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 (일)
(녹)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자유게시판

103위 성인전 16, 聖 최창흡 (베드로 1786~1839)완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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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11-01 ㅣ No.73894

1편에 이어...   베드로는 스스로 한탄하며 이렇게 말.......

 

"내 과거의 행실을 생각 한다면 내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치명하는 길밖에 없다,"

 

순교에 관한 그의 원의는 이렇게 간절합니다.

 

기해년 5월 박해가 치열해져 감에따라 그의 순교의 대한 열망도 더욱 굳어져 갑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의 애뜻함으로 잠시 박해를 피하기로하고

 

한양의 교회 지도자이면서 사위인 조신철(가롤로)의 집으로 피합니다.

 

하지만 최창흡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결국 그곳에서 1839년 6월에 잡혀 포청으로 압송됩니다.

 

이제 포장이 문초를 하기 위해 포장 앞에 무릎을 꿇린 다음 수차례에 걸쳐 지극히 혹독한

 

신문(訊問)을 가합니다. 신문 중에 포장이 최 베드로에게 “네가 사도를 행하느냐?" 고 묻자

 

최창흡 베드로는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진리 가운데 악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포장은 "네가 사교를 믿느냐?"

 

"나는 사교를 믿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만 흠숭하고 믿습니다." 하며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천주를 배반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나의 창조주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부터 천주학을 했느냐?"

 

"교우인 나의 부모님이 내가 어려서부터 창조주의 대한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포졸들이 웃으며 조롱하고 빈정거리며 그를 모욕합니다.

 

"여기 큰 학자가 하나 났구나." 다시 포졸들은 "이 놈은 사학의 늙은 괴수로구나" 하고

 

소리 지르며 욕합니다.  최 베드로는 일곱 번의 걸친 문초중 주리가 틀리고, 150도의 태형을

 

가하면서 같은 교인들을 대라 위협 하지만,  배교도 아니 하고 신자를 고발하지도 않습니다.

 

최창흡은 형조로 옮겨 가서도 같은 형벌과 다시 매우 혹독한 장형을 당하였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용기로 참아 내자,  마침내 사형이 언도 됩니다.

 

이제 사형 집행날이 됩니다.. 최 베드로는 형장으로 끌려가며 옥졸에게

 

“여감방에 있는 내 아내와 딸에게 내 운명을 슬퍼하지 말라고 전해 주게.

 

그것은 너무나 인성을 따른 감정이어서 진실한 신자에게 마땅치 않은 일일 것이니,

 

오히려 주님을 찬미하고 이러한 큰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잊지 말고 나를 따라오라고

 

전해 주시오.” 하고 부탁합니다. 그는 수레를 타고서도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수레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그와 같이 처형되는 교우들을 향하여...

 

“천국에서 같이 만나야 합니다,  잘 준비 하십시요.” 라는 말을 남기고

 

최 베드로는 옥에 갇힌 지 6개월 후인 12월 29일에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칼을 받고

 

주님의 품에 안깁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53세였습니다.  최창흡 베드로는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는 영광의 화관을 씁니다.

 

끝...

 

다음은 聖女 손소벽(막달레나)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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