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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모습은 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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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모습은 장미
십자가를 안테나로! 예일 대학의 윌리엄 펠프스 교수는 상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호텔, 이발소, 상점에 들렀을 때조차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곤 했습니다. 상점의 여점원에게는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든지, 이발사에게는 하루 종일 서있자면 다리가 퍽 피곤하겠다든지, 지금까지 대략 몇 명 정도의 사람의 머리를 깎아 주었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또 가끔씩 물건을 옮겨다주는 인부에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 인부는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곤 했는데 뒤돌아서 가는 그의 발걸음은 유난히 힘차 보였습니다. 이렇게 펠프스 교수는 자신의 작은 관심이 만나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활력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펠프스 교수는 기차 여행중 식당칸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차내는 대만원이어서 가마솥처럼 뜨거웠고 많은 주문을 받는 웨이터들은 불친절했습니다. 따라서 펠프스 교수가 자리에 앉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한 웨이터가 메뉴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펠프스 교수는 웨이터에게 무심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은 저 뜨거운 조리실에서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에겐 더더욱 견디기 힘든 날일 듯 싶군요." 그러자 잔뜩 찌푸린 웨이터의 표정이 스르르 풀리더니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대개 손님들은 이곳에 오셔서 음식 맛이 나쁘다, 서비스가 나쁘다, 덥다 등 불평만을 말씀하시죠. 제가 여기서 일하는 19년 동안 가마솥 같은 주방에서 일하는 조리사를 걱정해주신 분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어서 가서 조리사에게 선생님 얘기를 들려 줘야겠어요. 아마 좋아할 것입니다." 웨이터는 휘파람을 불며 주방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펠프스 교수의 입가에도 잔잔한 웃음이 맺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칸을 나왔을 때 펠프스 교수의 마음은 왠지 가벼웠습니다. 뜨거운 훈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뇌리에는 이런 중국속담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장미꽃을 바친 손에는 언제나 남은 향기가 있느니라.” 위의 이야기는 언젠가 이 게시판에서 읽은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지난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역사상 최대 규모중 하나로 기록될 50여만 명의 ‘반이민법’ 반대시위대 동원에 스페인어 라디오 방송의 디스크 자키(DJ)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번 시위는 그동안 불법 체류자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오던 LA 대교구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에서 지난 2월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난해 12월 로저 마호니 추기경이 구성한 반이민법 대책기구에 어바인 캘리포니아주립대(UCI)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제시 디아즈와 언론인 하비에르 로드리게스가 가세했고 이들은 대규모 시위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1천만~1천200만명의 불법 체류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시위가 제격이다"고 결론을 내렸고 거대 노종자 조직이나 시민권 기구 등이 불참했지만 계획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2일 대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들은 정치권과 스페인어 언론 매체의 동참을 호소했고 13일 스페인어 TV인 KMEX에서 반이민법 문제점을 다루자 디아즈와 로드리게스는 15일 KBUE FM라디오를 방문, DJ인 리카르도 산체스에게 DJ들이 나서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에 산체스는 ‘새롭다’는 뜻의 `La Nueva' FM 방송의 에디 소텔로에 이 사실을 알렸고 소텔로는 본격적으로 DJ들을 규합하기 시작, 마침내 20일에는 주요 스페인어 방송 DJ들이 한자리에 모여 라틴계의 시위 동참을 적극 독려하되 ‘평화적인 시위, 시위후 거리 청소, 성조기 지참’을 강조키로 했습니다. 이 ‘장미작전’에 동참한 DJ들은 LA지역 라디오 방송중 최고 청취율을 달리면서 `엘 피올린(지저귀는 새)'으로 불리는 소텔로와 스페인어 방송의 하워드 스턴으로 유명한 레난 `엘 쿠쿠이' 알멘다레스 코에요, KHJ의 움베르토 루나, KBUE의 리카르도 `엘 만드릴' 산체스 등이었습니다. 아무튼 라디오 방송의 DJ들이 ‘장미작전’으로 틀어준 평화의 노래 즉 “그대 모습은 장미”가 효력을 발휘하여 50여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평화시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지난 27일 미 상원 법사위에서 1,2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을 합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시민법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포괄적 이민법안’이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내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않은 상황이라 불법 체류자들과 이민자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방송국의 DJ들에게 “그대 모습은 장미”라는 곡을 계속해서 신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홍세화님의 글과 미국내 불법이민자들이 노동 악조건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 ‘빵과 장미’,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 빵과 장미 > 갑자기 나도 주위에 아무도 없는 이주노동자의 처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처지에 변화가 오리란 전망이 보이지 않았던 때, ‘빵(생존)’에 대한 불안감은 ‘장미(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할 겨를조차 주지 않았다. 실상, 이 세상사람 그 누구도 빵 없이는 자아실현은커녕 그 어떤 장미도 가꿀 수 없다. 