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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장신부님의 빛과 소금을 읽고...(2) 북한선교는 어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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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한 [johnpark] 쪽지 캡슐

2006-03-29 ㅣ No.97390

앞서 정책적인 면을 김태우 형제님의 반박글을 통하여 조명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가톨릭...종교적인 측면에서 북한 어떻게 하여야 하나...

종교적인 측면이니까 당연히 우리의 과제는 선교라 하겠습니다.

과거에 이 게시판에 한번 올려졌던 윤종관 신부님의 글이 생각나서 올려 봅니다.

 

앞서 이글이 올려 졌을때도 소감을 올린 것 같은데 우선 신부님의 글 부터

음미해 보셨으면 합니다.

 

서울 대교구에서 사순 4주 주보로 장긍선 신부님의 글을 올려 주셨으니

이 가톨릭의 앞문 싸이버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자게에서 그 주제를

지성인답게 오손 도손 논의 하는 것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거친 말씀 혹은 왜곡되게

빨갱이 등등 하지 마시고 진지하게 경청하였으면 합니다.

 

이글은 북한 선교회가 아직 거창한 이름의 민족 화해 위원회로 바뀌기 전에 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아마도 이름이 바뀌면서 모스크바 유학파?들이

묻지마 퍼주기 식으로 선교 방침을 바꾸시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물론 모스크바 파라 제가 경멸하는 뜻으로 쓴 것 아닙니다.

미국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돕고 장려하는 것은

졸업하게 되면 당근 미국파가 된다는 기대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 실제 유학생들이 자연 그리 되었다는 것을 공평히 논평하며 사실을

적시하는 차원에서 언급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정권도 바뀌었으니 주교회의 분위기도 자연 그쪽으로 기울었으리라는 것

짐작이 갑니다. 잘 못 된것 없습니다.

차라리 잘되면 그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앞서 예고 한 것 처럼 부활절을 기해 조그만 모임 가지려 합니다 (신부님께

청원 중입니다). 첫번째로 북한 선교 문제를 다룰까 합니다.

 

형제 자매님들의 고견 혹은 소감문 기대해 봅니다.

그냥 감상하셔도 좋구요.

 

 

북한선교의 과제
작성자   윤종관(gabie)  쪽지 번  호   83836
작성일   2005-06-18 오후 7:01:40 조회수   188 추천수   15

이번주간 우리 교회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면서, 그리고 특히 내일 주일미사를 '남북통일 기원미사'로 봉헌하는 입장에서 아래와 같은 저의 13년전 글을 교회 형제자매님들께 드려봅니다. 1992년도에 당시 대전교구 사목국장님(당시 유흥식 신부님 : 지금은 대전교구장 주교님)의 당부에 따라 대전교구 구역반장 교육 강사로서 강의하고 대전교구의 구역반 모임 교재에 그 개략적 내용을 게재했던 원고입니다. 이 원고에서 본문은 원문 그대로이고 밑에 첨부한 각주는 약간 고치고 덧붙인 것이 있습니다. 게시판의 형제자매님들께서 이번주간의 기도를 하실 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어드리기를 바라면서 여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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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선교의 과제


윤종관 신부 (대전 대동 본당 주임)

1992년 9월 / 대전교구 구역반모임 교재 제84호 3-4쪽



1. 교회의 관심


금년(1992년) 3월에 있었던 주교회의 춘계 총회는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Directorium Pastorale Coreae)’를 확정하여 교황청에 이에 대한 인준 신청을 하였다.1) 이 사목지침서(안)의 200-203조에는 한국교회의 공식적 관심과 지역 교회법적 규범으로 북한선교의 의의와 포괄적 활동지침을 천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분단된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면서 민족의 평화통일에 대비하여 북한교회의 부흥과 북한동포의 복음화를 위한 사목적 역량을 갖추는 교회의 활동”을 ‘북한선교’라고 정의하고 있고, 그 활동 방안으로서 기도와 사랑의 나눔 운동과 홍보 및 신자교육과 관련연구소 설치, 통일대비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활동방안을 실행하기 위하여 매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행사를 하며, 교구마다 북한선교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선 사목현장에 그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장려하고 있다.

