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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諡福諡聖) (이강길 파비아노 형제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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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人 공경의 유래는 초대 교회 때부터 순교자를 공경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聖人은 일반적으로 지혜(智慧)와 덕(德)이 뛰어나, 길이 본받을 만한 사람을 일컫는 호칭으로
세속명으론 "영웅"이라 할수있을 겁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호국영령,
독립투사(義士), 민주열사,등 이러한 분들을 우리는 영웅으로 부릅니다)
가톨릭에서는 천국에서 하느님을 직접 뵙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거룩한 자를 말 합니다.
또한 이분들은 하느님께 대한 영웅적인 덕행을 실천한 자들로 교황님의 교령(敎令)으로 성인품위에
올렸음을 선포하여 현세의 모든 신자들이 귀감과 존경심으로 섬길 수 있도록 한것입니다.
성덕(聖德)이 높은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통하여 기적을 나타냅니다.
그러한 기적을 두 번 이상 일으킨 대상을 일차적으로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것을 시복(beatification),
다시 두 차례의 기적이 일어나 심사 후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을 시성(諡聖)이라고 합니다.
이런 절차를 걸쳐 시복시성(諡福諡聖)되신 분이 성인(聖人)이 되신 겁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 드리자면 성인 품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생전에 삶을 훌륭하게 삶으로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섬김을 받는 경우와.
두번째로는 박해자로부터 핍박을 받고 치명한 순교자들은 기적 심사가 면죄되는 경우입니다.
첫번째, 예로는 얼마 전 시복되어 복자 품에 오르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예에 속합니다.
두 번째 예는 한국103위 성인을 들 수 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두 차례의 기적을 인정 받으셨습니다. 이분의 생전 업적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로
18세에 인도 켈커타 에서 활발한 선교 사업을 벌렸던 분으로 1950년에는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창설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살기 위해
인도에서 평생을 배 고프고, 헐 벗고 집 없는 사람과 불구자, 맹인, 쓰레기통에 버려진 핏덩이들,
그리고 벌레에 피부가 좀 먹어 가는 나환자들을 돌보는데 일생을 바치며 사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 들에게 기적같은 사랑을 베풀었던, 그분의 봉사는 종교나 인종,
나라와는 상관없이 세계인들을 감동시키는데 충분하였습니다.
생전에 배푸신 용감한 선행의 업적과, 그의 타계 후 1년 뒤에는 치유의 기적이 일어 납니다.
복부 종양으로 고통받던 인도 벵골 출신 여성 모니카 베레사(당시 30세)가 1998년 9월 기적의 날
테레사 수녀의 사진에서 빛을 보고 다음 날 아무 고통 없이 치유됨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 번째 기적인 “치유의 기적”으로 교황청이 인정하여 승인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데레사 수녀는 두 가지 기적을 모두 인정받아 마침내 2003년10월 시복 되어 복자 품에 오르신 겁니다.
테레사 수녀는 로마 가톨릭 교회 근대사에서 최단 기간 내 시복 되신 분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 다음 두 번째 부류는 우리나라 103위 성인들입니다.
성인(聖人)들은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 한 가지로 박해 자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이분들은 핍박하는 자에게 가장 능동적이고, 극적인 방법인 순교로서 하느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치명한 순교 자체가 기적으로 인정 받았다는 것입니다. . ...순교(殉敎)란 무엇일까요? 순교(殉敎)라 함은 곧 죽음 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음 중에는
여러 죽음이 있겠지만. 그중 순교적 죽음은...우선 육체적 생명의 온전한 죽음이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그의 죽음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증거로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신앙 때문에 박해 자로부터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 당사자가
자신의 죽음이 그리스도인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기 위함임을 잘 인식하고
본인 자유의지로 기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순교자들은 왜 배교를 그토록 거부하고
치명을 자초하여 순교의 길을 택했을까요?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목숨만은 부지하기 위해 잠시 배교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았던 겁니다.
오직 죽음으로서 하느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분들은 하느님 진리에 대한 공적 요소인 구원에 대한 확신이 중요한 순교의 정의임을 아셨으며
박해 시대에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한다는 것은 최대의 영광임을 알고 계셨던 겁니다,
이에 교황께서 순교자들의 거룩한 성품을 찬양하고 덕행의 위대성을 인정하여,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인의 호칭을 사용토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고난과 험난한 과정을 통해서 시복시성(諡福諡聖) 의
절차가 이루어져 마침내 한국 교회에는 103위의 성인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순교자 126위(증거
자 두분포함. 최양업 토마스. 김범우 토마스)의 시복시성(諡福諡聖)을 추진하는 청원 사업의 일환으로
그동안의 순교사를 비롯하여 감추어 졌던 관변 자료등을 확보하여 교황청에 접수하여 심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 내에서는 전 교구의 혼연일체와 신자들의 지속적인 순교자 현양 사업을 통해
그분들의 시복시성이 하루빨리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간구 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강길 형제 님의 질문중 우리 나라는 왜 한꺼번에 103위 성인이 탄성 되었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는 이렇습니다. 한국 교회는 창설 초부터 100 여년 간 숱한 박해를 받는 가운데 1만명
내외의 순교자를 통해 눈부신 양적, 질적 성장을 해왔습니다. 이들 순교자 가운데는 1839년 기해박해
(己亥迫害)와 1846년 병오박해(丙午迫害) 때 치명한 분중 79위가 1925년에 복자(福者)로 시복(諡福)되
었습니다. 그후 다시 병인박해(丙寅迫害,1866) 순교자 가운데 24위가 1968년 복자(福者)품에 오릅니다.
이렇게 한국의 순교자들은 동일한 사건과 장소 등. 즉, 하느님의 종들이 같은 박해 동안,
곧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순교를 하였던 겁니다. 또한 같은 장소인 조선 땅에서 죽었다는
조건이 충족 되었으므로, 하나의 단일 안건으로 묶어 시복시성 사업을 추진하였던 겁니다.
이러한 동일한 순교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준비하여 교황청 교구법원 예부성성(禮部聖省)에 자료를
제출하자 엄중히 심사후 박해 자들의 핍박으로 인한 순교가 동일한 사건의 사실임을 가당하다고
인정되어 103위라는 많은 성인이 한꺼번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겁니다. 마침내 1984년 5월6일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님을 모시고 장엄한 103위 성인 선포식을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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