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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늑결(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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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 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청국으로부터 받은 배상금은, 한국 전체의 철도부설권을 점차 획득하고 광산·삼림·어업·항시(港市)·온천 등에서 얻은 갖가지 이권과 함께 한국의 금수출·상무역(商貿易)까지 장악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 무렵 만주를 점령하던 러시아에 대해 영일동맹(英日同盟)을 체결한 영국과 일본이 철수요구를 하는 등 만주를 둘러싼 국제적인 관계는 더욱 미묘하게 진행되었다. 1903년 4월 러시아군이 만주의 마적과 함께 한만국경(韓滿國境)을 넘어서 용암포(龍岩浦)를 강제 점령하자 일본은 즉각 러시아의 철수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러시아는 오히려 한반도를 북위 39도선을 중심으로 분할 점령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일본 측에서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국제적인 상황 아래서 1904년 1월 23일 한국정부는 엄정 중립국임을 해외에 선포하였다. 2월 6일 39도선 문제와 만주문제로 대립하던 러시아와 일본이 국교를 단절하여 8일 뤼순[旅順]에서 첫 포성이 울렸고 이튿날 새벽 일본군이 인천에 상륙, 서울로 입성하고 10일 대러시아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러시아와 일본은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러·일전쟁의 개시와 함께 23일 일본의 강요로 공수동맹 한편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조정으로 러·일 양국의 강화회담이 포츠머스에서 열려 전문 15조, 추가 약관(約款) 2개조의 강화조약이 조인되었다(포츠머스회담). 한국에서의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한 조약은 제국주의 열강의 이권에 따라 독립국가의 주권을 무시한 것이었고 열강이 일본의 한국침략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 되었다. 포츠머스회담의 내용상 전승(戰勝)의 대가로 부족한 것을 한국에서 보충하자는 일본 자체 내의 여론은 곧 1905년 11월 9일 일본특명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파견하여 하야시공사와 주한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를 앞세우고 ‘보호’를 강행하려 하였다. 외교권 박탈을 내용으로 하는 신협약안(新協約案)은 이토와 이때 고종은 다만 ‘정부에서 협상 조처하라’고 하여 책임을 회피했을 뿐이며 한규설만 무조건 불가하다고 하였다. 한규설에 동조한 사람은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 민영기(閔泳綺)와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이었고,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을 비롯하여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등은 모두 책임을 고종황제에게 전가하면서 찬성을 표시하였는데, 이들을 을사오적(乙巳五賦)이라 한다. 이토는 강제 통과된 협약안을 궁내대신 이재극(李載克)을 통해황제의 칙재(勅裁)를 이 조약의 체결 소식이 1905년 11월 20일자의 《황성
한편 민영환은 상소로도 조약체결이 원점으로 되돌아가지 않자 유서로써 전국민에게 경고하면서 자결 순국하였고, 뒤이어 조병세, 전참판 홍만식(洪萬植), 학부주사(學部主事) 이상철(李相哲), 평양대(平壤隊) 일등병(一等兵) 김봉학(金奉學), 주영공사(駐英公使) 이한응(李漢應) 등도 죽음으로써 일본에 항거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전개되어 전참판 민종식(閔宗植)이 홍주(洪州)에서 거병한 것을 비롯하여 전라도에서 최익현이, 충청도에서는 신돌석(申乭石)이, 경상도에서는 유인석(柳麟錫)이 각각 의병을 일으켰다. 그 외 이근택·이완용·이지용 등을 암살하기 위해 개별적인 거사를 하기도 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은 주한일본공사관을 철폐하여신설한 통감부로 이양하고 각지에 있던 영사관은 이사청(理事廳)으로 개편하는 <통감부 및 이사청관제>를 통감부는 종래 공사관에서 맡았던 정무(政務) 이외에도 조선보호의 대권, 관헌의 감독권, 그리고 병력동원권도 보유하였다. 또한 조선의 시정을 감독하거나, 어떠한 정책의 시행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됨으로써 통감부는 명실공히 조선보호의 최고감독기관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1906년 프랑스 파리법과대학의 교수인 F.레이는 을사조약이 협상대표에 대한 고종의 위임장과 조약체결에 대한 비준서 등의 국제조약에 필요한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한데다가 한글과 일본글로 된 조약문의 첫머리에도 조약의 명칭조차 없이 그대로 비어 있어 국제조약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였으나 일본은 그 법적 유효성을 주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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