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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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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동 [ynin]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75057

‘김정일의 수완’
이번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간의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놀라운 수완이 승리한 결과라는 시각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김정일 세력이 한국의 집권세력에 대해 그간 집권 20여개월 동안 집요하게 실시한 ‘학습’은 집권세력이 스스로 주역이 되어 주한미군 감축결정도 모자라, 국가보안법 폐지, ‘주적없는 국군’ 등 국가안보체제의 자발적 해체를 시도하게 만들고 있다.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을 상대로 북핵문제에 관한 북한의 입장을 사실상 ‘대독(代讀)’하는 전대미문의 외교적 사건이 벌어졌다.

이것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노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강박증을 보여주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를 자기 손 안에 넣고 요리하는 김 위원장의 수완이 성공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미국은 김 위원장의 승리를 묵인했는가.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로스앤젤스 국제문제협의회(WAC) 초청 연설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며 공격용이나 테러 지원용이 아니라는 북한의 입장을 옮긴데 대해 한·미정상회담 자리를 빌려 면전에서 반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민감성을 이해한다”며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다짐하는 것으로 문제를 키우려 하지 않았다. 왜? 한국정부에 대한 불신인 것이다. 문제를 키우지 않으면서 시간을 벌어보려는 ‘전략적 융통성’일 뿐이며, 굳이 노 대통령에게 “민주적 지도자로 신뢰(trust)한다”고 언급함으로써 한국을 안심시키려는 역설적 화법의 외교적 기술을 발휘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노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데에는 한반도의 국제정치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거대한 구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 노 정권은 부시 대통령이 이 ‘거대한 구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판단해 지난번 미 대선 때 청와대 안에서 케리 후보의 당선을 고대하는 단순한 언사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실제로 케리 당선을 위해 뛰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이런 ‘물증’들을 확보해 놓은 가운데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이런 노 정권에 대한 불신의 연장선 위에서 미국은 지금 “적의 친구는 적”이라는 시각을 갖고 노 정권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내심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 정권은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한국 내부와 미국을 상대로 ‘모험주의적 시도’를 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4대 입법을 모두 통과시킴으로써 우파세력이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저항할 수 있는 역량과 수단 모두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남북정상회담에 동의하지 않으면 한국이 북쪽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미국이 불리해진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좌파세력이 노도처럼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사회 분위기도 일거에 그쪽으로 넘어간 뒤 내년 3월말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여기에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경천동지할 내용’이 포함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상황만 가능해진다면 내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는 물론 여권에서 말하는 ‘20년 장기집권’을 위해 탄탄대로가 열릴 수 있다고 노 진영에선 보는 것 같다. 그렇게만 되면 노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고, 김정일은 가만히 앉아 모든 것을 얻는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런 ‘모험주의’가 남북정상회담 추진 배경의 하나로 보이기 때문에 미국은 지금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미국이 속이 쓰리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위치’의 한반도가 예컨대 ‘연방제’로 가는 격변의 상황을 미국이 용납할 리는 없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김정일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을 방관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모험주의다. 미국은 노 대통령에게 “김정일이냐 미국이냐”를 물어볼 날이 곧 오게 될 것 같다. 노 정권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미국에 대한 ‘위험한 도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윤창중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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