위와 같은 시목지침서(안)가 교황청의 인준으로 발효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일선 사목현장(본당 단위)에서 북한선교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리라고 전망하여 볼 수가 있다. 이런 전망이 사목지침서라는 법률적 선언문항에서 그 실현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이어서는 무의미하여진다. 그럴 경우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교구적으로도, 본당적으로도 각 구역 반별로도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그러한 구체적 활동에 대하여 사목지침서라는 규범은 합법성을 뒷받침하여 주는 것일 뿐이다. 요는 교회와 신자들이 무엇인가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교회가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하긴 하였지 않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 그렇다면 과연 하여온 일이 어떤 것이었나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 반성할 점


우리 민족의 반쪽을 위하여 그리고 그 반쪽의 복음화를 위하여 교회가 과연 어떠한 일을 어떻게 하여왔는가? 이것은 우선, 우리 민족의 분단비극에 관한 교회의 역사적 관심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나를 반성하여 보는 것으로써 솔직한 답을 얻으리라는 전제를 요청하는 질문이다. 교회가 반성할 점을 자세하게 모두 나열할 지면이 부족하기에 개략적으로 아래와 같이 가장 중대 사안이라 볼 수 있는 몇 가지를 들어 본다.


(1) 민족분단 이전의 암울했던 시대에 교회는 민족 사랑의 일에 소극적이었다. 물론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박해 기간에 신앙의 선조들이 복음으로 우리 민족의 잠을 깨우고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하여 순교로써 투신했던 적극적 역사를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초기를 제외하고는 그 후 전반적으로 민족 자체적인 투신의 역사가 아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단적인 지적을 하자면 서양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을 기점으로 하여2) 교회는 우리 민족의 고뇌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지 않고 교회 자체의 고뇌에만 집착한 역사를 걷게 되었다는 점이다.3) 이 점은 용기 있는 서양 선교사들의 순교 역사를 과소평가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교회가 그 제도적(교계적) 속성의 바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한계성을 역사적으로 표출하였다는 근원적 관점에서 반성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말기에 신교(信敎)의 자유를 얻은 후에도4) 이 나라 민족 전체의 고뇌를 파악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그 후 일제의 강점 시기에도 이 민족의 해방운동 노선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교회가 되지 못하였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교회가 일제 말기에는 일제의 침략정책에 협조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러한 부끄러운 교회의 역사를 반성할 수 있을 때에 오늘의 분단 반세기 상황에서 교회는 자신의 투신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2) 1945년 해방 이후에 교회는 민족 일치를 위한 노력을 실제적으로 소홀히 하였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해방 이후 주변 강대국(특히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단 정책과 더불어 민족 내부의 정치 집단간 좌우 혼란 시기에 교회는 교회 본연상 반공정책의 강력한 추구자 노릇만 하였을 뿐 민족적 일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북을 버려둔 채 이남 만의 단독정부 수립 지지만 하였다. 그 후에 실제로 교회는 이북을 망각하고 이남 안에서만 ‘한국교회’의 실체가 건재한 듯 반세기를 살아온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점을 반성할 줄 알 때에 민족일치를 위한 투신을 향하여 교회는 의식을 찾을 것이다.


(3) 민족분단의 현실 속에서 교회는 아직도 안이한 모습이라는 자신의 실상을 깨우쳐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복음 선포는 늦장부릴 일이 아니다. 기다렸다가 여건이 호전될 때에 가서나 할 일이 아니다. 이북의 형제자매들을 찾아갈 일이 정치, 사회적으로 가능해질 때에나 할 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루가 9, 3 참조). 우리는 이북 당국이 신교(信敎)의 자유를 허용할 때에나 혹은 그쪽 공산정부가 망하고 통일된 후에나 복음 선포하러 갈 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아닌 서양 선교사들도 모든 악조건 하에서 조선에 잠입하여 복음을 선포했음을 그분들(순교 성인들) 앞에서 오늘의 교회는 반성해야 한다.


3. 하여야 할 일



앞서 제시한 ‘교회의 관심’ 항에서 지적했듯이, 교회가 사목지침서라는 법규 선언을 한다 해서 일이 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아니 된다. 구체적으로 지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앞에 제시한 반성꺼리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곧바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지면이 부족하여 다 적을 수 없기에 간략하게 아래와 같이 우리들이 할 일을 제시하여 본다.


(1) 우선 북한선교의 과제란, 교회의 웃어른들(교계적 상부)의 지시만을 기다려서만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5) 복음 선포는 제도가 명령하는 일이 아니고 복음 자체가 명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권에서도 실천적 의지를 지녀야 되겠지만, 평신도로부터 성직자, 수도자 등의 자발적, 자생적, 주체적 소명으로 모두 북한선교를 위한 기도와 행동을 해야 한다.


