 있
을 뿐이다. 판두를 두드리는 그 순간 임제는 졸음 속에 있었다. 졸음에 투철했다. 눈앞에
황벽이 아니라 부처님이 오더라도, 아니 죽음이 닥쳐오더라도 임제는 졸음에 투철했기에
황벽에게서 칭찬들은 것 아닐까. 그에 반해서 수좌는 참선한다는 형식에 매여 있지는 않
았을까. 진정으로 참선삼매에 들어있었다면 황벽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흔들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진지한 수행의 와중에 누가 칭찬을 하건 비난을 하건 신경 쓸 일이 무엇
이 있는가. 수좌는 노장의 한 마디에 흔들리고 발끈했기 때문에 세 번째 판두 소리를 들
은 것이다. “정신차려 이 사람아.”
김경호 / 불교문화정보네트워크 상임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