수많은 사회구성원들이 빵 걱정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소비는 미덕”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그러나 빵(생존)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우리가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까닭은, 빵이 장미의 조건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빵에 너무 집착할 때 장미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을 놓쳐선 안되기 때문이다. 물신이 하늘을 찌르는 천박한 사회에서 작은 빵으로 만족하면서 장미를 가꾸고자하는 사람들은 그 작은 빵조차 얻기 어려울 만큼 소외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는 한편으로 이미 거대한 빵을 소유한 사람들은 더욱 거대한 빵에 집착하여 장미 가꾸기와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공고히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했는데,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탐욕’까지 ‘미덕’으로 칭송한다. 효율과 경쟁의 이름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각축장에서 승리하여 배부른 동물이 되라고 부추겨 인간의 존엄성이나 연대 의식은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국가 부문의 축소를 강력히 주장한다. 사회보장 부문에도 자본 침투를 관철시키고 공기업의 사유화 등으로 공공 부문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든다. 사회구성원들은 더욱 장래에 대한 불안에 떨게 되고 그 불안과 두려움은 다시금 ‘홀로서기’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요구에 스스로 귀화하게 하는 효과를 거둔다. 그리하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이 사회구성원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부문은 보험, 의료 부문 등에 머물지 않고 더불어 사는 인성 교육에 힘써야할 교육 부문에까지 미치고 있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부문에서도 장미 가꾸기는 실종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큰 획을 차지했던 어느 대기업 노조의 위원장 선거에서 후보들은 서로 “내가 위원장이 되어야 더 많은 성과급을 회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이엠에프 이래 구조조정의 칼날은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공고히 하는 대신에 그것을 근저에서부터 허물어 빵 확보를 위한 개인 이기주의를 집단 속에 용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위에 자본의 전통적인 노동 분열 구조인 남성/여성,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내국인/이주노동자의 구분과 차별은 더욱 관철되고 있다. 그와 같은 차별과 불평등에 연대 의식과 인간의 존엄성의 이름으로 맞서 싸워 마땅한 대부분의 남성, 대기업, 정규직, 내국인 노동자들이 눈을 감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하지만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람시의 말은 언제나 유효하다. 남미 출신인 미국 대도시 미화원들의 투쟁을 그린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와 현대자동차의 밥짓는 아주머니들의 투쟁을 그린 “밥. 꽃. 양”은 ‘가난한 빵’만이 아름다운 장미를 가꿀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홍세화님의 글중에서)
<영화 ‘빵과 장미’> 미국의 어느 도시건 빌딩 청소부들 중에는 단 몇 분 지각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당하는 테레사가 있고, 남편이 당뇨에 걸렸지만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로사가 있다. 그들 대부분이 중남미에서 ‘빵과 장미’를 꿈꾸며 국경을 넘어왔건만, 현실은 그들에게 빵조차 아끼는 실정... 덕분에 취직을 시켜준다는 허울 좋은 명목 하에 첫월급을 커미션으로 떼어가거나, 단체 행동의 주동자를 불지 않았다고 부당해고 하는 중간 관리자를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불법 이민자들의 현실을 직설적인 가사(사장과 싸우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에 담아 담담하게 노래로 들려주거나, 시위 도중 경찰서에 연행되어 가서도 남미의 혁명 영웅들의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말하며 낄낄거리는 모습을 담는 등, 기존 그의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유머러스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노동운동가 샘과 마야의 로맨스가 더해지면서 <빵과 장미>는 도식적이거나 딱딱한 선동적 영화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획득한다. 이 영화는 결말 부분에서도 과장된 절망이나 허무맹랑한 희망 대신 평범한 사실 하나를 제시한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회사측에서 받아들이는 감격스런 장면에서, 정작 주동자인 마야는 절도죄로 미국에서 추방당한다. 현실은 딱 여기까지인 것이다. 하지만, 차에 실려 나가는 그녀의 모습엔 어느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으며, 배신자라고 욕했던, 하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한 언니 로사와도 화해하고, 조합원들은 그런 로사를 감싸 안아줄 넉넉한 마음을 내 보인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인 것이다...
<장미의 기도> 피게하소서 주님 당신이 주신 땅에 가시덤불 헤치며 피흘리는 당신을 닮게 하소서
태양과 바람 흙과 빗줄기에 고마움 새롭히며 피어나게 하소서
내 뾰족한 가시들이 남에게 큰 아픔 되지 않게 하시며 나를 위한 고뇌 속에 성숙하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당신 한 분 믿고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마음 가다듬는 슬기를 깨우치게 하소서
진정 살아있는 동안은 피흘리게 하소서 죽어서 다시 피는 목숨이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 중에서- <성서묵상> 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마태 25,44)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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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389 | 옛트라피스트수도원,권위|1| | 2006-03-29 | 김진록 |
| 97388 | 영혼의 샘터(사회교리)직장사목부|1| | 2006-03-29 | 조성봉 |
| 97387 | * 그대 모습은 장미 *|26| | 2006-03-29 | 이현철 |
| 97382 | 역대기상2:25~55(유다 지파) | 2006-03-29 | 최명희 |
| 97381 | 매일미사 (4월13일) ~착오가 있습니다.|1| | 2006-03-29 | 한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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