(2) 반세기 동안 이북에 한 명의 비밀선교사를 파견한 일이 없다면 민족의 역사 앞에 한국교회는 죄를 지은 것임을 새롭게 인식하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비밀 선교사를 파견하여 이북 형제자매들에게 성사를 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6)


(3) 반세기 동안 이북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실제적으로 선교 자금을 보낸 일이 없다면 민족의 역사 앞에 이 또한 한국교회는 죄를 지은 것임을 자각하고, 지금이라도 헌금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서 그것을 이북에 보내야 한다. 그것이 직접 이북 형제자매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보내야 한다. 통일 전의 서독 교회는 수십 년 동안 동독 교회에 헌금을 모아서 보냈음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7)


(4) 교회는 공산주의자들을 적대시 하지 말고 인내롭게 대화하고 우선적으로 민족의식에 따라 기회를 다각적으로 찾아야 한다.8)


(5) 황해도는 서울 대교구 지역이고 휴전선 이북 강원도는 춘천 교구 지역임을 간과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교구 현황 등에 이북 교회를 매년 새로 파악 표기하고, 이북의 옛 본당에 대한 주임신부를 임시로라도 임명하여야 한다.9) 이것은 지금까지 이남의 교회만을 ‘한국교회’인 듯 잘못 생각했던 것을 깨우치고 의식전환을 하자는 뜻이다.


(6) 이남의 각 본당은 통일 후에 이북에 성당 하나씩 세울 계획으로 지금부터 자금 확보를 해나가야 한다.10)


(7) 통일 후에 이북 형제자매들이 이남의 성당 규모나 이남의 신자들이 사는 생활모습을 보고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가난한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8) 이북의 실상에 대하여 정부의 발표 자료만 믿을 것이 아니고, 교회와 민간 개인 차원의 연구 노력을 하여야 한다.


(9) 이북 형제자매들과의 접촉 시도를 외국(혹 교포들)을 통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이남의 교회가 직접 접촉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11)


(10) 국가보안법 등, 이남의 체제가 민족 화해를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도록 교회와 신자들이 앞장 서야 한다.12)

 

---- 아래 각주

1)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안)에 대하여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장관 요세프 톰코 추기경 명의로 1995년 1월 23일부 인준서한(Prot. 2188/92)이 당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문희 대주교에게 발신되었고, 이에 의거하여 동 지침서에 대하여 동년 부활절인 4월 16일에 이문희 대주교는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교령 제95-50호로 동년 성령 강림 대축일인 6월 4일부로 사행을 선포했다.

2) 1831년 조선교구(대목구) 설정으로 프랑스의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교계제도적인 한국교회를 맡게 된 시점을 뜻한다.

3) 당시 박해 하에서 교회 자체는 박해를 헤쳐 나가는 일이 가장 급선무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4) 1886년 한불통상조약으로 완전한 신교의 자유를 보장 받았다.

5) 교계제도의 뜻을 거스르자는 뜻이 아니다.

6) 여기서 ‘비밀선교사’란 마치 19세기에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국 정부의 승인 없이 비밀리에 밀입국(?)하여 선교했듯이 북한에도 남한 교회가 비밀리에 사제들을 파견할 의지가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혹 그런 사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하여 공개적 및 공식적인 발표를 할 수 없겠지만, 그런 사실이 전혀 없었다면 차후 역사 기록에서 부끄러운 과거로 비판 받을 것이라고 본다.

7) 실제로 서독 교회는 ‘Bonifatius Verband'라는 기구를 통하여 동독의 교회를 위한 지속적 지원을 했다. 그것을 동독의 공산 정부의 승인된 통로를 통하여 전달되도록 했기 때문에 이른 바 ’배달사고‘가 많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실제 동독 교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의의를 삼으면서 지속함으로써 동독교회를 유지토록 공산정부에 대한 일종의 압력의 효과도 있었다는 증언을 필자가 통독 전의 현지에서 들은 바 있다.

8) 그렇다 해서 필자가 공산주의에 동조하자는 뜻이 아니다.

9) 황해도는 실제로 서울 대교구이며, 평양교구와 함흥과 덕원교구 및 연길(연변과 만주 지역) 교구에 대하여 그 교구장 서리가 임명되어 있는 실정인데, 그렇다면 교구장 서리들은 그 해당 지역의 옛 본당들에 대한 주임신부(서리)를 임명함으로써 북한 지역을 적어도 상시 기억하여 사목 대상으로 삼는 의지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10) 필자는 봉직하는 본당들에서 ‘북한선교회’를 결성하여 지속적으로 기도와 성금 모으기를 하였다. 모으는 성금의 지향은 북한의 옛 본당을 자매결연한 것으로 하고(일명 ‘짝사랑 자매결연’이라 함 - 북한의 현지인들을 만나지 못한 결연이므로), 어느 날이던지 그곳 성당을 복구할 때 즉각적인 시행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적립해가는 것이었다. 필자가 그런 본당들을 떠나온 후에 ‘북한선교회’는 흐지부지 없어지고 그 모아가던 성금은 용도변경으로 사라졌다는 씁쓸한 소식을 듣고 있다.

11) 정부나 적십자사 주도의 ‘남북 이산가족 만남’을 통해서 북한의 신자들을 접촉할 수 있으면 공식적인 것으로 바람직하지만, 한편 남한의 교회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든지 북한의 신자들을 파악한다든가, 남한 교회의 특별한 축제에 북한의 신자들을 초청하는 마음을 가져봐야 할 것이 아닌가? 적어도 ‘한국천주교 200주년’이나 ‘성체대회’ 등의 행사를 하면서 임진각에 북한 형제자매들을 모셔올 대절차량이라도 몇 대 보내서 남북 당국간에게 이를 알리는 열성이라도 보였어야 하지 않았는가? ‘한국천주교회’라 함은 북한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의 한국천주교회’라는 뜻을 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12)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볼 때 신앙의 자유 또한 기본적 인권이므로 북한의 신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누리도록 남한 교회가 접촉하고 지원하려면 남한의 체제적 걸림돌 또한 우리의 해결 과제인 것이다.

권태하(domini0727) (2005/06/18) : 참으로 옳으신 말씀, 감격! 감격 입니다. 윤신부님께서 앞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하신 일들이 이미 했어야 했던 일이었음에도 교회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직무유기를 한 셈이지요. 북한만 다녀오면 빨갱이로만 여기고....다행히 이런 말씀하시는 신부님은 계시니 우리 교회에 그래도 희망이라도 있는 것이겠지요. 무단복제 해 갑니다. 감사 합니다.
이순의(leejeano) (2005/06/18) : 어?! 신부님 안면도에서 옮기셨네요. 몰랐습니다. 이제 신부님께서는 석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대덕단지의 주임신부님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진직 좀 알았더라면 안면도라고 소식을 드리는 실례는 범하지 않았을 것을! 죄송합니다.
민형식(mhs) (2005/06/18) : 어? 무슨말씀 윤종관 신부님은 엇그제도 안면도 본당에서 뵈었는데요? 아직 안면도 본당에 계십니다
노병규(rbk2236) (2005/06/18) : 신부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좋은자료를 올려드리지 못하여 약간 죄송합네다...
석일웅(urnice) (2005/06/19) : 음...권태하님/교회는...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하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직무유기를 말한다면 변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적극적인 직무유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통일', 게다가 '북녘교회'...참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매 순간마다의 최선의 선택을 위한 기도가 절실합니다. 님의 심정과 의도(?)를 이해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제 넘게 이런 꼬리 글을 올립니다. 평화. ^^
이순의(leejeano) (2005/06/19) : 네! 맞습니다. 윤신부님게서 1992년에 대전 대덕이 아니라 대동 본당에 계셨을 때의 원고를 올리신 것입니다. 지금은 안면도 성당의 주임신부님이십니다. 제가 숫자는 안 읽고 성화가 급해설라무네..... 죄송합니다.
전현숙(wpfenfmek) (2005/06/19) : 신부님 감사합니다. 그때 교회는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하라 했지만, 저는 아무런 기대도 안하고 그저 시키는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교회가 너무 앞서가는거 아닐까? 내 죽기전에 금강산에나 가볼수 있으려나..꿈이지..하는 생각도 했었죠.. 10년전에 하신 말씀인데도 지금 이 게시판에서 뵌 신부님의 글이 반갑고 용기있게 느껴지는건 왜 일까요? 세상이 탁해져서인지 저도 더욱 맑은 공기, 더 맑은물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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